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장 12-17절: 은혜의 복음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앞에서 사도는, 자신에게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선포할 임무가 맡겨졌다고 했다(11절). 이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주님께서 그 직분을 맡겨 주신 것은 자신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예수께서 그를 “신실하게 여기셔서”(12절) 그 직분을 맡겨 주셨다. “신실하게”는 “믿을 만하게”라는 뜻이다. 

그것은 바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다.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13절)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8장과 9장에는 박해자 시절의 바울의 활동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큰 죄였지만,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14절) 해 주셨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을 경험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실성을 확인한다. 그것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15절)이다. “죄인의 우두머리”인 자신이 구원 받았기 때문이다. 죄인의 우두머리가 용서 받고 구원 받았다면, 누구에게나 구원 받을 희망이 있다(16절). 사도는 세상의 모든 죄인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전하기 위해 가장 악한 죄인인 자신을 회개시키셨다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도의 마음에 감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다(17절). 그에게 하나님은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묵상:

회심은 여러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영적 허기와 갈증을 채워 줄 대상을 찾다가 회심하는 경우도 있고, 번개 맞듯이 하나님에게 덜미를 잡혀 회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서서히 회심하고, 어떤 사람은 한 순간에 전격적으로 돌아섭니다. 

바울의 경우는 후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사도들이 전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유대교를 왜곡하는 이단이라고 생각하고 반대하고 박해했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순교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전격적으로, 습격 당하듯 회심합니다.  

회심한 후, 그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묻고 또 물었을 것입니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변화시킬 수 없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을 택하셨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용서 못할 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같은 죄인을 변화시키고 복음 전도자로 세우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 살았습니다. “은혜”(카리스)라는 말은 바울의 편지 전체에서 100번이나 사용될 정도로 그는 은혜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모든 일이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바울이 구원 받고 복음 전도자가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처럼, 저희같은 사람들이 복음을 통해 구원을 누리고 있는 것도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저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5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1장 12-17절: 은혜의 복음”

  1. bull9707 Avatar
    bull9707

    예! 전적 주님의 은혜입니다, 마땅히 멸망할 인생을 은혜로 자녀로 입양 하셨고 지금까지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 하신것은 신실 하신 주님의 사랑 인것을 고백 합니다.

    지금 부터라도 오직 영생의 길은 십자가의 복음 인것을 세상에 알리는 주님의 영혼구원의 동참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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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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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바울은 자기가 진리라고 믿고 수호하던 유대교에서 벗어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들을 잡아내고 벌주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하나님, 자기가 믿는 종교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따라가기 어려운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돌아섭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바울이 그 다음날부터 전도를 하러 다닌 것은 아닙니다. 단박에 돌아선 바울이지만 시력을 회복하는 시간과 예수님을 만난 일과 들은 말씀에 대해 묵상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때가 되자 바울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 같이 드라마틱하고 위대한 신앙의 길을 걷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바울 스스로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나의 마음 가운데 가득 차고 넘쳤습니다. 그 은혜와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도 내 속에 솟아났습니다. Grace mixed with faith and love poured over me and into me. And all because of Jesus (14절)’ 바울의 회심 스토리 (사도행전)를 다시 떠올리면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자격은 커녕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동의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께 매를 맞는다, 하나님이 치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잘못된 길로 가니까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치시더라’라는 말을 합니다. 다마스쿠스 사건과 상반된 일을 말합니다. 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잘되던 사업이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삐둘어지고 가정에 금이 갔다…등등 하나님이 치시는 일, 매를 들어 때리시는 일을 간증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상당한 오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해서 잘못 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지만, ‘강권해서’ ‘망하게 만들어’ 당신께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도 나로서는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길은 여럿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익숙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은혜와 벌에 대한 우리의 생각 안에 하나님을 가두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회심 이야기가 우리에게 더욱 충격적입니다. 바울에게 일어났다는 점이 가장 큰 충격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항로가 바뀌는 것은 아주 아주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울(바울)이라서 놀라운 것입니다. 사울 같은 사람을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게 깜짝 놀랄 일입니다. 두번째로 놀라운 것은 사울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주의 은혜를 입었다는 점입니다. 사울은 예수님께 잘못했다거나,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9장이 기록하는 예수님과의 만남은 지극히 짧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말할 때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한 말씀을 좀 더 길게 전합니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는 유명한 말씀과 함께 ‘네가 가시 돋친 채찍을 발로 차 보아야 너만 다칠 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바울은 전합니다. 메시지 성경은 Why do you insist on going against the grain? 왜 결의 반대로 거슬러 가느냐, 흐름에 정반대로 가려느냐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사울이 마음에 (양심에) 불편한 것을 느끼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질문입니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는 물음은 왜 너 자신을 박해하느냐, 왜 너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느냐는 물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집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곧바로 새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몇 몇 사람의 도움을 입어 ‘회복’의 시간을 갖습니다. 회심에 대해 숙고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는 바울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에, 그리고 자기 눈이 멀던 순간에 아, 이것이 은혜로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하고 느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과 경륜에 기초해 사건을 곱씹어보고 해석해 보고 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 강렬하고 뜨겁게 다가오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도 우리 식으로 하나님께 매를 맞고 회심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파의 유명한 지식인이요 행동가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 갑자기 예수쟁이가 되어 영광 대신 고난의 길을 가고 있으니 그 말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그의 회심은 은혜이지 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행복과 불행의 초이스로 좁혀지지 않습니다. 존재의 자유, 진리 안에서 맛보는 자유는 죄의 억압에서 풀려나고, 욕심과 콘트롤 욕망을 내려 놓게 되고 갈등과 고통이 해결될 때, 가능해 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값 싼 은혜’라는 표현은 참 아프고 날카롭지만 그래서 더 자주 기억해야 할 표현 같습니다. 바울은 세상보다 큰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자기보다 큰 주님을 만났습니다. 나도 그런 주님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의 은혜가 내 속을 채우고 밖으로 넘쳐 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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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3주간의 일정으로 고국에 와 처음 맞는 아침입니다. 여기는 아직도 폭염의 한 가운데. 더위를 식혀주는 반가운 비가 밤새 내렸네요.

    죄인 중의 괴수.바리새파의 차세대 지도자로 그리스도인 탄압에 누구보다 앞장 섰던 사람. 주님은 왜 하필 그런 사람을 불러 지중해 선교의 큰 사명을 맡기신 것일까요? 살인자이고 도망자였던 모세를 부르셨던 것 만큼 인간의 이해와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 밖에서 민유를 다스리시는 분의 선택은 늘 완전하고 신비하세요.

    죄인 중의 괴수까지는 못되는 그저 작은 나. 쓸모없는 이 죄인도 부르신 것이 맞지요? 제 보잘 것 없는 인생에 선한 목적과 이유를 주신 것도.

    주님 부탁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잠잠히 행하는 하루, 더 사랑하는 하루, 더 성결할 수 있게 내면과 마음을 지키는 오늘이 되게 하시길.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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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모세가 미디안 광야의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백성을 출애굽 시키라는 명령을 받을때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린 것처럼(출 3:6~8) 바울도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강렬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땅에 엎어져(행 9:3~4)회심하고 사도가 됨은 거부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세와 사도 바울을 변화시킴을 통해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주님의 백성이된 믿음의 공동체가 신비하고 놀라운 은혜를 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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