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해 반박한 다음, 사도는 디모데에게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을 가르치는 “좋은 일꾼”(6절)이 되라고 권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모데 자신이 먼저 그 말씀과 교훈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사도는 “그대가 지금까지 좇고 있는”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먼저 그는 “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7절)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1:4), 그것은 헛된 논쟁을 일으킬 뿐이다. 그 대신, 그는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해야 한다. “훈련하다”는 헬라어 ‘귐나조’의 번역인데, 현대 영어 gymnastic이 여기서 나왔다. “몸을 훈련하라”는 정확히 번역하면 “너 자신을 훈련하라”고 해야 한다.
“몸의 훈련”(8절)은 체력과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을 가리킨다. 사도는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라는 말로써 신체 운동에 유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경건 훈련”은 “경건에 이르기 위한 훈련”을 말하는데, 그것은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준다. 신체 운동은 이 땅에서의 삶에만 유익을 주는 반면, 경건 운동은 이생과 내생에 모두 유익을 끼친다.
“이 말”(9절)은 경건 훈련에 대한 앞의 가르침을 가리킨다. “참말”은 “믿을만한 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경건의 훈련에 희망을 두는 이유는 “우리가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사람의 구주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10절) 두고 있기 때문이다. “수고하며 애를 쓰고 있습니다”는 “계속하여 수고하며 애를 쓰고 있습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헬라어에서 현재형은 계속되는 행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애를 쓰다”는 운동 경기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묵상:
영적인 열심이 강한 사람들 중에는 육적 건강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경향이 금욕주의로 흐릅니다. 그들은, 육신은 모든 죄의 온상이므로 철저하게 길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신으로부터 모든 정욕을 제거하기 위해 금식과 고행을 추구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육신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 짓게 하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죄에 물든 마음입니다. 죄에 물든 마음이 육신을 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네 오른 눈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빼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마 5:29)고 하셨는데, 이것은 자해를 미화하거나 충동하는 말씀이 아니라, 강조를 위한 수사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막 7:20)고 하셨습니다. 죄의 뿌리가 내면에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온 세상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좋다”고 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육신도 지으셨습니다. 죄 된 세상은 사람들의 육신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멋있다” 혹은 “멋 없다”, “아름답다” 혹은 “추하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장미꽃과 당귀꽃을 두고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몸도 그것 자체로서 소중하고 귀중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사용하도록 주어진 몸을 귀중히 여기고 잘 가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몸의 훈련”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숨보다 큰 생명이 있고, 이 썩을 몸은 썩지 않을 몸을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의 건강을 위한 훈련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경건의 훈련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
생명의 주님, 저희에게 주신 육신을 감사히 받고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몸의 소리를 듣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해주십시오. 목숨보다 큰 생명을 바라보게 하시고,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는 날을 소망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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