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장 1-2절: 복음의 사회 변혁적 능력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 사도는 종에 대한 지침으로 넘어간다. 사도는 노예 제도를 철폐하는 일보다는 주인과 노예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바꾸는 데 관심을 두었다. 고린도전서 7장, 에베소서 5장, 골로새서 3-4장, 빌레몬서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도는, 믿음을 가진 주인들에게는 종들을 형제 자매로 대하도록 권했고, 노예들에게는 자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자유하되, 그렇지 않다면 신실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라고 권했다. 그렇게 하면, 주종관계는 형제자매 관계로 바뀌고 노예 제도는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1-2절의 권면은 이러한 가르침의 배경에서 읽어야 한다.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1절)이라는 표현으로 사도는 노예제도의 불의함을 은근히 드러낸다. 불의한 제도 하에서 억압과 착취를 당하다 보면, 분노와 불만으로 행동하기 쉽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다. 제도가 불의하고 주인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신도인 종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소임을 즐거이 행해야 한다. 불의를 묵인하라는 뜻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는 뜻이다. 그럴 때 주인은 종이 믿는 하나님과 그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주인이 신도인 경우, 그의 믿음이 옳다면, 주인은 노예를 형제처럼 선대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럴 때, 신도인 종은 주인의 선의를 악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사도는 “그 주인이 신도라고 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2절)라고 주의를 준다. 주인이 선대할수록 “오히려, 주인을 더 잘 섬겨야” 한다. 신도인 주인은 더 이상 억지로 복종해야 할 상전이 아니라, “동료 신도요,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묵상:

현대인들은 노예 제도를 묵인했다는 이유로 바울을 비난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울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비판입니다. 그는 신생 종교를 전파하는 유랑 전도자였습니다. 불의한 사회 제도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개혁을 추진할 만한 세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노예 제도 위에 세워진 로마 제국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은 대역죄에 속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예 제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었습니다. 

주인과 종에 대해 바울 사도가 한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그는 노예 제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불의한 제도들이 무력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복음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차별을 뛰어 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는 복음이 전파되면 그로 인해 노예 제도가 무너질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는 믿지 않는 주인을 둔 신도에게 최선을 다해 주인을 섬기라고 이릅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주인을 섬기라고 권합니다. 억지로 혹은 불평하며 섬기지 말고, 기쁨으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할 때 가장 유익을 얻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 즐겁고 신나게 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또한 그렇게 할 때, 믿지 않는 주인은 신도인 종이 믿는 하나님과 복음에 대해 달리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신도인 주인들은 “신도인 주인을 섬기는 종들은, 그 주인이 신도라고 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라는 말에서 자신들을 향한 사도의 메시지를 들었을 것입니다. 노예를 소유한 주인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더 이상 종을 가축이나 재산으로 취급하지 말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로 대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종들 중에는 주인의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주인이 선대할수록 더욱 정성껏 섬기라고 이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이 우리가 맺은 모든 관계를 새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복음은 여자와 남자, 종과 주인, 이방인과 유대인 등, 사람들이 만든 모든 차별을 넘어서게 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최종 목적은 형식적 평등이 아닙니다. 복음은 믿는 이들로 하여금 서로에게 종노릇 하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기도:

주님의 복음이 오늘 저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와 정의와 권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백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 은총과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로 하여금 이 열매를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직도 이 열매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6장 1-2절: 복음의 사회 변혁적 능력”

  1. billkim9707 Avatar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기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인생입니다,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격으신 엄청나고 놀라운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이웃을 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멍에를 예수님과 함께 메기를 원합니다, 멍에가 가볍다고 하시고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주님을 닮아 악을 선으로 갚는 주님의 종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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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노예제도는 인간 사회의 불행한 발자취입니다. 두 사람 만 있어도 힘을 가지려는 싸움이 일어납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고대부터 오늘까지 설정 범위와 실행 방법이 다를 뿐 계속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도적으로는 폐지 되었지만 인간의 심리 속에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차별을 뛰어넘게 만든다는 해설 말씀에 동의하며 같은 소망을 품게 됩니다. 복음에 거는 기대와 믿음의 증거가 만나는 지점에 사회 변혁의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복음의 능력이 신도의 소망과 합쳐질 때 변화의 불꽃이 일어납니다. 감리교인인 내 머리 속에는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혁이 자전거 바퀴처럼 같이 돌면서 앞으로 나가는 그림이 들어 있습니다. 고전과 명작 소설 중에는 노예의 눈을 빌려 사회상과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 작품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솝의 우화부터 꼽을 수 있습니다. 찰스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 헨리 제임스, 마크 트웨인, 토니 모리슨…주인공이 아니어도 종이 주요 인물인 경우로 돈키호테가 떠오릅니다. 한국 문학 중에도 신분제도의 배경에서 피어난 꽃들이 많습니다. 홍길동과 춘향전, 우리 시대의 대하소설 토지와 태백산맥 등에는 억압 받는 계층의 눈에 비친 세상이 생생하게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노예와 주인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동등하다고, 하나님 앞에서 같은 가치를 지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르게 말합니다, 주인과 노예에게 말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노예에게는 주인을 압도하려 들지 말라고 합니다. 특히 주인이 믿는 사람일 때 주인의 신앙을 볼모로 잡고 (약점으로 삼고) 넘어뜨리려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주인에게는 믿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사랑의 태도를 노예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라고 권합니다. 주인 보다 노예에게 더 많이 부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갖고 있던 사람이 내려 놓고 포기하는 일이, 없던 사람이 새로 손에 쥐는 일보다 더 힘들다고 여겨서 주인에게 길게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식적인 신분제도가 없어진 자리에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층과 칸을 만들어 나누고 가르며 삽니다. 경제, 교육, 인종, 성별, 능력, 연령…일상에서 마주하는 ‘차별’의 벽은 내려오지 않고 더 높이 올라만 가는 것 같습니다. 믿음 안에서 서로를 돕고 살라는 것이 바울의 부탁입니다. 주님,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고, 나 좋을대로 나 편할대로 타인을 대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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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암울한 세상에서 어찌할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대에 사도의 성실한 복음 전파자가 없었다면 피비린내가 멈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암흑세상에서 빛의 세상으로 바꿔주신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아직도 어둠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최선을 다하여 기도와 물질로 도와 줄 수 있도록 믿음의 공동체와 동행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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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늘은 아침 공기가 좀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낮에는 강렬한 햇살이 뜨거울 거게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점점 다가오네요.

    오늘 아침 본문은 종 또는 노예 (slave)에 대한 권면. 노예 제도 하에 남부인들이 악용하며 스스로를 정당화시켰을 듯한 구절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맥락 속에서 노예제도에 대한 바울의 한 메시지는 같은 제도에 관한 다른 메시지들과 하나로 연결해 봐야한다는 해설 말씀이 도움이 되요.

    교회도 사회 안에 있으니 사회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겠지요. 제가 있던 어떤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유수 교단의 총회장 목사님이 야당 대표로 있다가 대통령이 됐지요. 그 전에도 막강하던 교회는 더 세력화 되었지만 나라의 형편은 전보다도 나빠졌어요.

    모두가 모두에게 예의있게 존대하는 오늘날 한국의 고상한 시회 문화 수준은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놀라고 감동을 받습니다. 반상이 엄격히 나누고 양반 가운데서도 혈통을 따지던 나라가 이렇게 변한 것은 교회와 복음의 힘이 크겠지요?

    이런 나라를 주신 주님께 감사. 약한 지체, 억울하고 소외된 형제들을 높여두고 그 발을 씻어주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내 인생의 문을 두드리는 고단한 어린아이들을 영접해주는 선한 인생이 되기를.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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