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장 9-22절: 바울의 유언

3–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사도는 디모데에게, 속히 자신에게로 오라고 부탁한다(9절). “이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10절)라는 말은 믿음을 떠났다는 뜻이기보다는 전도 사역을 떠났다는 뜻으로 보인다. 데마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레스게에 대해서도 달리 알려진 바가 없는데, 바울은 그를 갈라디아로 보냈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보냈다. 지금 사도 곁에는 누가만 남아 있다. 그래서 사도는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한다(11절). 바울 사도는 두번째 전도 여행을 떠날 때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바나바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다(행 15:37-41). “그 사람은 나의 일에 요긴한 사람입니다”라는 말에서 마가가 바울의 신임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사도는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다고 알린다(12절). 

아울러 사도는 디모데가 올 때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온 외투”(13절)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다. 당시의 감옥은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겨울을 준비해야 했다. 양피지에 쓴 책들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는데, 성경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사도는 디모데에게 “구리 세공 알렉산더”(14절)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다. 사도는 디모데전서 1장 20절에서 “믿음에 파선 당한 사람”으로서 알렉산더를 예로 들었다. 사도는 그에게 큰 해를 입었다고 말하면서, 디모데에게 그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15절).  

“내가 처음 나를 변론할 때”(16절)는 최초로 로마 감옥에 갇혀서 변론했던 때를 가리킨다. 그 때 그 곁에 있던 동역자들이 모두 떠나갔다. 하지만 사도는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주님께서 그의 곁에 계셔서 친히 변호사가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그 위치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주님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냈습니다”(17절)라는 말은 비유일 수도 있고 실제로 사자의 밥으로 던져졌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사도는 기적적인 구출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주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고 결국 주님의 나라에 이르게 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18절). 

그런 다음 사도는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오네시보로의 집에 안부를 전한다(19절).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에 살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는데, 박해를 피해 고린도에 머무르다가 사도를 만났다. 이 편지를 쓸 때, 그 부부는 에베소에 있었다. 사도는 에라스도와 드로비모의 상황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한 다음(20절), 다시금 “겨울이 되기 전에 서둘러 오십시오”(21절)라고 부탁하고, 그를 돕고 있던 몇몇 신도들의 안부를 전한다. 그런 다음 사도는 간단한 축복의 인사로 편지를 끝낸다. 

묵상:

디모데후서 마지막 단락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인간적인 면모를 봅니다. 그는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데, 혹독한 겨울은 다가오고 있고, 그의 곁에는 누가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죄수에게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 주지만, 당시 감옥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도 구비되지 않았습니다. 살아 남으면 다행이고, 굶어 죽거나 얼어 죽어도 그만이었습니다. 

사도는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2년 이상 복역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그는 정식 재판에서 방면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고발 당하여 황제에게 상소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실에서 볼 때 유대인들의 고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는 잠시 방면되어 다시 복음 전도 활동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실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다시 구금되었으니, 이번에는 풀려날 가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를 자행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6절에서 말한 것처럼, 사도는 자신이 “부어드리는 제물”로 순교 당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께로부터 받을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그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 그는 싸늘한 감옥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했고, 겨울의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는 이미 로마 감옥에 갇혀 보았기 때문에 겨울 감방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에게 겨울이 가기 전에 외투와 양피지 책을 가지고 속히 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할 수 있으면 마가도 데리고 와 달라고 말합니다. 심리적 추위(외로움)와 물리적 추위를 견뎌내고 순교의 자리에 이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도 유망한 율법 교사로 촉망 받던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이십여 년 동안 복음 전도자로서의 삶을 올곧게 걸어갑니다. 그것은 매일 죽는 것 같이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그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 길에서 완주하다가 단두대에서 “부어드리는 제물”로 생을 마칩니다. 이렇게 하여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빌 3:10-11)라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기도:

주님을 알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깨달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결국 주님처럼 생을 마친 바울 사도를 생각합니다. 이처럼 고귀한 희생을 통해 저희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는 사실에 거룩한 전율을 느낍니다. 주님, 저희를 붙들어 주시어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살게 해주십시오. 저희도 주님의 고난의 참여하고 주님의 죽으심을 조금이라도 닮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디모데후서 4장 9-22절: 바울의 유언”

  1. billkim9707 Avatar

    사도 바울의 편지 디모데 전후서를 2000년 이 지난 오늘에도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20여년동안 복음을 위해 극심한 고난과 시련과 박해를 감수하며 선한싸움을 마치며 마지막 순간을 정리하는 애절한 모습에 감동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변질 하지않고 우직하게 순교자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주님과 바울과 누가와 디모데와 디도가 기다리고 있는 본향을 향하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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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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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비오는 목요일 아침. 사도 바울의 마지막 목회서신이자 일종의 유언장이라할 디모데 후서를 마무리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도의 외로움과 추움이 묻어나는 마지막 문장들.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네요.

    죽음과 삶 가운데 끼어 고난과 박탈의 여정을 일생 걸어야 했던 사람. 늘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지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육신의 삶을 끝내 견뎌온 이. 이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사명의 경주를 완주합니다. 마지막 한 바퀴가 남았지요.

    그를 통해 전도의 말씀이 완전히 전파될 수 있었고 이방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로마의 시민권과 하늘의 시민권이 두 갈래 길로 나눠질 때, 의심도 주저도 없이 좁고 외로운 길, 그러나 밝은 그 길을 선택합니다.

    옆에서 모두가 떠나갔고, 그의 손에는 성경조차 없으며, 외투조차 없어 웅크리고 떨고 있어요. 이런 마지막 여정을 함께 걸어줄 사람들을 간절히 불러요. 외투와 성경을 보내달라고 간청하지요.

    오늘은 조금 늦게 출근할 계획입니다. 아내가 둘째를 기차역에 바래다 주면서 저도 시내까지 태워준다고 하네요. 사는 목적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깊이 되짚는 하루가 되기를.

    주님을 알고,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룰 진실로 알며, 주와 함께 살기 위해 주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그런 인생 되기를. 바울처럼, 디모데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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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디모데는 알았을까요 머지않아 바울이 떠날 것을…오늘은 머리속에 감옥을 그리며 읽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개역개정은 반말을 씁니다)’고 하고 끝에 다시 한 번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부탁합니다. 올 때 외투와 가죽 종이 (양피지)에 쓴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디모데가 부탁대로 가지고 갔으면 외투와 책은 바울의 유품이 되었겠지요. 바울이 머물던 감옥에 남은 그의 물건들은 무엇이었을까요…평소에 감옥을 딱히 생각할 일은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불행한 일입니다. 오래 전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정치 사건으로 투옥되어 20년을 보낸 저자가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모은 책입니다. 제목 때문인지 감옥과 사색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감옥이라는 공간이 징벌 이상의 자리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했습니다. 미화라면 미화이고, 비현실적인 낭만화의 위험도 있습니다. 바울 서신의 상당수도 감옥으로부터의 고백이고 가르침입니다. 바울의 투옥은 방면보다는 죽음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죽음으로 한걸음씩 가까이 가는 심정이 어땠을까요. 면회 좀 와 줬으면 좋겠다 정도가 아닌, 어서 속히, 겨울이 오기 전에 내게 와 달라는 바울의 요청이 서글프게 만듭니다. 바울은 하루에도 몇 번 씩 여기의 삶을 생각하다 또 죽음 뒤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던 순간을 회상하다 다시 만날 순간을 상상하기도 했겠지요. 자기에게 잘해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다, 반대로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기억을 합니다. 디모데에게 일일이 열거하는 이름들은 다 사연이고 사건입니다.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디모데에게 안녕을 고하는 것이 마치 나와 안녕을 고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감옥 안에서 생각하는 바깥, 이 땅에서 생각하는 저 세상, 고난 속에서 염원하는 고난의 끝. 그곳에 주님이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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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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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사도 바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한 강력한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발산하는 강력한 영의 광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전도 일생은 누구도 따라 갈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찬양이 사도 바울의 고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 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주님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주님. 이 고백의 찬양이 믿음의 공동체의 고백이 돨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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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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