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9장: 시내 산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다

2–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스라엘은 르비딤에서 보름 정도를 지내고 시내 광야로 이동한다(1-2절). 장막을 치고 자리를 잡게 한 다음 모세는 시내산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당신이 하신 일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가운데서 당신의 “보물”(5절)이 될 것이며 당신이 “선택한 백성”이 되고 당신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민족”(6절)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목적을 처음으로 천명하신 것이다. 모세는 산을 내려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백성은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한다(7-8절).

모세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서자,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 주실 것이라고 예고하신다(9절).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만남의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을 준비시키라 하신다. 사흘 후에 당신을 드러내실 터인데, 백성은 이틀 동안 그 사건을 위해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10-11절). 또한 하나님은 산 아래에 경계선을 정하여 때가 이르기 전에 산에 오르는 일이 없게 하라고 단단히 이르신다. 때가 오기 전에 경계선을 넘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12-13절).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는 셋째 날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성결하게 한다(14-15절). 셋째 날이 되자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가 나며,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산양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16절) 퍼진다. 그 모습에 진에 있던 모든 백성은 두려워 떤다. 모세는 백성을 진밖으로 불러내어 산 아래로 모은다. 하나님의 위엄을 제대로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17절). 그 때 시내산에서는 마치 불가마처럼 연기가 솟아오르고 진동한다(18절). 나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을 아뢰니, 하나님은 “음성으로”(19절) 그에게 대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 정상으로 부르신다(20절).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백성이 경계선을 넘어 와 죽는 일이 없게 하라고 경고하신다(21-22절). 모세는 충분히 일러 두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23절). 그러자 하나님은 내려가서 아론을 데리고 올라오라고 하신다. 단, 아론 외에 다른 제사장은 경계선을 넘어 올 수 없다고 하신다(24절). 모세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행한다(25절).

묵상: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숨어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육적 존재이기에 영이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성을 부여하셨기에 영이신 하나님을 어렴풋이 알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육안으로 볼 수 없고 그분의 음성은 귀로 들을 수 없습니다. 그분의 존재를 우리의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영이신 하나님과 육적 존재인 우리 사이의 거리입니다. 

그 거리를 우리 편에서 뛰어 넘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 거리를 뛰어 넘으실 수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육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수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하고자 하시면, 우리의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방식으로 하나님은 당신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하지만 당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는 않으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안으로 태양을 응시하면 시력에 해를 입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그 영광에 압도되어 숨이 멎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이런 일은 일상사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이와 같은 특별한 방식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이유는 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건은 일상 가운데 침투한 특별한 사건입니다. 시내 산에서의 현현처럼 부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 20:29)고 하셨습니다.

기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는 바울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주님, 저희도 이 믿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자주 눈을 감고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그 눈으로 현실 세상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responses to “출애굽기 19장: 시내 산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다”

  1. billkim9707 Avatar

    감사합니다! 주님의 죽음으로 휘장이 찢저져 저희들이 항상 주님의 지성소에 들어가더라도 죽지않을뿐만 아니라 택하신 백성, 왕과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해주신 그토록 놀라운 감당할수 없는 은혜를 믿습니다. 저희들의 삶이 이토록 엄청난 은혜를 보답하지 못하는 실상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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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출애굽기가 새롭게 읽힙니다. 한국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시간을 지나고 있기에 매일 읽는 출애굽기에 더욱 몰입하는 것 같습니다. 혼탁하고 어두웠던 지난 몇 년 간의 상황이 12월에 정점을 찍었고, 그 후 긴장과 불안은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인은 한국에 거주하든 바깥에 거주하든 나라를 걱정하며 최선의 길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겨울부터 봄까지 한국은 몸살을 앓았습니다. 선거로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광야에 접어든 지 석 달이 된 이스라엘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한국이 귀담아 들어야할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설레고 또 조금은 무서운 심정으로 출애굽기를 읽습니다. 출애굽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텍스트 text 가 있고 밑에 (자막 같은) 섭텍스트 subtext 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예로 싸움을 듭니다. 홍해를 건너기 직전에 파라오와 맞서는 싸움을 하고,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가 곧 (두 달 반 지나) 아말렉과 싸웁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더블 텍스트가 있는 걸로 압니다. 내가 묵상 중에 보는 것은 이런 신학적인 분석과는 조금 다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무 것도 아닌 히브리 백성을 도와주신다는 혁명적이고 전복적인 스토리를 중심 텍스트 삼고 그 밑에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개인의 이야기가 섭텍스트로 들어온다는 점에 놀라고 있습니다. 파라오를 물리쳐 주신 하나님의 이야기 밑에는 아말렉과 직접 싸운 여호수아와 백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의 고백과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했습니다’의 고백이 같이 갑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한 번 씩은 그 말씀에 머물러 생각하고 싶어집니다. 왜냐면 출애굽기는 하나님과 백성이 약속을 맺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제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 중에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you will be my special treasure (5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백성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일방적인 명령에서 약속으로 바뀌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백성의 답변이 뒤따르면서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 됩니다. 일방이 아니라 양방향이 되었습니다. 놀랍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일까요. 이스라엘이 답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너희가 지키든 안 지키든 나는 그래도 너희의 하나님이다 이러셨을까요. 사실 내용적으로는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계 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에고 에이미, 나는 나다 이십니다. 하나님과 백성이 언약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자유의지의 분명한 적용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언약을 ‘지키면’ 이라는 말은 안 지킬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리스크입니다. 자유를 주면 리스크가 생깁니다. 리스크가 무서우면 자유를 뺏으면 됩니다. 동의하지 않는게, 싫다고 하는게 두려우면 동의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면 됩니다. 싫다 소리 못하게 막으면 됩니다. 그게 억압입니다. 그게 조종입니다. 당근으로 억압하든, 채찍으로 억압하든. 고기 삶는 솥이든, 늘어난 노동시간이든. 당시 이집트와 그 주변 나라들이 신으로 여기던 존재들과 모세가 전하는 신은 이제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한 분이신 야훼 하나님의 발견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받아 들이고 믿고 사랑하는 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에게 그런 존재로 살자는 약속을 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입니다. awesome and amazing God 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텍스트에 나의 텍스트를 얹을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기억하며, 약속을 지키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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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5~6) 

    주님. 조국, 남과 북이 주안에서 하나가되어 1900년도에 평양에서 성령의 불이 일어났던 것처럼 제주에서 함경북도까지 성령의 새로운 불길이 백성들의 구시대의 영혼과 육신을 태워 새사람으로 거듭남을 통해 택한 백성이 되어 마지막 시대의 제사장 나라가 되어 온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는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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