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1.
출애굽기는 창세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는 천지창조 이야기와 전역사(pre-history) 이야기(1-11장)로 시작하여, 세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12-50장). 말하자면,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는 야곱의 가족이 칠 년의 가뭄을 피하여 이집트로 내려가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세월이 지나서”(1:6)라는 말로써 사백 년을 뛰어 넘습니다. 그 사이에 칠십 명의 야곱의 가족은 백만 명이 넘는 민족으로 불어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1:8)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론이 있지만, 그 왕이 히브리 민족의 규모에 대해 경계심을 느낄 정도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창세기가 개인사 이야기였다면, 출애굽기는 민족사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성막 완공을 향해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의 분량으로 따져도, 성막과 제사장에 대한 지시에 여덟 장을 할애하고, 성막을 짓고 제사장을 성별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데 일곱 장을 할애합니다. 전체 사십 장 중에서 열세 장을 성막에 할애한 것입니다. 성막을 건축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지루할 정도로 세밀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대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성막이 완성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 더하여 또 하나의 구심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레위기와 민수기에서 보겠지만, 남은 39년 동안의 광야 유랑 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사십 년의 유랑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힘이 되었습니다.
2.
성경의 역사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과거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성경의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거나 “이것이 정확한 역사 보도인가?” 하고 묻는 것은 잘 못 읽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성경 본문과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고 성경의 역사를 객체로 보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몰입”입니다. 그 이야기 세계 안으로 들어가 등장 인물들과 하나가 되어야 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받습니다. 성경의 역사 이야기는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인정 받아 왔습니다. 성령이 작가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몰입”이 일어나야 합니다. “묵상”은 몰입을 통해 그 이야기 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사건을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으로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몰입하여 읽다 보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바로 알게 되고,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삼천 년도 지난 과거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우리의 발걸음을 바로잡아 줍니다. 지식과 문명은 발전해도 인간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출애굽기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주는 큰 메지시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세상은 망가져 있고, 인생은 어렵다”는 메시지입니다. 보통 좋은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 되다가 갈등이 생겨나고 그 갈등이 깊어집니다. 하지만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갈등으로 시작합니다. 책장을 열자 마자 망가진 인간성으로 인해 심하게 망가진 현실을 독자에게 들이밉니다. 망가짐은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망가짐은 점점 더 심해졌고, 그로 인해 고난은 인생이라는 패키지에 필수 품목이 되었습니다. 지난 인류 문명은 삶의 기본 조건인 고난을 제거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문명의 발전은 고난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고난의 원인이 되곤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세상은 망가져 있고, 사는 것은 힘들다”는 메시지에 대해서 “아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과 그분이 인간과 세상의 망가짐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 세계 안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은 소수였고 약자였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도움과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애쎴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절대 권력자 바로에게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소극적으로나마 바로의 명령에 저항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바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믿는 이들의 부르짖음에 그분의 응답은 때로 너무 느립니다. 그분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부르짖음은 자주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익숙해져야 할 것 현실 중 하나입니다. 그분은 인류 전체를 향한 거대한 계획 속에서 당신을 의지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그분은 믿는 이들의 간절한 호소에 즉시로 응답하시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인류 전체를 향한 거대한 계획 때문에 개인의 호소에 침묵하십니다. 그것이 당장에는 하나님의 “거부”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그분의 “오래 참으심”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결국 당신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을 보지 못하고 죽으면서도 “할렐루야!”라고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 일에 믿는 이들을 부르신다“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여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 것입니다. 물론, 망가진 세상이 완전히, 영구히 고쳐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망가진 세상을 그냥 내버려두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의 망가짐을 고쳐서 망가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고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만 삶의 곤고함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는다는 말은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기 이전에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려면 망가진 세상이 고쳐져야 하고, 망가진 세상이 고쳐지려면 인간성의 망가짐이 고쳐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고 거듭나는 것은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 첫 걸음입니다. 출애굽기는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며, 그분의 수리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출애굽기는 아주 위험한 책입니다. 제대로 읽으면, 우리의 삶의 방식과 삶의 목표가 심하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안위와 만족과 번영만을 추구하며 살던 사람이 출애굽기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면, 망가진 세상을 고치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눈 뜨고, 그 일에 참여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호렙 산의 모세처럼 그 부름을 피하려 하지만,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제대로 읽는다면 우리는 결국 그 부름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은 한글 성경에서 출애굽기와 요한계시록을 붉은 색으로 칠하여 읽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제대로 읽게 되면, 하나님의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읽게 되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일본 제국의 관리자들이 성경의 숨은 능력을 제대로 보았던 것입니다.
Leave a reply to gachi049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