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0장 1-33절: 축소된 우주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성막과 기구 그리고 제사장의 예복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완성된 것을 확인한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첫째 달 초하루”(2절)에 성막을 세우라고 하신다. 지성소(3절)와 성소(4절)를 나누고, 증거궤(언약궤)는 지성소에, 상과 등잔대와 분향단은 성소에 두라고 하신다. 성막 입구는 휘장을 쳐서 가려야 한다(5절). 성막 바깥 뜰에는 번제단(6절)과 물두멍(7절)을 두어야 한다. 성막 바깥 뜰은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고, 입구는 동쪽에 만들고 휘장을 쳐야 한다(8절). 그런 다음, 성막과 거기 딸린 모든 것들(9절)과 바깥 뜰에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10-11절)에도 예식용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해야 한다. 

주님은 또한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목욕을 시키고, 아론에게는 제사장의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하라 하신다(12-13절). 그의 아들들에게는 속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제사장으로 구별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영원히 제사장직을 맡게 된다(14-15절).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성막을 세우고 모든 가구와 기구를 배치하고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하였다(16-33절). 모세가 성막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한 것이다”라는 문장이 일곱 번 반복된다(19절, 21절, 23절, 25절, 27절, 29절, 32절). 이것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문장이 일곱 번 반복되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 “이렇게 모세는 모든 일을 다 마쳤다”(33절)는 말씀도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하나님은 하시던 일을 엿새날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창 2:1-2)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묵상:

유대교 랍비들과 현대 성서 학자들은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 이야기와 출애굽기의 성막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 나서 이렛날에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 2:3)고 했는데, 모세도 성막이 완성되고 난 후에 “그들이 주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하였으므로,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출 39:43)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성막과 가구와 기구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처럼, 모세도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안식에 들어갑니다. 

그러한 관계성을 독자에게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저자는 일곱 번에 걸쳐 “이것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한 것이다”라는 문장을 반복합니다. 웬만큼 주의 깊은 독자라면, 이 문장을 정도 이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창세기 1장의 후렴구를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막은 “축소된 우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천지 창조에 깃든 하나님의 뜻이 성막에 깃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원 창조의 모습이고, 성막은 타락 이후의 세상의 축소 모형입니다. 창세기 1장의 에덴은 완전한 사랑 안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막힘없이 소통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균열이 발생했고, 하나님의 원 창조는 깨어졌습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리고 있는 휘장이 죄로 인해 창조 세계에 일어난 중대한 변화를 상징합니다. 

“모세는 모든 일을 다 마쳤다”(33절)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다 이루었다”, 요 19:30)을 생각나게 합니다. 모세는 성막을 지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지성소와 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을 제거하심으로써 다시 에덴을 회복하는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 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 이야기와 출애굽기의 성막 이야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이야기가 서로 연관되고 상응하는 것을 보며 신비감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헤아리고 묵상하는 즐거움이 꿀보다 더 답니다. 주님 살아 계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행하심에 찬미를 드립니다. 아멘.  

6 responses to “출애굽기 40장 1-33절: 축소된 우주”

  1. billkim9707 Avatar

    주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막이 십자가의 은혜로 내자신의 몸과 가정과 교회와 세상이 된것을 고백합니다, 우선 토기장이이신 주님이 제가 고통스럽고 아프고 힘들드라도 주님의 뜻대로 깍아주시고 깨트려주시고 주님의 형상대로 다시 빚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그리고 온세상에 창조질서를 회복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일꾼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앞에 설때까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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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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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그렇게 천둥이 치고 소낙비가 내리더니 하늘이 활짝 개었습니다. 월요일이에요.

    출애굽기 40장. 지난 몇 달간 묵상의 여정이 마침내 종착역에 닿았습니다. 텐트가 완성되었고 아이템 점검도 성공적으로 패스했으니 이제 텐트를 세워야 겠지요?

    성막과 모든 기물, 마당의 기물과 울타리. 셋업을 완성한 후 성막 안의 모든 것들을 정별(consecrate) 하네요.

    공지에 울타리를 쳐서 안팎을 나누니 안쪽의 땅은 성소의 뜰로 구별됩니다.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비겁한 변명으로 숨었던 아론을 씻기고 애봇과 두건, 코데쉬(성결, holiness) 엠블럼을 입히고 덧붙이니 제사장으로 구별되지요. 번제와 곡식제를 드리니 이스라엘의 죄가 잊혀지고 약속의 백성으로 살 기회가 한번 더 주어집니다.

    그 회막에 주의 영광이 구름으로 임하니 오늘 묵상 말씀처럼 그곳은 창조의 축소판, 하나님의 장막으로 변하지요. 그리고 십자가. 십자가의 보혈.

    모세도 들어가지 못하던 그 영광의 구름 속으로 그 보좌 앞에 저를 나오라 하시네요. 제가 누구이길래 (Who Am I). 이 쓸데없는 자를.

    이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번 한주의 시간도 희망과 실망,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광야의 시간을 걷겠지요?

    십자가의 사랑, 그 대속의 능력으로 매일 새로와지는 한 주가 되기를. 기도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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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출애굽기는 겉에 드러난 이야기만큼 그 밑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책입니다. 압제에서 해방되는 스토리, 무리가 공동체로 변화되는 이야기, 믿음과 순종을 배우는 이야기, 리더십 연구, 노동의 의무와 특권 (영광), 처음 시작하는 일, 아름다움의 발견,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간의 이야기, 사람에게 맡기는 하나님의 이야기…어떤 제목을 주고 출애굽기의 자리에서 글을 쓰라고 해도 가능할 것 같은 책입니다. 창세기를 읽고 연달아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두 책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한 스토리가 됩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 출애굽기의 성막 이야기는 북엔드 bookend 처럼 앞뒤를 지탱해 줍니다. 놀라운 것은 창조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창조의 기본을 알려주시며 맡기셨다는 점입니다.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성소를 창조하라고 ‘사람에게’ 명하십니다. 성막을 완성했다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처럼 된 것을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명령에 순종하여 일을 마쳤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풀려난 노예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 속에 함께 하는 그분의 파트너, 오른손, 심복이 되었습니다. 에덴과 광야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또 같은 방향으로 흐릅니다. 하나님의 파트너 오른손 심복이던 아담은 -짐승의 이름을 짓는 영광을 누린 아담은-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역시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에게 낙원은 없습니다. 실낙원 Paradise Lost, Lost Paradise 만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낙원의 꿈만 있을 뿐 낙원의 현실은 없습니다. 출애굽기는 억압에서 풀려난 백성이 해방을 받은 이야기까지만 담습니다. 해방 받은 백성의 그 다음 이야기는 다른 책들에서 이어집니다. 성서의 이야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스토리 never ending story 지만, 달리 말하면 늘 계속되는 ever continuing, 늘 시작하는 ever starting 스토리입니다. 성서의 스토리에는 인간의 죄 만 담겨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로 시작된 스토리이며 하나님의 인내가 이끌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인간은 순종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합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인간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뒤에 인간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왕의 시대가 이집트에 왔듯, 광야를 잊은 왕과 백성의 시대가 이스라엘에 찾아 옵니다. 성소를 짓고도 하나님을 잃은 백성처럼 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새로 지어진 사람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있게 하시는 곳에서 주님을 경배하며 이웃과 화목하며 역사의 무게를 느끼며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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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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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출애굽기 마지막 말씀을 묵상하니 온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창1 ;31)라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생명있는 생물을 주시고 또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시고 함께 사시기를 원하셨지만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한 유혹에 넘어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잃어 버렸지만 백성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믿는자 마다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보이는 세상 유혹에 빠져들어가 아직도 주님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요. 

    주님. 영혼의 눈이 유혹의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니 말씀을 통해 영혼의 눈을 뜨게하셔서 바라보고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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