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3장 14-19절: 주 하나님 앞에

3–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에 대한 규정에 이어, 세 차례의 절기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14절). 한 주간의 마지막 날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에 세 번 절기를 지켜야 했다. 

첫째, “무교절”은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일 주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기간이다. 이 절기에 대해서는 12장 15-20절과 13장 3-10절에 자세히 나와 있다. 첫날과 마지막날에는 모두가 모여 예배를 드려야 했고, 예배 중에 예물을 드려야 했다(15절).

둘째, 밀이 익어 추수한 후에 그들은 “맥추절”(16절)을 지켜야 했다. “칠칠절”(34:22)이라고도 부르고, “오순절”이라고도 부른다. 축제는 일 주일 동안 지속되었고, 첫날과 마지막날은 모두가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오월 하순 혹은 유월 초순에 지키는 절기다. 후에 이 절기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의미가 더해졌다. 

셋째, 마지막 추수한 후에 “수장절”을 지켜야 했다. 이 절기는 “초막절” 혹은 “장막절”(레 23:33-43)이라고도 불렸다. 구월 하순이나 시월 초순에 지키는 절기로서, 후에는 광야 유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의미가 더해졌다(레 23장 42-43절). 이 절기도 역시 일 주일 동안 지속되었고, 첫날과 마지막날에는 예배를 드렸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세 절기를 반드시 지켜야 했다(17절).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때 “피를 누룩 넣은 빵과 함께”(18절) 바쳐서는 안 되었다. 피는 생명이며,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레 17장 14절). 따라서 피를 마시는 것은 생명의 주인인 하나님께 죄를 짓는 행위가 된다. 제물을 드릴 때에도 피는 모두 흘려보내야 했다. 이 금령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피를 마시고 싶은 갈망을 불러 일으켰다. 피를 마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누룩 넣은 빵에 피를 적셔 제물을 드리는 꼼수는 피를 먹고 싶은 욕망에서 나왔다. 

“기름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는”(18절) 행위는 의도적일 수도 있고(남은 것을 자신이 먹어 치우려는) 부주의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 규정은 제물을 바칠 때 정성을 다해, 온전하게 바치라는 의미다. 짐승을 제물로 바칠 때처럼 곡물이나 열매를 바칠 때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19절). 짐승을 바칠 때 일부를 떼어 놓는 행위와 곡물이나 열매를 바칠 때 아무 것이나 바치는 행위는 근본에 있어서 같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34장 26절과 신명기 14장 21절에도 나온다. 우유와 고기를 철저히 분리하여 요리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이 여기서 나왔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당시 이방 민족들이 행하는 종교 의식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축의 생산력이 더 증대한다고 믿었다. 이것을 금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가축의 생산력은 오직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 있다. 둘째,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은 창조 질서와 인간성에 어긋난다.     

묵상:

한해에 세 번 절기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규정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세심한 배려에서 나왔습니다. “무교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노예 살이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주신 은혜 때문임을 기억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첫 추수 후에 지키는 “맥추절”과 마지막 추수 후에 지키는 “수장절”은 그들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감사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절기에 드리는 제사에 최선의 제물을 가지고 와서 온전히 바치도록 요구하신 것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절기와 오늘 세상에서 즐기는 축제는 그 동기와 목적과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서의 절기는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세상의 축제는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게 합니다. 성서의 절기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기억하고 인간의 본래적 삶을 회복하자는 것이고, 세상의 축제는 모든 질서와 규범을 넘어 혼돈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성서의 절기는 세상의 첫 날인 것처럼 깨어나자는 뜻이고, 세상의 축제는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마구 망가지나는 뜻입니다. 성서의 절기는 창조와 회복을 위한 것이지만, 세상의 축제는 파괴와 훼손을 위한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남자들은 모두 한 해에 세 번 주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17절)는 말씀은 오늘을 사는 도시민들도 귀담아 듣고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 주일에 하루, 매 년 정기적으로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기억하여, 감사하고 축하하고 베푸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새 세상의 축제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루에 한 시간, 일 주일에 하루, 매 년 정한 시간, 주 하나님 앞에 나와 머물기를 원합니다. 주 하나님 앞에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고, “참 좋다!”고 하셨던 그 태초의 평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저희의 분주한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바쁜 걸음을 붙잡아 주십시오. 주님 앞에 머물러 있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기쁨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responses to “출애굽기 23장 14-19절: 주 하나님 앞에”

  1. billkim9707 Avatar

    명하신 축제를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데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축제, 한시적인 즐거움에 자주 너머지며 낙심하는 한심한 존재입니다. 항상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고 예배드리며 사는것이 영원하고 최상의 축복인것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주님뒤를 따르는 매일 매일의 삶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수없는 존재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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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인간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쉽게 잊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만나를 매일 먹음으로 건강한 영혼과 육으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 세상일에 몰두하고 있는 백성들이 만나를 먹고 쉼을 얻어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품격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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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저녁은 합창 연습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교회 성가대를 못하는 대신에 한인 커뮤니티 합창단에 나가고 있습니다. 어려운 곡은 아닌데 싱코페이션이 있는 부분을 살리지 못해 여러번 집중적으로 디테일하게 연습하다 다들 피곤해하며 헤어졌습니다. 지휘자는 어찌 그리 리듬감이 떨어지냐며 안타까와했고, 우리 스스로도 ‘못 갖춘 마디’ ‘당김음’ ‘엇박자’로 구성된 싱코페이션 부분을 한 목소리로 맞추지 못하고 지저분하게 (지휘자 표현) 부르는 우리의 무능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지휘자는 한국 사람이 대체로 리듬감이 부족해서 곡을 맛깔나게 부르지 못한다는 평소의 비판을 되풀이했고 급기야는 모두 일어서서 제자리 행군을 하며 엇박자를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박자가 마디 안에 들어간 음표의 각 값 (길이)이라면 (4/4 박자, 3/4 박자 등) 리듬은 음표의 길이와 쉼표의 시간과 순서를 말합니다. 음을 내다가 쉬고, 쉬었다 다시 부르면서 곡의 패턴과 운동감이 생겨납니다. 일정한 패턴의 반복이나 변화 등이 리듬에서 나옵니다. 곡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해결이 리듬에 달렸으니 그 곡의 감성은 리듬감과 직결됩니다. 어제 말씀은 ‘안식’에 대한 것이었고 오늘은 절기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리듬’이구나 싶습니다. 안식과 절기는 진행을 잠시 쉬는 것, 가다가 멈춰 서는 것, 눈을 잠시 감는 것…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쉼표이고 글자가 없는 공백입니다. 싱코페이션의 유쾌하며 멋진 리듬일 때도 있고, 정박자로 따박따박 안정감을 주는 리듬이 될 때도 있습니다. 리듬감이 있는 하나님은 얼마나 멋진 하나님이신지요. 리듬은 생명력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계절은 자연의 리듬을 드러냅니다. 모든 생명체는 시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지배 속에서도 계절과 절기 덕분에 숨을 길게 내쉴 수 있습니다. 안식일과 절기를 정해 주심으로써 하나님은 즉흥적인 임금이 아닌 것을 알려 주십니다. 자기 기분이 좋으면 백성에게 쉬라고 하고, 언짢으면 노동의 강도를 높이는 그런 왕이 아닙니다. 휴식과 잔치도 질서를 따릅니다. 예측할 수 있으면 선진국이고 예측할 수 없으면 후진국인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리듬에 나의 리듬을 맞추고 싶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행군의 박자를 알려 주시고 당신의 리듬을 가르쳐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행진과 쉼이 조화를 이루게 하소서. 온 세상이 주의 음악으로 가득한 것을 듣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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