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장 14-19절: 진리를 살다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다음으로 사도는 신도들에게 전달할 구체적인 명령을 디모데에게 알린다. “말다툼”(14절)을 하지 말라는 경고는 앞에서도 여러 번 나왔다.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는 수사학(말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굴복시키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말이나 논리는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진리에 대한 논쟁은 무익하고, 쓰잘 데 없는 것을 두고 말다툼 하는 것은 해롭다. 

그래서 사도는, 디모데가 논쟁술에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대신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15절)이 되라고 권한다. 수사적 기술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에 의지하라는 뜻이며, 가르치는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속된 잡담”(16절)을 피해야 한다. 그런 것에 물들면 “더욱더 경건하지 아니함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암처럼 퍼져나가 파멸에 이르게 한다(17절). 앞에서 사도는 배교에 대해 경고하면서 부겔로와 허모게네(1:15)를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언급한다.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사도는 그들이 “부활은 이미 지나갔다”(18절)고 가르쳤다고 전한다. 여기서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부활을 가리킨다. 이들은 믿는 이들의 부활은 이미 이루어졌고, 재림 같은 것은 없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초는 이미 튼튼히 서 있다”(19절)는 말은 복음 진리가 견고히 지은 집의 토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도는 민수기 16장 5절 말씀(“주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사람을 아신다”)을 인용하여 신실하게 믿는 이들을 격려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다 불의에서 떠나라”는 말씀은 민수기 16장 26절 말씀을 사도가 자유롭게 인용한 것처럼 보인다. 이 말씀으로 사도는 믿는 이들에게 바르게 살 것을 요청한다. 

묵상: 

완전한 진리는 말과 논리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진리를 전하기 위해 말과 논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으로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말과 논리는 언제나 진리를 축소하여 표현할 수밖에 없고, 그러는 중에 진리는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논쟁을 통해 어떤 사람을 진리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논쟁을 통해 누군가가 설득되었다면, 진리에 설득된 것이 아니라 논리에 설득된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전하는 데 있어서 논쟁이 해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진리를 전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첫째, 수사적 기술에 의존하지 말고 진리의 힘에 의지하라고 말합니다. 교사의 책임은 언어로 진리를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진리를 향하게 하고, 찾게 만들어 결국 진리와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진리의 영”에 눈 뜨게 하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말 기술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둘째,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이 가르치는 진리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15절)라고 권합니다. 만일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순간, 그 사람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말보다 먼저 그것을 행동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기도:

진리의 주님, 진리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삶이 저희가 믿는 진리와 일치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의 진리를 전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to “디모데후서 2장 14-19절: 진리를 살다”

  1. billkim9707 Avatar

    제 혀와 입술에 진리의 영이 파수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말하기전에 잠간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기도하는 습관을 원합니다. 생각과 말과 삶이 연결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원하시는 주님을 감사하며 입으로 증언하는것이 아니라 기도와 삶으로 부활의 소망을 증언하는 대변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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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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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선선한 초가을 아침입니다. 캄캄한 새벽부터 본문을 읽기 시작했는 데 오늘 본문에 언급된 논란 (영지주의 류의 부활 해석)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동이 환하게 텄네요.

    사도는 부활 문제에 대해 수사학적 논리 공방에 말려들지 않도록 경고하지요. 논리, 진리, 그리고 나의 진리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논리와 진리관은 인간의 이해 안에 속해 있지요. 하지만 진리 즉 로고스 하나님은 피조물의 이해 안에 갖혀있지 않으세요.

    논리와 진리관은 불완전하고 상대적이겠죠? 그러나 진리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 우리는 진리를 청동거울에 비추인 반영처럼 흐릿하게 또 부분적으로만 알 수 있겠죠?

    우리 교회의 진리관이 성경, 이성, 전통, 체험이라는 네개의 기둥 위에 세워져 있음을 새삼 감사하게 되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그 교회의 신앙고백이라는 배에 올라타야만 해요. 나홀로 뗏목으로는 진리를 항해 나아가지 못해요. 바람과 물결을 만나고 방향을 몰라 표류하게 되겠지요?

    교회. 굳건한 반석, 폭풍을 이기는 든든한 배. 그런 교회로 세워나가야 해요.

    오직 성령의 은혜로 매일 조금씩 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진리로 자유를 얻으며, 그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는 인생. 푯대를 향해 매일 전진하는 하는 인생이 되었으면.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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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말하는 것과 사는 것이 하나면 좋겠습니다. 말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만 말하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아서 문제겠지요. 본문에서 진리를 전하는 사람의 고민이 보입니다. 진리라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사는 모습은 진리가 아닌 경우를 봅니다. 말하는 것이 진실되듯 사는 것도 진실된 사람을 보는 일이 드뭅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의도가 아니라 인식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나의 의도 intention 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의 인식 perception 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경우 상대방이 내가 미안해 하는걸 인식해야 합니다. 내 뜻이 사과라는걸 상대방이 아는 정도로는 사과가 되지 않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말하면, 전달의 핵심은 의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뜻입니다.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지만 상대방이 받는 인상은 미안한 게 아니면 그는 사과 받은게 아닙니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가 풀리지 않았던 것도 태도의 미진함이랄까, 사과라고 인식되지 않는 어떤 아쉬움 같은게 있었습니다. 인식 perception 이 다르면 의도 intention 도 다르게 전달됩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는건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알아듣는다는 겁니다. 내 입을 통해 나오는 내 마음의 그림을 상대방이 인지하고 인식하면 소통이 된겁니다. 역설적이게도 커뮤니케이션은 가까운 사이에서 막힐 때가 많습니다. 긴장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작은 오해나 오류가 방치되었다 어디선가 막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내 마음 알지?’ 혹은 ‘엄마가 왜 화를 냈는지 알지?’ 하는 말들은 상대방이 어떻게 인식하든 내 의도를 알면 됐다는 일방적인 내 생각입니다. 일방통행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닌데도 말이죠. 일상의 대화도 이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주고 받는 신앙의 대화는 어떨까요. 말로 해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말을 잘해도, 글을 잘 써도, 예수는 경험의 대상입니다. 연구 대상 아니고 토론 주제도 아닙니다. 시작은 그렇더라도 예수의 의미는 경험의 중심에서 나옵니다. 내게 예수를 전해주는 전달자의 의도보다 나의 예수 인식이 중요합니다. 매주 좋은 설교 (의도)를 들어도 예수를 인식해야 내게 양식이 됩니다. 예수를 경험해야, 그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와 권면을 깨닫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는 진리입니다. 삶의 여러 순간, 여러 고비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렇게 만난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든든한 터 (firm foundation)로 삼고 삽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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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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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세상에는 스스로가 진리인양 외치는 온갓 거짓 선지자들이 인간의 영혼을 혼란속에 몰아넣고 억압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피흘리신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자유(요헌복음 8자:32)케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주신자유를 이웃에게전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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