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장 1-8절: 사랑과 거룩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바울은 끝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권면을 준다. 그 전에,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들에게서보고 배운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칭찬하면서, “더욱 그렇게 하십시오”(1절)라는 말로 격려한다. 사도는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2절) 여러가지의 가르침을 주었고, 그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가르침의 초점은 믿는 이들이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사도는 성적 순결을 예로 든다(3절). 당시 로마 도시들에는 온갖 종류의 음행이 넘쳐났다. “음행”으로 번역된 ‘포르네이아’는 모든 종류의 성적 비행을 가리킨다. “멀리하여야 합니다”라는 말은 “끊어야 합니다”라고 번역해야 옳다. 성적 순결은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4절) 즉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 결혼 관계 안에서 성적 폭행은 주로 남성에 의해 행해졌기 때문에 “각 사람은 자기 아내를…”이라고 표현했다. 오늘의 상황에 적용한다면, 배우자는 서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섬겨야 한다. “색욕에 빠지는 것”(5절) 즉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합당하지 않다.

“이런 일에 탈선을 하거나”(6절)라는 말은 “간음이나 음행에 빠지거나”라는 뜻이다. “자기 교우를 해하거나”라는 말은 교우를 대상으로 성적인 죄를 범하는 것을 뜻한다. 고린도교회의 경우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도 음행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사도는 이런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그는, 믿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7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려는”이라는 번역보다 “거룩함 안에 살게 하시려는”이 더 낫다. 

“저버리다”(8절)는 ‘아테테오’의 번역으로서, “무시하다” 혹은 “거부하다”는 의미다. 사도는 자신이 전해 준 권면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면, 마땅히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묵상:

바로 앞에서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사랑의 능력에 있어서 자라기를 기도했습니다. 사랑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흠 없는 사람으로 발견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로, 사랑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처럼 거룩해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에 사로잡히면 죄의 유혹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거룩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거룩을 이루고, 거룩은 사랑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원리는 성적인 면에서도 통합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자신의 성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음행에 치우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음행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을 해치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에게 상처를 드리는 행동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통해 구원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은 믿는 이들이 음행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자신을 진실로 아낀다면, 자신의 성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배우자를 향한 사랑의 도구로 자신의 성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방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간음은 배우자에게 행하는 최악의 폭행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배우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간음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은 거룩에 있다(happiness in holiness)는 사실을 확인할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사랑이 오염되어 있고 조각 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삶에는 거룩한 영역도 있고 아직 부정한 영역도 있습니다. 성령으로 저희를 채워주시어 거룩함에 있어서 더욱 온전해지게 해주십시오. 거룩함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아멘. 

7 responses to “데살로니가전서 4장 1-8절: 사랑과 거룩”

  1. billkim9707 Avatar

    여자를 보는것 까지 경고하시는 주님앞에 바로 설수없는 위선자인것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계속해서 정결하게 씼어야 하는 실정입니다. 모든 생각과 언행과 삶이 거룩하신 사랑의 하나님께로만 초점을 마추고 성적 쾌락의 세상의 풍조에 흔들리지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수님 중심의 성결한 가정을 이루워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앞에 설때까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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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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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결혼은 하나님께서 한여자와 남자를 한몸으로 짝지어주신 은혜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릴 수 있나요? 살다보면 서로 다른 것이 같은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끼리 마음을 맞추어 살기가 어렵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삶처럼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주님. 매일 공급하시는 만나를 먹고 주님안에서 다른곳을 바라보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남은 여정이 되게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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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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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늘도 공기가 청명하고 시원합니다. 진짜 가을의 문턱인가 봐요.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에 이어 오늘은 성결, 특히 성적인 정결에 대한 말씀. 로마서 등에 비하면 짧고 단순한 이 서신서에서 사랑과 거룩이 핵심 주제인 것은 자연스럽네요.

    그런데 거룩이 성이라는 주제 딱 하나로 좁혀진 것은 좀 이상하게 느껴져요. 고린도에서처럼 헬라 지역 교회의 가장 심각한 병증은 음행 곧 성적 문란이었던 듯.

    성은 결국 문화의 문제, 즉 상대적인 가치관의 문제가 아닐까? 일부다처 제도를 채택했던 구약시대의 성 윤리는 일부일처제를 택한 신약시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 아니었을까? 잠깐 생각이 많아졌어요.

    오늘 묵상 말씀처럼 아가페 사랑은 주의 명령이지요. 그리고 성적 순결은 그 사랑이 온전한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척도라도 보니 생각이 명료해 집니다. 문화의 문제가 아니에요. 또 사탄은 상대주의의 풍조를 틈타 자녀를 미혹하지요.

    세상의 문화는 강대하고 제 마음은 바다 위의 조그만 배 같아요. 우는 사자처럼 심키려 하는 사탄의 공격에서 오늘도 주께서 지켜주시길.

    주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몸과 마음은 세상을 더 사랑할 때가 많아요. 그 세상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지요. 지켜주세요. 도움이 필요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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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매일 읽는 성경은 쉬운 성경과 메시지 영어 성경인데 개역개정도 연이어 읽어 볼 때가 있습니다. 읽으면서 드는 느낌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거룩함을 놓고 묵상하려고 하니 번역에 따라 생각의 흐름도 조금 다른 것을 느끼게 됩니다. 쉬운 성경과 메시지 번역은 3-5절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성적인 모든 죄를 피하고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몸을 거룩하고 존귀하게 사용하십시오. 육체의 정욕에 따라 여러분의 몸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짓는 죄입니다 – Keep yourselves from sexual promiscuity. Learn to appreciate and give dignity to your body, not abusing it, as is so common among those who know nothing of God.’ 개역개정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로 되어 있습니다. 쉬운 성경과 메시지 성경은 부부 사이의 성적인 순결을 앞에우지 않는 반면 개역개정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대할 때 이렇게 하라는 명령 톤입니다. 번역 안에 시대의 분위기를 담겨 있는 좋은 예입니다. 개역개정은 결혼한 남편들에게 하는 당부로 들립니다. 결혼한 부부가 지켜야 할 성적인 순결을 묵상하게 합니다. 쉬운 성경과 메세지 성경은 결혼 여부를 떠나 거룩하게 살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결혼은 당연하고, 부부 사이의 순결은 성적인 관계에 국한되며 남편이 관계의 주도권을 가졌다고 읽게 됩니다. 결국 남성-남편 만 잘하면 되는 거룩함입니다. 여성-아내는 남편이 거룩하게 살도록 돕는 배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문제 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런 성경 읽기와 해석에 익숙합니다. ‘당시엔 그랬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한마디 하고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성경 ‘읽고’ ‘묵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 뜻에 맞추어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번쯤 고민해본다면 오늘 본문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건드립니다. 사회적인 변화가 가져온 남녀 교제, 결혼, 자녀 양육, 가사, 경제활동, 부부평등…어느 하나도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많은 결혼이 이혼으로 끝납니다. 미국내 이혼 사유의 넘버원은 lack of commitment 약속 파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외도나 경제 파탄이 1등이지만 그것도 근본적으로는 약속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렇다고 이혼을 말릴 수도, 말려서도 안됩니다. 교제한다고 다 결혼하는 것도 아닙니다. 결혼했다고 다 자녀를 낳거나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어느 곳을 들여다 보아도 바울의 사회와 일치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권고와 호소는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의 신학에 ‘흠’이 있다고 해도 그의 편지는 우리 마음 안으로 확 들어옵니다. 거룩함…거룩하신 주님을 묵상하면 가정 밖으로 눈을 돌리거나, 나 좋을대로 하고 살면 안된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습니다. 가정이 (부부사이가) 거룩함의 발목을 잡으면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게 낫겠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이라도 ‘부부처럼’ 사는 사이라면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데 최선을 기울이는 것도 ‘부부처럼’ 해야 할 일이겠습니다. 사랑은 감정이나 감각 이상입니다. 자기 훈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일 때가 많습니다. 거룩함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심정으로 (제사장의 옷이 또 생각납니다) 사랑의 수고를 들여 이루는 일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 구합니다. 나의 마음이 주의 마음으로 빚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주님을 배우고 깨닫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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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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