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3장 8-13절: 집사의 기준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어서 사도는 “집사”(8절)에 대해서도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집사는 감독을 도와 교인들의 필요를 섬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직무의 성격 상, 성숙성에 있어서 감독보다는 조금 낮은 기준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도는 감독의 경우와 달리 두 가지 영역의 덕목만을 제시한다. 첫째, 복음적 성품에 대해서는 “신중하며,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아니하며, 술에 탐닉하지 아니하며,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아니하며, 믿음의 비밀을 깨끗한 양심에 간직한 사람”(8-9절)이어야 한다. 둘째, 가정적으로는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12절)이어야 한다. 

여기서 사도는 “이와 같이 여자들도, 신중하며, 험담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성실한 사람이라야 합니다”(11절)라는 말을 덧붙인다. 교회에서 여성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는 교파에서는 여기서의 “여자”는 집사의 아내를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것은 해석자의 입장을 위해 본문을 비튼 것이다. 사도가 여기서 여자 집사의 조건을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로마서에서 사도가 뵈뵈를 “집사”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이 해석을 뒷받침 해준다(롬 16:1).

집사의 직분을 잘 수행하면 그로 인해 믿음이 성장한다. 그래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13절)라고 말한다. “좋은 지위”를 얻는다는 말은 감독으로서의 인정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명의 헬라파 지도자들은 “섬기는 일”(집사의 일)을 담당하도록 지명되었는데, 나중에 모두 전도자가 되었다. 음식 나누는 일을 위해 뽑혔지만, 그 일을 하는 가운데 영적으로 성장하여 전도자가 되었던 것이다.

묵상:

“집사”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종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믿는 이들이 예배와 교육과 교제와 선교를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려면, 주인의 필요를 알아보고 섬기는 종처럼, 교인들의 필요를 알아보고 섬기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영적 성숙이 필요했습니다. 교회에서의 섬김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동기로 그런 일을 하면, 필경 상처를 받고 시험에 빠집니다. 그렇게 되면 가지고 있던 믿음마져도 위태로워집니다. 본인에게나 공동체에게나 해로운 일입니다.

믿음 안에서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이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집사의 일을 섬기면,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을 끼칩니다. 집사로 섬기는 사람은 그 섬김을 통해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길 때 믿음의 근육이 생깁니다. 육신의 근육은 상처를 입었다가 치유 되는 과정을 통해 자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근육도 다른 사람을 섬기는 과정에서 상처와 아픔을 겪으면서 자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상처와 아픔을 감당할 정도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집사의 직분을 맡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 섬기면 “좋은 지위”를 얻게 된다는 말은 감독으로서 섬길 기회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감독 직분을 “좋은 지위”라고 말한 이유는 그것이 더 큰 영예과 권세를 가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의미 있는 섬김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에서의 직분은 점점 더 높아져서 더 많은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낮아져서 더 많은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낮아져서 가장 많이 섬기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믿음이 저희 안에 갇히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에서 형제와 이웃을 섬기게 해주십시오. 그 과정에서 상처와 아픔을 겪을 때, 믿음의 근육이 강해지는 것임을 알아 감사하고 기뻐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3장 8-13절: 집사의 기준”

  1. bull9707 Avatar

    먼저 마땅이 죽어야할 죄인인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는 믿음을 항상 억하기를 원 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고 낮아져 섬기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이름과 빛이 없이 밑거름이 되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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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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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크고 높은 자리에 서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고 종이 되는 자세가 필요하다(마 20: 26~28)고 말씀하셨고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며 그 삶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믿음안에서 거룩한 소비와 섬기는 자세로 살기를 원하니 아직도 남아있는 교만과 물욕심을 성령께서 깨트려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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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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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교회 직분을 맡길 신자들을 결정할 때 살펴 보아야 할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집사에 관한 구절인데 한 번 읽고 두번째 읽는데 예전 기억이 되살아나며 후회와 아픔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한국에서 다닌 교회가 두 교회 있습니다. 한 교회는 5학년 때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친구를 따라 처음 다닌 교회입니다. 대학을 마칠 때까지 출석했습니다. 대학 이후에 한 친구가 성경공부를 권해서 다닌 교회가 두번째 교회입니다. 청년들과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들 중심의 아주 작은 교회였는데 목사님이 인도하는 성경공부가 매우 특별했습니다. 영어적인 표현으로 눈이 열리는 ‘eye opening’ 공부였는데 사회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본문을 본다던가 또는 자기의 경험을 말씀에 비추어 다시 해석해 본다던가 하는 방법을 써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과 삶을 일치 시키려고 매일 고민하고 씨름하는 것을 격려하는 교회였습니다. 청년들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 -당시 대학가는 매일 데모였고 최루탄 냄새가 사라지지 않던 때였습니다- 앞에서 신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젊은 부부들은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목사님은 여러 면에서 ‘진보적’이면서 앞서가는 분이였는데, 교회 직분에 있어서도 남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를 일정 기간 다니면 집사가 되고 권사, 장로가 되는 관행 같은 제도가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 헌신적인 사람에게 직분을 주어 보다 책임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장로도 40대에 받아 활발하게 일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그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던 해에 방송사 채용에 합격했고 입사 일년 뒤에 결혼을 했습니다. 교제할 때 남편은 성경공부를 다녔고 결혼 뒤엔 시어머님도 함께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목사님의 직분 철학에 따라 나는 33살 쯤에 ‘일찍’ 권사가 되었습니다. 내가 권사가 되고 얼마 뒤에 교회가 출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권사가 된 것은 목사님과 몇 몇 권사님들이 나를 ‘편애’해서 된 일이라며 몇 몇 가정이 교회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남편보다 먼저 권사가 된 것도 보기 싫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2년 뒤에 권사가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라서 교인 수가 작다고 기죽지 말고 대신 진실하고 알뜰하게 서로를 보살피자는 평소의 약속이 무색해지는 일이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가정들이었는데 결국 떠났습니다. 당시에 교회에는 다른 일도 있어서 교인들의 ‘불만’이 여기 저기서 생겨났는데 내가 직분 받은 일이 도화선 역할을 한 셈입니다. 당시엔 미국으로 근무 발령을 받게 될 지 꿈도 안 꾸고 있을 때이니 이 일은 나와 남편에게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특히 나는 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상처를 준 장본인이라는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권사직을 일찍 받은 일은 십년 쯤 뒤에 미국에서 또다시 나를 괴롭힙니다. 차라리 어떻게 벌써 권사가 되었냐고 물었으면 좋았을텐데 (좀 혁신적인 교회여서요 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교회 직분이 별 것 아니라는 뉘앙스의 말을 내 앞에서 대놓고 함으로써 나 개인 뿐 아니라 직분을 모욕한 것입니다. 내게 직분을 준 교회를 모욕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권사는 물론 장로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도 본문을 읽으니 옛 상처가 다시 걸립니다. ‘완벽한’ 교회는 없다는 뜻이겠지요. 이상적인 교회, 모두 다 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인내하는 그런 교회는 없다는거겠지요. 연회 감독께서 엘에이의 몇몇 한인교회의 평신도들을 초대해 회의실에서 저녁 (타코)을 같이 먹으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11년, 12년 쯤 전 일입니다. 대화의 주제는 한 가지였습니다. 한인교회의 직분에 관해서 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분을 받고, 왜 받고, 왜 중요하며, 앞으로도 계속 될 제도인지 궁금해서 감독이 요청한 자리였습니다. 현재 한인 교회들 중에도 직분제도에 대해 유연하고 실리적인 접근을 하는 교회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완벽한 교회는 없지만, 완전함을 추구하기를 멈추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봅니다. 완벽한 교회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닮아 가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완전함이 무엇인지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되교회, 예수의 희생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교회, 아픔의 상처에 새 순이 나오게 하는 교회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바라보는 이 땅의 모든 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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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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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5시에 가까이 일어났습니다. 시차적응이 거의 된 듯 해요. 오늘 본문은 집사의 조건.

    감독의 조건과 비슷하지만 은사보다는 인성, 그리고 개인적 삶의 평판(특히 가정)을 좀 더 강조하는 것 같아요. 교회를 대표하는 감독에 비해 공인으로서의 성격은 아무래도 약하기 때문이 아닐지요.

    마음의 근육에 대한 묵상말씀이 다가옵니다. 섬김. 곧 남들의 종이 되는 것은 원래 고역이지요. 그러니 서비스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받고 고대사회에서는 노예신분의 사슬로 묶어 강요했겠지요.

    자원해서 남의 종이 되는 것. 그 이유는 사랑 하나뿐. 주님의 사랑. 자기를 조건없이 주는 사랑. 자기 생명을 남에게 주고 자기를 죽이는 사랑.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본받기 위해.

    한국시간으로는 주일 아침이에요. 귀한 교회를 주심에 감사. 섬길 수 있도록 하신 것, 사랑할 수 있게 하신 것 감사. 섬기면서 받는 마음 상함조차 감사. 그 상함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근력이 강해지는 것도 감사. 모든 것을 감사하는 오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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