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어서 사도는 주제를 바꾸어 “잠든 사람의 문제”(13절)를 다룬다. “잠들다”는 말은 죽음에 대한 비유말이다. 바울이 떠난 후, 데살로니가 교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교인들이 매우 슬퍼하고 있었다. 디모데로부터 그 사정을 전해 듣고 사도는,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믿는 이들은 죽음에 대해 믿지 않는 이들과 다른 태도를 취해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다. 예수께서는 “첫 열매”로 부활하셔서 믿는 이들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14절)는 말은 주님의 날에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주님의 날에 육신적으로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합니다”(15절)라는 말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16절)라는 표현도 비유적 표현이다. 예수님의 재림 사건이 상상을 초월하는 영광의 사건이라는 뜻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그런 다음,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17절)이다. 여기서 “휴거”(rapture)에 대한 교리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비유 언어를 사실 언어로 오해한 결과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로서는 자세히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단지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사실 뿐이다.
“이런 말”(18절)은 부활과 주님의 날에 대한 가르침을 말한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은 우리가 죽으나 사나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믿음을 가진다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묵상: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 된 지 사흘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죽을 몸으로 소생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몸으로 변화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신령한 몸“(고전 15:44)이라고 불렀습니다. 1차원 시간과 3차원 공간을 넘어서는, 신적 차원에 거하는 몸을 말합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 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 몸을 직접 본 제자들조차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사십 일 동안 머무르시며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계관이 달라집니다. 부활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목숨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죽음으로 우리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그 세상을 “하나님 나라”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주 어느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를 포함하고 초월하는 차원의 세상입니다. 부활하신 후 그 세상으로 돌아가신(승천하신)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온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재림”이라고 부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분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이 신령한 몸을 입을 것이고, 그분과 함께 영원을 누릴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부활이 역사적 차원 너머의 사건인 것처럼, 재림도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재림에 대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오해만 불러 일으킵니다. 재림의 시기를 예측하는 것도, 재림 때에 일어날 일들을 시나리오처럼 말하는 것도, 혹은 재림에 일어날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재림의 날에 대한 성서의 모든 표현은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비유로 설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로 설명된 것을 사실로 읽는 것은 아주 위험한 오독입니다. 그 비유를 통해 우리는 다만 “우리는 죽으나 사나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라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기도:
주님의 은혜로 인해 저희가 어떻게 변화 되었으며, 저희에게 무엇이 약속되었는지, 저희는 너무나 자주, 너무나 쉽게 잊습니다. 그로 인해 저희도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낙심하거나 슬퍼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저희의 소망을 새롭게 해주십시오. 그 소망으로 슬픔을 이기게 하시고,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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