빌레몬서 1장 1-7절: 믿음, 사랑, 사귐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한 장으로 되어 있는 빌레몬서는 바울 사도가 옥중에서 쓴 편지 중 하나다. 사도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나”(1절)라고 소개한다. 이 표현으로서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는 디모데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자신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사도는 발신자를 표시할 때 자신과 같이 있던 사람들 중에 수신자와 친근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수신자에 대해 사도는 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첫째가 빌레몬인데, 사도는 그를 “사랑하는 동역자”라고 소개한다. 빌레몬이 제일 먼저 언급된 이유는 그가 교회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둘째가 압비아인데, “자매”(2절)라고 부른 것을 보아 빌레몬의 아내로 추측된다. 셋째는 아킵보인데, 사도는 그를 “우리의 전우”라고 표현한다. 아킵보를 빌레몬의 아들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골로새서 4장 17절에서 사도는 “아킵보에게 ‘주님 안에서 받은 직분을 유의하여 완수하라’고 일러주십시오”라고 썼다. 아킵보가 “주님 안에서 받은 직분(과제)”은 사도가 그에게 부탁한 일을 의미한다. 그 과제가 무엇인지는, 빌레몬서의 수신자를 아킵보로 생각하면 풀린다. 사도는 이 편지를 써서 빌레몬에게 보냈지만, 이 편지의 진짜 수신자는 아킵보였을 것이다. 즉 오네시모의 주인은 빌레몬이 아니라 아킵보라는 뜻이다.  

3절의 인사는 사도가 편지에서 늘상 사용하던 방식에 따른 것이다. “은혜”는 그리스-로마식 인사말이고 “평화”는 유대식 인사말이었다. 사도는 두 개의 인사말을 결합시키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독특한 인사말을 만들어냈다.

사도는 편지를 쓸 때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감사와 기도를 썼다. “그대를 기억하면서”(4절)는 아킵보를 가리킨다. 사도는 기도 중에 늘 아킵보를 기억하는데, 그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감사의 이유는 “주 예수에 대한 그대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그대의 사랑”(5절) 때문이다. “믿음의 사귐”(6절)은 “믿음으로 인해 행하게 되는 사귐”이라는 뜻이다. “사귐”은 헬라어 ‘코이노니아’의 번역으로서, 피상적인 교제가 아니라 삶의 애환을 나누는 깊은 참여를 의미한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일”을 깨달아 알게 되고, 그럴 때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갈 수 있다. 사도는 그런 일이 아킵보에게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사도는 아킵보가 성도들을 위해 이미 보여준 사랑의 행위로 인해 “큰 기쁨과 위로”(7절)를 받았다고 격려한다.

묵상:

바울 사도는 동역자들과 교인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편지들에 그 사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마다 감사가 넘쳐났고, 어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는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에게 근심거리가 아니라 기쁨의 요인이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킵보가 사도에게 기쁨의 원인이 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 예수에 대한 믿음”(5절)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믿음은 오직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살아 있다면,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야고보 사도의 말대로,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그것을 “믿음의 사귐”(6절)이라고 부릅니다. “사귐”은 헬라어 ‘코이노니아’의 번역입니다. ‘코이노니아’는 통성명을 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 정도의 피상적인 사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운명공동체로 묶여 삶의 애환을 나누는 깊은 사귐을 의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이웃의 필요를 알아보고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나눕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일”입니다. 그렇게 진정한 사귐으로 서로 묶일 때 우리의 기쁨은 완성됩니다. 

기도:

저희에게 참된 믿음을 주십시오. 저희의 믿음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사랑이 공허한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to “빌레몬서 1장 1-7절: 믿음, 사랑, 사귐”

  1. bull9707 Avatar

    오네시모 바울 그리고 빌레몬 압킵보의 관계를 읽고 묵상하며 나와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으로 부터 멀리 떨어저있던 죄의 종이 예수님을 만나 마땅히 죽을 죄를 대신 갚아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게하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입과 생각만으로 감사하지않고 손과 발을 사용해서 전 인격적으로 감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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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메시지 바이블의 빌레몬서 해설은 하나님께 반응하는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언어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를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빌레몬서는 주인과 노예 관계의 인물들에 관한 책이지만 메시지는 그 인물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평등하지 않게 설정된 사이, 일종의 빚이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관계 즉 껄끄러운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화해하고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빌레몬서의 권위는 주인과 종의 이야기로도 가치가 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따질 게 많은 두 사람, 입장과 이야기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믿음 안에서 새롭게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 일터, 어디에도 불편하고 어긋난 관계가 있습니다. 회복이 되기도 하고 오래 가기도 합니다. 사이가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멀면 먼대로 관계는 틀어지고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어떤 관계는 애써 고쳐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약입니다. 어떤 계기에 다시 좋아질 수 있습니다. 빌레몬서는 특정된 이야기를 다룹니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 개인적인 고민과 결단을 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으로 인해 변화가 일어날 때 그 변화는 막연한 어떤 계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듯 합니다. 나의 믿음을 보여줘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보여준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나의 의지와 인식이 우선해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되는 때가 있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모든 관계의 출발이 나로부터 시작하듯, 빌레몬서도 인물들의 자기 성찰을 요구합니다. 복음의 구원이 일상의 관계 속에서 양식이 되는 차원을 기대해 봅니다. 주님, 변화의 자리로 초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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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모인 교회 공동체는 자매와 형제들이 모인 가족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성품을 닮아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이웃과의 사귈 수 있는 형제 자매들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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