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3장 20-33절: 우상 숭배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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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렇게 여러 지침을 주신 후에 하나님은 “이제 내가 너희 앞에 한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켜 주며, 내가 예비하여 둔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겠다”(20절)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그 천사의 말에 순종하라고 엄히 명령하신다(21절). 그 천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주민을 쫓아낼 것이다(22-23절). “내가 그들을 전멸시키겠다”는 말은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게 할만한 말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죄 없는 가나안 백성을 쓸어 버린 것이 아니라, 가나안 백성이 죄의 분량을 가득 채웠기에 심판하신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이 남겨 놓고 간 모든 신당과 신상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24-26절).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만을 섬기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다. 이 세상에 인간을 사랑하고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다. 다른 신은 모두 우상이다. 그 우상을 섬기는 순간 인간은 그 신의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질투하는 하나님”(20:5)이라고 소개하시면서 독점적인 충성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위엄”(27절)을 그들에 앞서 보내어 모든 백성을 흩어 버리겠다고 하시고, 또한 “말벌”(28절)을 보내겠다고 하신다. 말벌은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비유다. 말벌이 날아다니면 사람들이 그것을 피하느라고 정신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위엄이 이스라엘 백성에 앞서서 이방 민족들에게 나타나면 그들이 혼란스러워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뒤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점진적으로 그 땅을 점령할 것이다(29-31절). 그 땅에 들어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주민과 언약을 맺어서도 안 되고, 그들의 신과도 언약을 맺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지고, 그것이 “너희를 잡는 덫”(33절)이 될 것이다.

묵상:

인간의 죄성은 대용품을 찾아 대리 만족하는 경향에서 잘 드러납니다. 인격적인 사랑에의 욕구를 감각적인 쾌락으로 대리 만족하려는 경향이 그 예입니다. 감각적인 쾌락은 자기 중심적이고, 쉽게 얻고 버릴 수 있습니다. 반면 인격적인 사랑은 자기 초월적(타자 지향적)이고, 지속적인 인내와 헌신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격적 사랑 대신에 감각적 쾌락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우상 숭배에 빠지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려면 그분 앞에서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과 편의와 의지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그분은 온 우주에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을 아는 사람은 다른 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독점욕”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에게는 우리의 사랑과 헌신이 필요 없습니다. 그분 자체로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독점적 헌신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보다 더 큰 존재는 하나님 밖에 없고,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하고 복되게 하실 분도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우상에 한눈을 파는 이유는 자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 된 욕망을 두둔해 주고 그것을 채워 줄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부릴 만한 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살든 상관하지 않고 화를 막아주고 복을 빌어줄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으면서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우상 숭배의 죄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가나안 토착민들이 당했던 동일한 운명, 즉 그 땅이 그들을 토해내는 운명을 만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신론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더 이상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론들은 더욱 세련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속과 주술은 유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서 행했던 잘못을 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구제 불능의 인간 존재입니다.

기도:

이 불신의 시대에 저희를 이방인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과학 지식과 물질 문명으로 인해 한껏 교만해진 저희 세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희로 하여금 이 시대에 남은 자들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responses to “출애굽기 23장 20-33절: 우상 숭배의 이유”

  1. billkim9707 Avatar

    물질 문명이 우상이 된 세상, 재물과 명예와 안위를 추구하는 세상을 거슬러 사는것이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함께하시는 주님을 피부로 늦기지 않더래도 주님의 약속을 온전히 의지하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전쟁이 점점더 커저가고 자연재해가 점점더 심해저가는 세상을 보고는 절망과 두려움뿐입니다만 매일 아침 말씀으로 새나라와 새땅의 소망을 주시니 낙심치않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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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석 달쯤 전에 클래식 FM 방송에서 막스 릭터 (Max Richter)라는 독일인 작곡가며 피아니스트가 작곡한 비발디의 사계를 들었습니다. ‘Vivaldi’s Four Seasons Reimagined by Max Richter’ 라는 음반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친숙한 오리지널 ‘사계’인데도 더욱 강렬하고 빠르고 깔끔하면서 과감했습니다. 오리지널이 아름답다면 새로 상상하는 사계는 신비하다고 할까요. 오리지널 사계가 지구의 사계라면 새로 작곡한 사계는 우주의 사계, 은하수의 사계라고 할까요. 작곡가 막스 릭터는 지구에 도착한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는 인간의 성찰을 담은 영화 Arrival (2016)에 나오는 ‘낮의 성격에 관하여 On the Nature of Daylight’ 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막스 릭터의 사계는 비발디의 사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리지널 사계의 75퍼센트를 ‘없애고’ 다시 작곡했다지만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오고 모든 것이 많고 풍성한 지금도 고전은 고전의 향기가 있습니다. 시대와 무관한, 시대를 뛰어넘는 적절함이 있습니다. 당장 성서가 좋은 예입니다. 아침마다 읽는 이 오래된 책에 아침마다 읽는 뉴스의 new-ness 가 있습니다. 성서의 인물과 사건은 한 시대에 고정된 박제품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나 있는 인간이고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비발디도 계속 나올 것이고, 비발디를 새로 상상하는 릭터도 계속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회성의 기적 같은 선물을 주시기도 하지만, 화수분처럼 마르지 않는 보물단지 같은 은혜를 주십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할 수 있겠나,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행동을 적극 취하지 않을 뿐 내면으로는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짓고 있을 수 있습니다.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우상 숭배를 하는 가능성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의 신에게 절하거나 예배하지 마라 (24절)고 명합니다. 형상화된 신상과 예배 때 사용하는 돌 기둥을 없애라고 합니다. 신상과 돌 앞에서 빌면 우상 숭배고, 하지 않으면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명쾌하게 말하는 것으로 끝나면 좋겠습니다만, 우상은 도처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못 볼 때, 주의 선하심이 믿기지 않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주님에게서 떨어져 있고 싶을 때, 주의 은혜가 시들하게 느껴질 때… 마음에 우상이 들어오는 때입니다. 삶에 큰 변화가 닥쳐서, 혹은 우연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어 우상을 찾는 일도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데 놀라기도 합니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던가, 그럴 일 없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성실하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면 무섭기도 합니다. 마음을 살필 일입니다. 의도를 점검할 일입니다. 나의 에고가 어디쯤에 있는지 생각할 일입니다. 주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을 때,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을 때 마음을 뒤져서 우상을 찾아내야 합니다. 성경이 새롭게 읽어지지 않을 때, 다 아는 소리라며 ‘무시’하고 넘어갈 때가 숨어 있는 우상을 잡아내야 할 때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상상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나를 꿈꾸며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우상은 없습니다. 주님 뿐입니다. 주님이 보이면 우상은 사라지고 맙니다. 매일 주님을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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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본래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습성을 아시고 백성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제시하시어 지키도록 명령하시고 안내자 겸 감독자 천사까지 보내주겠다고 하십니디.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백성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고 욕망과 쾌락의 숲속에서 안주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기 전에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우리의 구원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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