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장 1-5절: 기적 같은 믿음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사도는 그리스-로마 식 편지 양식을 따라 먼저 발신자를 소개한다. 다른 편지에서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사도”(고전 1:1; 갈 1:1) 혹은 “종”(빌 1:1)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그냥 이름만 쓴다(1절). 굳이 사도임을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데살로니가 교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루아노는 실라의 라틴어식 표기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발견한 신앙의 인재였다(행 16:1-3). 이어서 그는 수신자를 밝히는데,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이라는 표현은 그들의 지리적 위치(데살로니가)보다 영적 위치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다음, 사도는 축복의 인사를 전한다. “은혜”는 그리스인들의 인사말이고, “평화”는 유대인들의 인사말이었다.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유대인과 그리스-로마인들이 섞여 있었기에 “은혜와 평화”라는 인사말을 만들어 사용했다. 나중에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이라는 말을 덧붙여 신앙적인 인사말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어서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2절)이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여 실라와 디모데가 같은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그들은 늘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기억하고 있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들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알기 때문이다(3절). 그들은 믿음을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여러가지 어려움을 견디고 믿음 위에 견고히 서 있었다. 그것에 근거하여 바울 사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해 주셨다는 사실을 확신한다(4절). 

바울 사도는 그들이 어떻게 그토록 강한 믿음 위에 서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밝힌다. 그들이 말로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능력”을 보여 주셨고, 그로 인해 그들이 강한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5절).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하여,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6절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묵상:

바울 사도가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한 기간은 3주일 정도였습니다. 그 짧은 기간 안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바울과 그 일행은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습니다.  

부랴부랴 데살로니가를 떠난 바울은 그들에 대한 염려를 떨치지 못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그들의 믿음을 지켜 달라고 간구했을 것입니다. 아테네에 머물고 있을 때, 사도는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내어 그들의 사정을 알아보게 합니다. 얼마 후 디모데는 돌아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박해와 유혹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키고 있으며 여러가지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디모데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고 바울 사도는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 자신들이 말로 전도할 때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그들의 깊은 믿음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말솜씨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둘째, 그들이 박해와 유혹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는 모습을 통해 사도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여 변화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셋째,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여 주셨음”(4절)을 확신합니다. 그분에게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들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놀라운 믿음은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역시 예정론이 맞아!” 하고 비약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사도는 그들을 칭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놀라운 믿음에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성령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쓴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그러했습니다.      

기도:

지금 저희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주님의 선물입니다. 지금 저희에게 허물이 있다면, 그것은 저희의 부족함 탓입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은혜에 비하면 저희의 노력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서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데살로니가전서 1장 1-5절: 기적 같은 믿음”

  1. billkim9707 Avatar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수고와 십자가의 은혜로 연결된 사랑, 행함으로 믿는 살아있는 믿음, 오래 참음으로 새나라와 새땅을 기다리는 소망을 갖는 삶을 사는 삶으로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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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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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일찍 부터 무더위를 느끼는 아침입니다. 오후에는 비소식이 있네요. 여름의 한 가운데.

    출애굽기를 마치고 대살로니카 전후서를 시작합니다. 대살로니카. 구글로 찾아보니 그리스 동쪽 해변에 지금도 활발한 항구. 그리스 쪽으로 성지순례를 가면 꼭 들리곤 하는 중소 도시가 아닌가 싶어요.

    바울이 3주 동안 머물렀고, 마치 단기선교 여행처럼 짧은 미션의 결과로 교회가 생겼다는 것이 놀라워요.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그 위에 공동체의 행동, 수고, 인내가 더해져 맺혀진 열매이겠지요?

    목요일. 벌써 이번 주도 마무리되어가고 있어요. 오늘을 허락하신 것. 주신 생명, 안전, 일용할 양식, 가족 그리고 일로 인해 감사드려요. 예수 안에서 모두가 택하신 백성, 거룩한 나라로 부름 받있음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길.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시험과 낙망을 이겨내는 오늘이 되었으면. 날마다 숨쉬는 순간 마다.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거하며 떨어지지 말기를. 기도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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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모세의 시대에서 바울의 시대로 오니 우리와 아주 가까운 때에 와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AD 50년 경의 편지라면 거의 2000년이 된건데요. 구약 성서를 읽을 때와 신약의 책들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적인 가까움이 어디서 오는걸까 생각해 보니 글의 형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편지라서 가깝고 친밀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은 천재입니다. 서신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랬다고 해도 새로 형성된 신앙 공동체와 새신자들, 또 믿음의 격려가 필요한 여행 이들을 염두에 두고 편지를 써서 인편에 보낸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다. 2000년의 시간을 지나며 그의 편지가 일으켜주고 위로하고 정신이 들게 만든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될까요. 지금도 편지는 사건입니다. 편지를 보내고 받는 일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구별이 되는 일입니다. 바울은 교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가 도착하면 교인들은 같이 모여 편지를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의 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일어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최대 관심사는 예수님의 재림이었을 것이고 로마 제국의 통치 밑에서 믿음을 지키며 견디어내는 일에 대해 바울이 뭐라고 말하는지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에는 우리에게 없는 긴박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아도 당시 신도들은 자기들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볼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오시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안도감이 현실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신앙 지형과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당한 어려움을 겪고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 앞에 찾아오는 도전과 괴로움은 시대를 불문하고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사는 것은 시대적 현실에 안주하며 편안하게 사는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어려운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행복하고 편하고 다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고, 또 그래서는 안됩니다. 행복하면 안된다가 아니라, 행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믿게 된 이후에는 믿기 전에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계속해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재림에 대해 우리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똑같은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삶에서 드러나는지는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 옛 사람도 몰랐고 우리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조심스럽고 겸손한 태도로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을 연구하고 행하며 함께 이루어 갑니다. 매일 그분께 나갑니다. 그렇게 재림을 기다리며 오늘을 삽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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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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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우상 숭배와 음란과 탐욕, 윤리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회심한 바울에게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셔서 신앙간증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나 그로 인해 유대인들의 심한 박해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절박함으로 그들의 믿음은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데살로니가의 사회적 분위기와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권과는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그와 결탁하여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얻어내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어 믿음이 없는 자들로 부터 비난을 받는 형편입니다. 

    주님! 믿음의 공동체에게 영혼의 눈을 뜨게하셔서 분별력을 주시고 성령께서 동행하셔서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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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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