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장 6-14절: 고난을 이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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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앞에서 디모데의 믿음을 칭찬한 사도는, 그가 더욱 담대히 전도자의 사명을 다하도록 격려한다. 앞의 편지에서도 디모데가 안수 받을 때 받은 은사에 대해 언급했다(딤전 4:14). 사도는 여러 장로들과 함께 디모데를 복음 전도자로 세우기 위해 안수했고, 그 때 은사가 임했다. 사도는 디모데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6절)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는 그 은사가 지금은 식어 있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영이 살아 있다면, 두려움에 질려 비겁해지지 않는다. 성령은 “능력과 사랑과 절제”(7절)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디모데는 바울 사도의 투옥으로 인해 위축되어 있었다. 그것은 디모데에게 큰 두려움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복음 전도를 계속한다면 자신도 그와 같은 운명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8절)라고 격려한다. 사도의 투옥과 순교는 복음의 무력함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사도는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거룩한 부르심”(9절)이다. 그렇게 불러 주신 이유는 인간적인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이다. 

“구원과 부르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것인데, 그것은 “영원 전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었다. “영원 전”은 형용모순이다. 영원에는 전과 후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에 대한 구원과 부르심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뜻이다. 태초부터 배태되어 있던 계획이 “이제는”(10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환히” 드러났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통해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과 썩지 않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사도는 지금 그 복음을 전하고 있다(11절).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고난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의 진실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믿어 온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진실로 믿을만한 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내가 맡은 것”(12절) 즉 영원한 생명을 지켜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사도는 다시 디모데에 대한 권면을 이어간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수치스러워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자신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13절)을 붙들고,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14절) 그것을 굳게 지키라고 한다. 

묵상:

목회자들 사이에는 “교인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지 말라”는 말이 통용됩니다. 교인들 중에는 “목사가 얼마나 기도하지 않으면 그런 병에 걸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걸리는 코로나에 한 번도 감염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믿음의 능력 때문인 것처럼 자랑하는 것도 같은 사고방식에서 나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만사형통하고 승승장구해야 한다는 믿음이 많은 이들에게 깔려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 교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아무 문제 없는 듯이 행동하다가 감당할 수 없이 큰 일이 일어나면 종적을 감춥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도, 어떤 사람이 큰 성공을 거두면 그가 믿는 신이 능력 많아서 그런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 중병이 걸리면 그가 믿는 신에게 버림 받거나 징벌 받은 까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감옥에 갇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형을 당할 것 같은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그가 믿은 것은 모두 가짜였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그가 믿고 의지한 예수는 신이 아니거나 신이라 해도 그를 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믿는 이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투옥된 상황에서 부활의 복음을 전해 보았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도는 주눅이 든 디모데를 다독이면서 복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서 나타나신 분입니다. 그분은 부활로써 죽음을 폐하시고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삶과 죽음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셨고, 다시 오셔서 그 모든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그는 투옥도, 순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난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도: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12절)라는 바울의 고백을 마음에 품습니다. 저희에게 주님을 더 잘 알게 해 주시고, 그 믿음으로 죽음의 문까지 통과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디모데후서 1장 6-14절: 고난을 이기는 믿음”

  1. billkim9707 Avatar

    복음에는 모든 믿는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것을 알면서도 주늑이 들어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삶의 모범이 되지못하는 비열한 신세입니다. 이세상에 사는동안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주님 부활을 감사하며 담대한 주님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비록 비난과 조롱과 위협을 당하더라도, 마지막 숨쉴때 까지——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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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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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는 그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단순한 생각 밖에는 할 줄 몰랐으니까, 나쁜 인간들을 그 자리에서 무찌를 수 있는 예수님인데 왜, ‘정말’,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는지 그게 아쉬웠습니다. 단순한 사고에서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뒤에도 고통이나 연약함에 대해 예수님이 보이신 반응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는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아무 말씀을 하지 않는 예수님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그런 연장선 상에서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고통이나 불행을 당하지 않는다는 소망과 기대가 좋은 믿음으로 예쁘게 포장까지 되어 스스로를 세뇌 시키는게 당연하겠다 싶기도 합니다. 디모데가 받은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인다는 구절에서 깨어있음의 필요성을 봅니다. 주신 은혜와 은사가 약해지고 소멸되지 않도록 잘 붙들고 있으려면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자연적으로 식는 감동을 되돌리기란 어렵습니다. 감동이 (혹은 은사가) 식는 것도 문제지만, 식고 있는 줄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입니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뭘 자꾸 잊어 버려서 찾으러 다닌다는 말들을 합니다. 누가 말합니다. 잊어 버린 걸 알면 괜찮은거라고, 진짜 심각한건 잊은 줄도 모르는거라고. 바울은 디모데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받은 은사, 받은 목적과 소명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언제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지경에 놓인 것을 보면서 디모데는 겁이 났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좋은 믿음’이 자기가 처한 상황 때문에 ‘약한 믿음’으로 주저 앉을까봐 겁이 났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바울도 디모데도 똑같이 싸워야 할 힘 센 상대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두려움은 여러 얼굴을 하고 우리앞에 섭니다.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도 두려웠을까요. 나는 두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두려웠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까지 가는 내내 두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니까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두려움이 물러갔습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 당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단박에 부수어 버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선하신 하나님이 보기 좋다고 하신 세상에 악은 왜 있는가…답이 없어도 계속 걸어 갑니다. 답을 찾지 못했어도 계속 걷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은 순교하고, 어떤 사람은 배교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는 순교까지는 아닐겁니다. 매일 싸워야 한다는걸 잊지 않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매일의 싸움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의 일부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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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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