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2장 1-10절: 신중함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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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앞 장에서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행태를 지적한 사도는 이 장에서 그리스도인의 덕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디도에게 “건전한 교훈에 맞는 말”(1절)로 교인들을 가르치라고 권한다. 그런 다음, 교인들의 연령에 맞는 지침을 제공한다.

“나이 많은 남자들”(2절)에게 어울리는 덕목은 “절제”와 “위엄”과 “신중함”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심이 흔들리지 않음”이다. “흔들리지 않음”은 “온전함”을 의미한다. “나이 많은 여자들”(3절)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지침을 제시한다. 남성들에게는 “절제”를 요구했는데, 여성들에게는 “과도한 술의 노예됨”을 경계한다.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을 모함하지 말고, 젊은 여자들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게 하라고 명령한다. 

“젊은 여자들”(4절)에게는, 당시의 가부장적인 문화에 맞추어, 현모양처의 미덕을 요구한다.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별은 사라진다고 선언했고(갈 3:28), 남편과 아내는 사랑으로 서로에게 종노릇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엡 5:21). 하지만 그것이 너무 과격하게 적용되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기에, 사도는 아내들에게 당시의 가부장적인 관습의 틀을 유지한 채로 복음 정신을 실현하라고 요구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을 것”(5절)이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들”(6절)에 대해서는 “신중함”의 미덕을 요구한다.

사도는 디도에게, 이 모든 가르침을 실천하여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며, 교인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고 위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명령한다(7절). 말을 할 때는 “책잡힐 데가 없는 건전한 말”(8절)을 해야 한다. 그럴 때, 반대자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9절과 10절에서 종에 대해 첨언한 이유는 당시 여러 가정에서 종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가정 생활을 지침을 줄 때면 항상 주인과 종의 관계에 대해 지침을 주곤 했다. 여기서 사도는 젊은 여성들에게 요청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노예 제도의 관습에 따라 종들에게 주인에 대한 신실한 태도를 요구한다. 복음의 해방 정신을 너무 급진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비방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묵상:

사도는 디도에게, 각 연령에 맞도록 교인들을 지도하고 훈련시키라고 명령합니다. 당시의 관념에 따라 사도는 각 연령과 성별에 해당하는 덕목을 요구하는데, 남녀노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하나 있습니다. “신중함”이 그것입니다. 2절에서는 ‘셈노스’가, 5절과 6절과 12절에서는 ‘소프로노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셈노스’와 ‘소르포노스’는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의 글에서 “신중함”은 도시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중함을 “극단적인 행동을 피하고 사려깊게 분별하여 행동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덕목을 그리스도인들의 덕목으로 제시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이웃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실수를 피할 수 있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을 것”(5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과 관계하여 바울 사도는 “보수적 입장”에 서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젊은 여성에게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해야”(5절) 한다고 했고, 종에게는 “모든 일에 주인에게 복종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고, 말대꾸를 하지 말고, 훔쳐내지 말고, 온전히 신실하라”(9절)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사도는 복음의 혁명적 성격을 억누르고 가부장적인 문화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이 비방받지 않게 하려는 그의 “신중함”의 표현이었습니다. 복음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 가부장제와 노예제도는 결국 허물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행동하면, 복음은 비방을 받고 전도의 문은 막히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사회 개혁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믿는 이들이 복음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면 불의한 사회 제도는 저절로 와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은 그 시기를 기다리며 신중하게 판단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기도:

주님, 저희는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너무나 성급하게 행동하려 합니다. 그로 인해 주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게 만드는 잘못을 범하곤 합니다. 저희를 다스려 주시어 신중하게 생각하고, 위엄있게 말하며, 바르게 처신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to “디도서 2장 1-10절: 신중함의 미덕”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사회 곳곳에서 분열과 미움이 보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 곧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상대방은 틀렸고, 아니고, 절대 봐주면 안되는 대상이라고 강조합니다. 바울이 교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신중하고 절제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10년 전 쯤만 해도 바울 서신에서 말하는 미덕과 행동지침, 특히 여성에게 요구한 기준들을 읽으면 바울이 보수적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성중심적인 사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문자적인 표현도 그런 편이고,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그의 입장에서 이해해도 그의 편지는 사회 개혁안이 아니고, 문화혁신적인 시각을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바울의 후기 서신들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는 연구가 거의 정설이 된)을 읽으면서는 ‘남성중심적’이라는 인상보다 사회순응적이고 화합우선적인 길을 제시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수적인 된거고 가부장적으로 바뀐걸까요. (그럴리가요. 설마요.) 오늘 목사님의 해설도 신중함의 가치를 언급합니다. 세상이 빨리 가면 그리스도인은 천천히 가야 하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이 확확 바뀌면 크리스찬은 도리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바울의 시대 즉 초기 교회 때는 현대와 같지 않습니다. 그 때의 교회와 지금의 교회는 다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당시의 편지들을 읽고 연구하면서 오늘 필요한 지혜를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오늘은 묵상이 어렵습니다. 수천년이 지나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시대라는 배경 없이 사람이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바울의 ‘신중하시요’라는 명령은 어렵게 들립니다. 바울이 특별히 주의하라고 한 것은 복음이 왜곡되고, 예수를 따르는 일이 비방을 받게 될까 우려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거짓 가르침을 퍼뜨리는 이들, 행동이 나쁘고 해악을 끼치는 무리와 ‘도매금’으로 넘어갈 까 걱정되어 한 말일 것입니다. 구분되고 성별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신중하라고, 절제하라고, 흠이 없게 살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신학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학문적인 뒷받침이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예언자 예레미야가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유다 백성에게 그곳에 잘 정착하여 살라고 한 게 생각이 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고 바빌로니아에 복종하며 살라는 말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당신 백성을 망하게 두시지 않을 거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빌로니아에 가서 땅도 사고 자녀들 결혼도 시키면서 살라고 했습니다. 그 때도 거짓 예언, 미혹하는 소리에 넘어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바울의 부탁보다 더 체제순종적인 발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묵상합니다. 어느 만큼 저항해야 하는 것인지, 어느 만큼 받아들이며 수용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님, 지혜를 주시어 주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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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어떤 사회이든 갑자기 변화되면 질서가 무너져 혼돈의 사회가 되곤합니다. 물 냄비 속에서 자유스럽게 활발하게 헤엄치며 마음대로 움직일 때 밑에서 약한 불을 장시간 지필때 물이 끌어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성령의 불이 사회에 없는 듯 조용히 퍼질때 질서속에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결국 온 사회, 나라가 복음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이웃에 먼저 사랑으로 접근하여 서두르지 않고 적절한 기회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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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illkim9707 Avatar

    유대인과 이방인 남녀노소 빈부 양반상인 주인하인의 차별이 없는곳,주님안에서는 누구나 같고 하나인것을 확신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사랑 기쁨 평강 인내 친절 양선 신실 오유 절제가 있는 가정이나 교회와 사회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편지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충만한 가정 교회 그리고 세상이 하루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라나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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