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장 1-7절: 사랑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그동안 읽은 바울의 편지들은 한 지역에 있던 교회(가정 교회들)에게 쓰여진 것인 반면,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은 개인에게 쓰여진 편지다. 디모데는 바울 사도가 가장 아낀 동역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를 발탁한 사람도 바울이었다(행 16장 1-5절). 이 편지는 바울의 사역 후반기에 쓰인 것으로서 원로 목회자가 후배 목회자에게 주는 유언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도는 당시 편지 형식을 따라 발신자를 먼저 밝힌다(1절). 그는 자신을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으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나”라고 강조함으로서, 자신이 사도적 권위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이어서 사도는 수신자를 밝힌다(2절). “믿음 안에서 나의 참 아들이 된 디모데”라는 표현을 통해 사도는 디모데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신뢰를 표현한다. 그런 다음, 사도는 자신만의 인사말로 디모데에게 안부를 전한다. “은혜와 평화”에 더하여 “자비”를 더한 것이 이례적이다. 

사도는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러 있도록 부탁한 일에 대해 언급한다(3절). 그 이유는 당시 에베소 교회에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3절)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4절)를 가지고 복음을 왜곡했다. 그것은 “쓸데 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 “믿음 안에서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지 못한다. “경륜”은 헬라어 ‘오이코노미아’(영어 economy가 여기서 나왔다)의 번역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해 가지고 계신 계획을 의미한다. 그것을 믿고 그 섭리를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다.

사도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 놓은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5절)에 있었다. 믿음의 최종 목적은 사랑의 열매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보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마음이 “깨끗한 마음”이다. “선한 양심”은 옳은 것을 분별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거짓 없는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태도를 가리킨다. 마음(감정)과 양심(이성)과 믿음이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참되게 사랑할 수 있다.

에베소의 몇몇 교인들은 사랑을 행하는 데에는 관심을 끄고 “쓸데없는 토론”(6절)에 빠져 있다. 기독교 신앙은 공허한 사변이 아니다. 그들은 잡다한 말로 율법교사로 자처하려 하지만,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7절).

묵상: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바울 사도는 기독교 신앙의 세 기둥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하면서, 그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3:13).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남으로써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과 예언을 “사랑”이라는 한 글자로 요약 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먼저 하나님에게 향해야 하고, 동시에 이웃에게 향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시작은 사랑이고 마지막도 사랑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변화될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죄 씻음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날 때, 우리의 불순한 마음은 정화되고, 악한 양심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 안에서 성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 존재가 변화되어야만 진정한 사랑의 가능성이 생깁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초점을 잃고 헛된 일에 마음을 쓰기 쉽습니다. 지엽적인 문제에 붙들려 그것이 생사의 문제인 것처럼 소란을 떱니다. 부질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하며 힘 쓸 일은 속 사람이 날로 새로와져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양심이 바로 서게 되어 사랑에 있어서 자라는 것입니다. 

기도: 

저희로 십자가에서 드러난 주님의 사랑에 더 깊이 취하게 해주십시오. 그 사랑이 저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묻어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의 마음과 정신과 육신을 온전히 변화시켜 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to “디모데전서 1장 1-7절: 사랑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1. bull9707 Avatar
    bull9707

    사람으로 부터 인정받고 사랑을 받기를 원했던 우둔한 자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오직 하나님에서 부터인것을 깨닫고 그사랑을 받고 사랑하는 자가되기를 간구합니다.

    순수한 사랑이신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께로 부터 받고 이웃에게 나누는 사랑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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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디모데는 편지 수신자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바울은 여러 교회들 앞으로 편지를 쓰고, 또 개인 앞으로도 편지를 보내어 어려운 세월 속에서 믿음의 싸움을 하는 교인들을 격려하고 이끄는 데 아낌 없는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받은 교회들 외에 개인 자격으로 편지를 받은 사람이 둘 있으니 디모데와 디도입니다. 디모데서와 디도서는 바울의 선교를 도운 두 젊은이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교회 리더십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는 책으로도 알려졌습니다. 디모데서는 바울이 쓴 편지로 알려졌지만 바울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연대로는 주후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전반부에 씌여졌다고 보며, 바울의 진품 서신과 비교해 어휘가 다르고, 바울의 시대적인 배경과 편지에서 말하는 정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듭니다. 하지만 바울의 편지라고 보는 시각도 근거와 논리를 갖추고 있으니 일반 독자인 우리는 바울이 썼을까 아닐까에 관심을 갖기 보다 편지에 담긴 교훈을 찾아 양식으로 삼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디모데에게 바울은 에베소에 잘못된 가르침이 돌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지적합니다. 디모데가 에베소에 계속 있으면서 거짓된 말들이 돌아 다니는 것을 막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바울은 거짓된 가르침의 예로 사실이 아닌 이야기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 -fantasy stories and fanciful family trees-를 듭니다. 메시지 성경이 사용한 환타지라는 단어는 현실에는 없는 것, 상상과 가상의 세계에 속한 것을 뜻합니다. 바울이 환타지를 이해하지 못해 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이 각박할수록, 현실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인간의 상상력은 날개를 답니다. 1세기의 로마 식민지는 팍스 로마나의 깃발 아래 로마의 법과 제도를 본받아 로마제국의 닮은꼴로 형성되어 갔습니다. 로마제국의 질서는 족보 ancestry, 부 wealth, 직업 occupation 세가지를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혈통과 혈연, 가문의 부, 사회적 지위로 귀족, 평민, 노예의 계급이 이루어졌고 사회의 제도와 틀도 만들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 로마시민, 이방인노예 등 이질적인 사람들이 교회를 형성했습니다. 분명한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 살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은 같은 위치라는 가르침은 가히 혁명적이고 위험한 사상입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전파하고 현란한 족보 (조상과 가문)를 등장 시키는 심리 이면에는 지극히 로마적인 사고가 들어 있습니다. 로마 자체가 로물루스와 리머스라는 두 반신반인 (아버지는 전쟁의 신 마르스, 엄마는 레아 공주) 쌍둥이의 탄생으로 시작합니다. 로물루스와 리머스는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한 외할아버지에 의해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실려 가고, 쌍둥이는 늑대가 발견해 생명을 건집니다. 이들은 곧 양치기에게 발견되어 자라게 되고 이후에 외가에 복수하고 양치기에게 발견된 자리에 도시를 세우기로 합니다. 리머스는 한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로물루스는 살아 남는데 그가 자기의 이름으로 세운 도시가 로마입니다. 신화와 족보가 1세기에 유행했을 법합니다. 교회 안에서 복음 대신 신화와 족보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우려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의 중심인 것을 환기 시키며 세상의 이야기 대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나누어지기를 원합니다. 어찌 보면, 요한계시록과 같은 묵시문학은 1세기 사람들에게 익숙한 문화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편지 양식을 취해 자신의 믿음을 정리했고, 요한은 계시문학의 틀을 빌려와 현세와 내세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영화감독들이 누구는 마블 유니버스를 빌려 히어로와 빌런의 대결로 세계관을 표현하고 누구는 기생충 같은 영화로 사회문제와 시대상을 그리는 것에 비길 수 있을까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것보다 우선한다는 진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현대 민주사회는 계급 신분 사회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가문과 부, 직업을 따라 사람을 분류합니다. 교회에서는 이러지 말라는 바울의 당부가 오늘도 너무 절절하게 들립니다. 주님의 사랑과 인내를 기억하는 교회와 교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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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게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의 줄로 메어져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깊이 알게하시고 그사랑을 가족부터 이웃까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두게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어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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