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장 3-10절: 영적 건강과 영적 질병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대다수의 학자들은 2절 하반절이 3절 이하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새번역 성경도 그렇게 편집해 놓았다. “이런 것들”은 앞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의 가르침을 말한다. “가르치고 권하십시오”라는 표현은 주목할 만하다. 진리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가르침을 행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다른 교리”(3절)를 가르치는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경건에 부합되는 교훈”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건전한”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육체적 건강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은 “교만”(4절)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논쟁과 말다툼을 일삼는”다. 사도는 그런 사람을 “병이 든 사람”이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반면, ”다른 교리“는 병에 들게 만든다.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의심”은 그 병의 증상이다. 그 병은 마음을 썩게 만들고, 진리를 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5절) 여긴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끊임없는 알력”이 생긴다.  

이 지점에서 사도는 물질적인 탐욕의 문제로 넘어간다. 거짓 교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가 물질적인 탐욕이기 때문이다. 사도는 “자족”의 덕을 강조한다(6절). 자족은 당시의 스토아 학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덕목이다. 우리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나는 사람들이다(7절). 그러므로 삶을 위한 기본적인 필요(“먹을 것과 입을 것”)가 채워지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8절).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9절) 즉 물질적인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 세상에서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질 것”이고, 마침내 “파멸과 멸망”(9절)에 이를 것이다. 그렇기에 사도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원인이라고 강조한다(10절). 그로 인해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믿음 안에 머물러 있다 해도 “많은 고통”을 겪는다.

묵상:

여기서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건강하게 하는 것에 비유하고,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병 들게 하는 것에 비유합니다. 사도가 말하는 건강은 육과 혼과 영의 전인적인 건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경건의 훈련에 힘쓰면, 육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과 영적 건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순결한 마음으로 진리를 사모하며 겸손히 행합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논쟁과 말다툼”(5절)을 멀리하고,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의심”을 떨쳐 버립니다. 그 사람은 어떤 형편에 처해도 자족할 줄 알고, 세상적인 부와 권력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경건의 훈련이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줍니다”(4:8)라고 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경건의 훈련에 힘쓰지 않는 사람은 병 든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5절)라는 말은 정신적으로 병 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다 안다는 교만에 빠져 살고,“논쟁과 말다툼”(4절)을 일삼습니다. 그런 사람의 목적은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의심”(4절)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게다가, 그런 사람은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5절) 여깁니다. 경건 훈련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해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서 인정 받기를 힘씁니다. 인정 받고 나면 그것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탐욕을 채웁니다. 그 탐욕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에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부자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목표가,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 즐기자는 데 있습니다. 우리 시대가 심하게 병 들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겸손, 사랑, 자족, 섬김, 평화, 신뢰 같은 덕이 우리 안에 열매 맺을 것입니다.

기도:

주님, 주님 안에서 거듭 나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저희에게도 잔병이 많습니다. 논쟁과 말다툼에 빠질 때도 있고, 시기심, 분쟁, 비방, 혹은 악한 의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자족의 능력이 부족하여 물질에 대한 탐욕도 자주 들끓습니다. 저희에게 더욱 주님의 진리를 사모하게 하시고 경건의 훈련에 전념하게 하셔서 이 모든 잔병을 떨쳐내어 온전한 건강을 얻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6장 3-10절: 영적 건강과 영적 질병”

  1. gachi049 Avatar
    gachi049

    피땀흘려 일하고 얻은 그 댓가는 참으로 소중하고 귀합니다. 그러나 물욕에 매몰되어 더 갖고 싶은 욕망에 타인의 재물에 유혹되어 사기, 거짓, 위법, 살인등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득하여 욕망을 채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영혼과 영, 육신이 병들고 망가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더불어 사는 방법과 소유의 한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주안에서 행하면 해결될 줄 믿습니다. 주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자족하며 이타적 사랑으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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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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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아무도 주님과 돈을 아울러 섬기지 못한다는 주님의 경고를 많이 많이 들었으면서도 재물에 한눈을 팔며 살아온 졸부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 한분을 확실히 믿고 의지하며 자족하는 믿음을 원 합니다, 앞으로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경멸하며 낮아져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인생을 마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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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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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시대의 흐름과 정반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따라 살면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기꺼이, 흔쾌히, 각오하고, 준비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현실적으로 백퍼센트 가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깊은 산골에 들어가 살아도 문명 사회와 완전히 단절하고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할 수 없는 일, 어차피 해도 안 될 일을 디모데에게 권하는걸까요. 신앙의 순수성과 인격의 고매함은 그것 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습니다. ‘대쪽 같은 선비’라는 표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선비는 인격적으로 선하면서 지식이 있는 사람을 칭하는데, 대체로 유교학을 공부한 유생이나 학자를 뜻합니다. 유교가 그 단어의 컨텍스트입니다. 대쪽 같은 선비라고 하면 세속의 거래나 관행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유교 문화가 더 이상 대세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도 선비의 이미지는 여전히 살아있고 존경의 대상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에서 선비가 떠오르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도’라고 바꾸면 바르고 깨끗하게 사는 선비의 삶을 권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절대성의 허구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정보가 입력되면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입력된 정보와 지식을 절대화 합니다. ‘한 번 믿으면 끝까지 간다’는 말은 참 멋있고 의리 있어 보이지만 점검하지 않아 입는 피해는 고스란히 내 몫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지만, 나의 믿음은 절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나는 상대적인 피조물일 뿐입니다. 갈대인 내가 바람을 규정하거나 조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갈대도 있고 대나무도 있지만 바람은 없습니다. 디모데도 우리처럼 고민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외면만 할 수 없지 않은가 고민했을 것입니다.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을 것입니다. 맞게 가는걸까, 이것이 주님의 뜻일까, 어떻게 말해야 위로가 될까… 답이 없는 순간, 답을 모르겠는 순간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때입니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Faith is but a name for learning how to go on without knowing the answers.”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깨달음입니다. 백퍼센트 동의합니다.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대쪽 같은 선비의 이미지에 속을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선비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손에 물 묻히고, 마구 대하는 사람 만나면 속도 상하고, 자존심이 바닥을 치는 순간도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바울이 디모데에게 우리에게 말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서 ‘가지고 있는 것’이 꼭 물질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메세지 성경은 ‘being yourself before God’ 이라는 기가 막힌 번역을 합니다. 이 모습 이대로, 정직한 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나, 어떤 상황을 만나거나 바울은 하나님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세상을 거슬러 살 때에도, 세상에 휘둘려 살 때에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당신을 ‘가진’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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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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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많이 낀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후부터 비소식이 있네요. 이제 고국에서 보낸 잊지 못할 3주의 시간이 엔딩을 향해 흘러갑니다.

    오늘의 본문은 정통 교리의 중요성과 신앙인의 품성에 관한 권면.

    복음의 원리를 비틀어 유사품을 만드는 것의 위험성. 노골적인 이단만 문제인 것은 아니지요. 복음을 상품화하고 교인들을 세뇌하여 노예로 만드는 것은 소위 정통 교회, 성공과 부흥을 자랑하는 교회들에게도 흔히 보는 추한 이면 아닐지요? 건강한 교회, 묵상이 살아있어 성령의 불빛 아래 늘 갱신하는 교회를 만들기를.

    돈에 대한 사랑. 요즘 누가 돈보기를 돌 같이 할 수 있을까요? 돈의 크기가 인생의 크기가 되는 세대, 모두가 돈의 노예가 된 듯한 시대입니다. 돈이 아닌 하늘 아버지께 소망을 두는 인생, 돈이 내 인격을 잠식하지 않도록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자유한 인생 되기를.

    Gain all you can, save all you can, give all you can이라는 웨슬리 목사님의 권면(On the Use of Money)을 곰곰이 되새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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