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8절: 온전히 거룩하게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23절 이하는 이 편지의 결말이다. “평화의 하나님”(23절)이라는 표현 배후에는 히브리어 ‘샬롬’이 있다. 샬롬은 삶의 모든 형편이 온전한 상태를 가리킨다.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에서 “완전히”는 ‘홀로텔로스’의 번역으로서 “모든 영역에서”라고 번역해야 옳다. 내면과 외면,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이 모두 거룩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 땅에서 그렇게 살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존재 전체가 “흠 없이 완전하게” 보존될 수 있다. “영과 혼과 몸”은 인간 존재의 세 영역을 가리킨다. 거룩함은 믿는 이들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다(24절). “신실한”은 “믿음직한” 혹은 “약속을 지키는”이라는 뜻이다. 주님은 한 번 시작한 일은 분명하게 완수하시는 분이시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25절). 그도 역시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신도들에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에게 문안하라고 부탁한다(26절). 입맞춤의 인사는 볼을 마주대고 나누는 인사를 가리킨다. “거룩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믿음의 형제자매로서 나누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편지를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한다(27절). 사도는 자신의 편지가 두루 읽혀지기를 기대했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사도는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했다. 실라와 디모데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7절에서 갑자기 “나는”이라는 일인칭 단수 대명사를 사용한다. 그는 당시의 관례대로 전문 필경사를 고용하여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게 했다. 그럴 경우, 그 편지가 자신의 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마지막에 자필로 인사말을 썼다. 27절은 바울이 친필로 적은 글이라는 뜻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리스 식 인사말(“은혜”)로 마무리 짓는다.  

묵상: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해 드린 마지막 기도에서 두 가지에 주목합니다. 하나는 “거룩함”이고, 다른 하나는 “온전함”입니다. 앞에서 사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4:7)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적 개념에서 “거룩”은 “구별됨”입니다.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구별된 물건을 “거룩한 제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레 11:44)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 구별된 사람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롬 12:1)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구별된 사람 혹은 그분께 바쳐진 사람으로 산다는 말은, 말과 행실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이 다르고, 사람 대하는 태도도 다르고, 돈 쓰는 방식도 다르고, 직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23절)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서 “완전히”는 “흠도, 티도 없이”라는 뜻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라는 말도 같은 뜻입니다. 내면과 외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고루 변화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연인으로서 이런 부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매일 주님을 의지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를 거룩함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부름을 따라 나설 때 그것을 이루도록 도우십니다. 그분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 드리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이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은 매일 이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살아갑니다.

기도:

거룩함으로 저희를 부르신 하나님, 저희가 그 부름을 따르겠습니다. 저희를 도우셔서 그 부름이 이루어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 바쳐진 존재로서의 구별됨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8절: 온전히 거룩하게”

  1. gachi049 Avatar
    gachi049

    고난과 핍박, 유혹과 물질 만능 주의에 물들어 있는 세상 풍파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주님.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여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품격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어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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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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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모든 생각과 언행과 삶이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돼야한다는 권면을 알고있으면서도 모르는 사이에 회칠한 무덤같이 자주 겉모양만 치장해서 내용은 더럽고 냄새나는 형편입니다. 보혈이 샘물같이 흘러 진홍같은 죄를 계속해서 눈같이 희게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단순히 주님의 도움만 기다리며 게으름 부리지 말고 우리의 소망을 믿는자들의 구주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땀흘리며 수고하기를 원합니다, 오직 신실하신 주님의 인도 하심으로만 가능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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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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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묵상은 성령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16절부터 18절은 읽기만 하고 묵상하지 않았는데 오늘 분량을 읽으니 16, 17, 18 절은 종말을 기다리며 거룩하고 온전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룩함과 온전함은 방향과 깊이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추구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열 살이 안 되는 초등학생들도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말도 많이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한번쯤 다 해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돈과 유명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루고 싶은 이상이 생기면서 ‘너무 힘들지 않을만큼의 돈’이면 될 것 같고, 유명한 것보다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수정되기도 합니다. 거룩함은 종교적인 언어지만 이웃과 화목하며 살고 싶은 마음은 방향성에 있어 거룩함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웃과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고자 애쓰게 됩니다. 삶의 방향이 하늘/하나님을 향하면 옆으로도 확장된다고 생각합니다. 어깨를 펴고 팔을 벌리지 않으면서 몸을 일으켜 반듯하게 만들기란 어렵습니다. 온전함은 깊이와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가 아닌 전체, 나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상태가 예수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사람 봐 가면서 행동이 바뀌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다 그럴 수는 있을지라도 대체적으로 늘 그렇다는 인상을 주면 그는 얕은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온전함은 완전해야 된다는 강박이 아니라 일관성의 노력입니다. 나라는 사람의 인격적인 성숙이 물 흐르듯 일정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할까요. 16-18절까지는 바울이 교회에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말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항상 즐거워하라는 말을 들으면 실없이 늘 웃고 다니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속 없이, 생각 없이 사는 어리숙한 사람이나 늘 즐겁지 이 힘든 세상에서 어찌, 그것도 늘 즐거울 수 있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재림을 기다리는 초대교인들처럼 모든 것이 바로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고 믿으면, 그리고 그런 회복의 때가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기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한 파티가, 선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미소 짓게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주문은 아닙니다. 미국 교인들은 기도합시다 let us pray 라거나 let us be in an attitude of prayer 라고 말합니다. 처음 이 말을 들을 때 바로 데살로니가전서 17절이 생각났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자세, 기도의 태도, 기도를 사모하며 산다는 뜻이라고 이해합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녀와, 배우자와, 까다로운 손님과- 듣고 말하면 그것이 기도가 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당부는 편지를 쓰면서 가진 바울의 마음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 어쩌면 일의 성취보다 앞서는 것은 일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하신 주님께 감사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삶의 정황보다 살아있음을 먼저 감사하라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어제 묵상처럼 오늘도 나의 믿음을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전부이면서 또 아무 것도 아닙니다. My faith is everything to me, but it’s also nothing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신자의 삶이지만,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구원은 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 선행, 지혜, 그 모든 것이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위험과 긴장이 있습니다. 나에게 결과가 달려있지 않은 일들이지만 선택은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잘하는 선택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믿음은 이 부분에 힘을 실어줍니다. 잘하는 선택이기를 기도하며 믿으며 조심스럽게 걷도록 도와줍니다. 앞서 가시는 성령의 뒷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거룩하고 온전하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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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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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끼고 조금 습한 목요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짧은 서신서의 엔딩 부분이네요. 꼭 예배 말미의 축도, 그리고 광고 비슷한 느낌이에요.

    축도의 내용은 거룩과 온전함입니다. 세상과는 구별되는 삶. 그러면서도 세상 속에 자리 잡고 빛과 소금이 되는 삶.

    우리를 초청하세요.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자 하시네요. 세상과 구별되는 삶. 세상 문화와 가치에 의해 잠식되지 않고 성령의 조명 아래 매일 새로움과 변화를 받는 삶.

    그럼으로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 그것이 거룩의 길이겠지요?

    오늘 하루를 또 주님 앞에 맡겨요. 어둠과 혼돈이 가득한 세상. 그 속을 살면서도 영과 진리의 예배자로 살 수 있기를. 제 부정한 혼과 죄에 물든 몸이 눈보다 더 희게 씻겨지는 오늘이 되었으면.

    오직 주 예수의 보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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