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모세가 진 바깥에 있는 회막에서 하나님과 나눈 대화가 이어진다. 하나님은 앞에서 “내가 한 천사를 보낼터이니, 그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2절)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아닌 다른 누구에게 인도 받고 싶지 않다고 말씀 드린다(12절).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면서,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간청한다(13절).
모세의 간구에 주님은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14절)고 답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과 같이 가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보내지 말아 달라고 청한다(15절).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이스라엘 백성의 “구별됨”은 사라질 것이며(16절), 가나안 땅으로 올라갈 목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신다(17절).
모세는 내친 김에 “주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청한다(18절). 호렙산 떨기 나무 불꽃을 통해 만난 후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져왔지만, 그분을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영광을 그의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고 하시면서(19절),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20절)고 하신다. “얼굴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가 환히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눈이 태양빛을 직시할 수 없듯,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없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위 위에 서 있으라고 하신다(21절). 그러면 당신의 영광이 지나갈 것이고, 그가 죽음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당신의 손바닥으로 가려주겠다고 하신다(22절). 그 뒤에 하나님은 손바닥을 거둘 것인데, 그 때 그는 하나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23절). “하나님의 손바닥” 혹은 “하나님의 등”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인간에 빗댄 은유다. 예수님도 성령을 “하나님의 손가락”(눅 11:20)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하나님의 등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간접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만 본다는 뜻이다.
묵상:
모세는 하나님의 냉담해진 마음을 녹이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자신에 대한 그분의 애정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선택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같이 가시지 않겠다면 차라리 올려보내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가시지 않으신다면, 시내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는 뜻입니다. 그 간절한 청에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32장부터 33장까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하나님이 상황에 따라서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별력을 잃고 변덕부리는 옹고집쟁이 영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말썽꾸러기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심정을 상상하면 납득이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부모는 아이의 기분을 맞추어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쩔쩔 맵니다. 인간 관계에서 사랑이 더 큰 사람이 언제나 을이 되는 법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쩔쩔 매십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통해 그분은 결국 사랑의 길로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제대로 본다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 갑(甲)”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을처럼 행동하십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철없는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절대 을인 것처럼, 변덕이 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을이 되셔서 쩔쩔 매십니다. 참, 믿어지지 않지만, 그것이 십자가가 전하는 진실입니다.
기도:
주님, 주님께서 저희같은 존재들에게 쩔쩔 매신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는 주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사랑에 두 팔 들고 항복합니다. 저희에게는 아무 자격 없으나, 저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저희를 절대값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오, 주님, 감사,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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