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3장 12-23절: 사랑 때문에

2–3 minutes

해설:

모세가 진 바깥에 있는 회막에서 하나님과 나눈 대화가 이어진다. 하나님은 앞에서 “내가 한 천사를 보낼터이니, 그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2절)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아닌 다른 누구에게 인도 받고 싶지 않다고 말씀 드린다(12절).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면서,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간청한다(13절). 

모세의 간구에 주님은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14절)고 답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과 같이 가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보내지 말아 달라고 청한다(15절).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이스라엘 백성의 “구별됨”은 사라질 것이며(16절), 가나안 땅으로 올라갈 목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신다(17절). 

모세는 내친 김에 “주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청한다(18절). 호렙산 떨기 나무 불꽃을 통해 만난 후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져왔지만, 그분을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영광을 그의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고 하시면서(19절),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20절)고 하신다. “얼굴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가 환히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눈이 태양빛을 직시할 수 없듯,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없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위 위에 서 있으라고 하신다(21절). 그러면 당신의 영광이 지나갈 것이고, 그가 죽음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당신의 손바닥으로 가려주겠다고 하신다(22절). 그 뒤에 하나님은  손바닥을 거둘 것인데, 그 때 그는 하나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23절). “하나님의 손바닥” 혹은 “하나님의 등”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인간에 빗댄 은유다. 예수님도 성령을 “하나님의 손가락”(눅 11:20)에 비유한 적이 있다. “하나님의 등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간접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만 본다는 뜻이다. 

묵상:

모세는 하나님의 냉담해진 마음을 녹이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자신에 대한 그분의 애정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선택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같이 가시지 않겠다면 차라리 올려보내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가시지 않으신다면, 시내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는 뜻입니다. 그 간절한 청에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하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32장부터 33장까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하나님이 상황에 따라서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별력을 잃고 변덕부리는 옹고집쟁이 영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말썽꾸러기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심정을 상상하면 납득이 됩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부모는 아이의 기분을 맞추어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쩔쩔 맵니다. 인간 관계에서 사랑이 더 큰 사람이 언제나 을이 되는 법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쩔쩔 매십니다. 그런 우여곡절을 통해 그분은 결국 사랑의 길로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제대로 본다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 갑(甲)”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을처럼 행동하십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철없는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절대 을인 것처럼, 변덕이 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을이 되셔서 쩔쩔 매십니다. 참, 믿어지지 않지만, 그것이 십자가가 전하는 진실입니다.   

기도:

주님, 주님께서 저희같은 존재들에게 쩔쩔 매신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는 주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사랑에 두 팔 들고 항복합니다. 저희에게는 아무 자격 없으나, 저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저희를 절대값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오, 주님, 감사, 감사합니다. 아멘. 

7 responses to “출애굽기 33장 12-23절: 사랑 때문에”

  1. billkim9707 Avatar

    임마누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을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만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같이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신실하신 주님을 의지하며 살기어렵고 힘든 세상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만끽하며 살고 함께하시는 주님을 비록 피부로 느끼지 못할지라도 주님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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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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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며칠 전에 성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 잠시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 성서의 66권이 각각의 책으로, 그리고 두꺼운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된 성경이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라는 말을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소돔과 고모라를 전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설득해보려는 아브라함과 모세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모세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리십니다. 본문을 두번째 읽을 때 14절에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이 특별하게 들렸습니다. 모세에게 그만 청해도 된다, 그래 그래 알았다 네 말을 들으마, 내가 직접 너희와 갈테니 걱정하지 말아라…하시는 것 같습니다. 모세야 그만 울어라, 그만 해라, 네 말대로 하자, 이제 쉬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이십니다. 모세의 눈을 가리시고 그의 앞을 지나가시되 마지막에 잠깐 당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었어도 바위 틈 어두움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온 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눈이 떠졌을 때는 하나님의 뒷모습이, 그분의 등이 얼핏 보였습니다. 회막 안에서 하나님과 마주하고 face to face 대화를 하던 모세는 이제 사람을 보듯 하나님의 등까지도 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나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다고 하시고, 이름으로도 그를 아신다 (17절)고 하십니다. 모세를 잘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제 모세 또한 하나님을 안다고 말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과 대화도 하고, 그분의 뒷모습도 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일이 평강 중에,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낄 것이 없는 좋은 때에 일어나지 않고 절대 위기의 때에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보는 은혜가 임하는 것은 우리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상 (prize) 이나 보상 (reward) 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공이 있어서가 아니라 불쌍해서, 안 됐어서, 가엾어서 은혜를 베푸시고 마음을 돌리시는 겁니다. 왜? 사랑하니까. 그게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니까… 오늘 묵상은 칼스테이트 유니버시티 롱비치 캠퍼스에서 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오늘 오후까지 1박 2일의 일정으로 미션 유 (Mission u) 미국 여선교회의 교육 프로그램인 선교학교에 와 있습니다. 해마다 여름에 2박 3일로 한쪽에선 영어 클래스, 한쪽에선 한국어 클래스로 진행했는데 올해 처음 따로따로 모입니다. 어제와 오늘 영어 선교학교에 참가하고 다음 주엔 한국어 학교에 참가할 계획입니다. 주제는 ‘희망의 연습 Practicing Hope’ 입니다. 모든 것이 편하고 좋을 때는 딱히 ‘희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희망하고 희망을 구할 때는 상황이 희망적이지 않을 때입니다. 역설입니다. 희망이 사라진 것 같고, 희망할 것이 없어 보이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희망을 붙잡습니다. 왜? 하나님이 희망이니까. 모든 것, 모든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해 삽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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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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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새벽 예배 목사님의 설교 말씀중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 그리하여 네가 안전하게 하겠다.”(14)는 하나님 말씀에 감동에 감동을 주셔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도록 큰 은혜를 주심에 감사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집이 쎄고 제멋대로 사는 백성들의 회개에 감동하시고 사랑 때문에 함께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여 주심을 믿고 기도 했지만 새벽예배에 성령께서 나의 영혼을 터치해주심을 통해 함께하심을 오늘 만큼 큰 확신을 주신적이 기억으로는 없는것 같습니다.주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은총을 이웃과 나누는 남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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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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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비구름이 완전히 물러가 화창한 토요일 아침입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물놀이를 할 계획이에요. 기쁘고 감사한 날.

    더 이상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신 주. 그 분이 마음을 바꾸시네요. If you are pleased with me, teach me you ways. 모세의 이런 요청에 대해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갈 것이라고 약속해 주세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백성의 범죄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는 듯이. 그리고 그 이유.

    “Because I am pleased with you and I know you by name”

    이게 무엇일까요? 모세, 그 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 한사람을 아심으로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시다니요?

    한 사람의 가치가 백만 사람의 가치와 등가교환되는 걸까요? 모세는 죄 없는 완전한 인간이었을까요? 미래의 일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더 이상 같이 가지 않겠다고 이전에 말씀하신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시간에 갇혀 사는 유한적 피조물. 그런 우리는 미래는 알지 못하고 과거는 고칠 수 없어요. 현재는 매순간 없어지지요. 그런 내가 시간을 창조하시고 공간과 자연을 안팎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왜 모세를 사랑하시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스스로 있는자 (I AM)깨서 “내가사랑할 자를 내가 사랑한다” (I will have mercy on whom I will have mercy. I will have compassion on whom I will have compassion)라고 하시네요.

    하나님의 얼굴은 보지 못해요. 그분의 등자락, 그 영광의 광채, 청동거울에 비추이는 계시(revelation)의 그림자만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십자가. 십자가의 사랑이, 그 보혈이, 그 대속이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표징이겠죠?

    광대하신 하나님. 차원을 알 수 없는 하나님. 이해가 아닌 신앙과 얘배의 대상이신 분. 경배해요.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 그 비밀을 알려주신 것. 모세의 이름을 아시는 것처럼 내 이름도 아신다 약속하신 것. 괴로운 광야의 길을 함께 가주시며 저 요단 건너 가나안 성까지 인도해 주시는 것을.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영광 받으시는 하루가 되길. 영광 돌리는 삶이 되었으면.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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