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장 1-18절: 예배의 이유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체험한 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노래를 불러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노래의 화자는 일인칭 단수(“나”)로 되어 있다(1절). 모세의 노래에 회중이 화답하는 형식으로 불렸을 것이다. 

그는 먼저 주님께서 하신 일을 묘사하면서(4-5절),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나의 하나님”, “내 아버지의 하나님”, “용사”(2-3절) 등의 표현으로 주님을 찬양한다. 그런 다음 모세는, 원수들이 자신들을 멸하려 했지만, 주님께서 권능의 손으로 그들을 멸하셨다고 술회한다(6-10절). “오른손”(6절)은 “강한 능력”을 상징하는 은유다. 

그 모든 일을 생각하면서 모세는 “신들 가운데서 주님과 같은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11절)라고 고백한다.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7절)에게 주님은 두려움이지만,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은 사랑”(13절)이시다. 그 사랑으로 주님은 이집트의 공격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주변의 여러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있다(14-15절). 이런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백성을 당해 낼 민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주님께서 속량하신 이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돌처럼 잠잠하였습니다”(16절)라고 고백한다. 미래에 소망하는 일을 과거형으로 표현함으로 그는 주님께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낸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결국 여러 민족의 땅을 지나 “주님의 소유인 주님의 산에 심으실”(17절) 것이며, 그곳에서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18절)이라고 전망한다. 

묵상: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신을 찾고 예배를 시작했다고 말하지만, 다른 종교는 몰라도, 적어도 성서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에서 예배와 찬양의 동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에 눈 떴을 때 솟아나는 압도적인 감사와 감격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원을 얻은 후에 함께 모여 감사와 감격의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모세의 노래”라는 이름이 붙은 이 노래는 그 예배에서 즉흥적으로 불려진 후에 전승되며 확장되고 심화되었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예배와 찬양은 과거를 회상하며 감사하고 미래를 소망하게 만듭니다. 바로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 민족들의 땅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 민족들이 순순히 길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예배와 찬양을 통해 주님께서 과거에 해주신 일을 기억할 때, 미래에도 그렇게 지켜주실 것을 믿게 됩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속량하신 이 백성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돌처럼 잠잠하였습니다”(16절)라고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결국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정기적인 예배와 찬양을 통해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과 소망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예배는 시작되고, 그 예배는 믿음을 더 깊게 해주고 소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이 강해지면, 예배는 더욱 살아나고, 예배가 살아나면 믿음과 소망은 더 뜨거워접니다. 그래서 “예배 없이 믿음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예배가 주님의 임재와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의 반응이 되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예배와 찬양이 살아 있게 하시고, 그로 인해 주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이 더 깊어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출애굽기 15장 1-18절: 예배의 이유”

  1. bull9707 Avatar
    bull9707

    끝없이 교활한 세상의 유혹이 공격 해옵니다, 그러나 전능과 신실한 주님의 오른손이 지켜주신것을 압니다. 영광과 감사를 주님께 드립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여 승리의 삶을 사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생각과 언행과 삶이 주님께 드리는 찬양과 예배드리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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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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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In your unfailing love, you will lead. In your strength, you will guide. The LORD reigns for ever and ever!

    몇일째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어둡고 스산한 아침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 최초의 찬송이라고들 하는 모세의 노래. 바다의 노래라고도 불리는 것 같지요?

    주의 놀라우신 구원. 그 ㅡ찬양과 감격을 노래하니 지금부터 싸워야할 대적들, 곧 블레셋, 모압, 가나안 족속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실패하지 않는 사랑, 완전하신 능력으로 주가 그 속량하신 백성을 자기의 성소로 이끄시고 다스리십니다. 영원 영원 또 영원히.

    아침 묵상 말씀처럼 기독교 신앙에서 예배의 이유는 찬양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합니다. 19년전 미국에 처음 이민왔을 때의 그 두려움과 막막함. 아이들도 함께 겪어야 했던 이민의 정신적 고통과 혼란. 아프리카에서 맡게된 어려운 직임. 아직도 장기 출장을 갈 때마다 느끼는 허다한 걱정과 중압감.

    그 크고 작은 전쟁들 가운데 주가 함께 하시며 능력의 오른 팔로 저를 지키시고 대적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 실패하지 않는 사랑, 그 완전하신 능력에 대한 찬양이 오늘도 예배의 이유가 되네요.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오늘도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오늘을 맞을 수 있게 하신 주. 사명과 목적을 주신 주. 사랑하고 지켜야할 사람들을 주신 주. 그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공의를 좇고 임자를 사랑하며 주와 함께 겸손히 걷는 삶이 되기를.

    매일의 삶이 노래가 되고, 찬양이 되며, 예배가 되었으면.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나의 예배가 멈추지 않기를. 기도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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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우리주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로서 피조믈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지독히도 자기 중심, 고집불통등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죄악속에서 구원하여주신 은총을 기억하며 매 순간순간의 삶속에서 신실한 예배자로 온마음을 다하여 예배드리고 십자가의 사랑을 맛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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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배는 무엇인가, 예배는 왜 드리는가, 무엇이 예배인가…교회에서 회의할 때 정식으로 제기하는 질문이기도 하고, 토의가 잘 안 될 때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예배이기도 하고, 예배를 왜 드리는가에 대한 답을 찾다 교회의 존재를 설명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 때의 예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인 예배를 뜻합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자기 혼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의 경우 (생전에 엄마가 그랬듯이, 지금 아들이 그러듯이)는 여기 해당되지 않겠습니다. 몇 달 전의 일입니다. 교회 소그룹 (속회) 리더가 이러저러한 일로 마음이 상했습니다. 맡은 일이 몇 가지 있는데 협조도 잘 안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 겪는 답답함이 자꾸 쌓이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만 늘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일 (사람) 때문에 크게 마음이 상했습니다. 교회를 안 나오겠다고, 누구누구한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더 이상 그 사람을 안 봐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듣는 나도 같이 속상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 들으니 더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일단 화를 가라앉히자고 말했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교회에 안 나오는건 ‘언제라도’ 할 수 있는데 이십년 가까이 다니던 교회를 그만 나오는 일을 그리 빨리 정하지는 말자고 달랬습니다. 예배를 못 드리겠다고, 예배가 안된다고, 예배 시간이 괴로운게 좀 되었다고 답을 합니다. 그 때 나는 예배가 뭔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고 말했습니다. 예배는 곧 설교라고 생각할 때가 너무 많은데, 목사님 설교는 예배의 한 부분이지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설교’라는 것도 다 자기 기준에서 하는 판단이라 설교에 따라 예배가 ‘좋았다,’ ‘별로다’하는게 예배자의 태도는 아니라는 평소의 생각도 말했습니다. 그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예배는 설교 뿐 아니라 기도와 찬양, 죄의 고백과 새로운 결단, 교우와의 사귐 등등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 싫을 때,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 때의 마음을 주님께서 모르시겠느냐고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은혜를 주시는 주님을 믿으며 기도하면서 이 시간을 넘기자고 했습니다. 몇 달이 그렇게 지나가고 그는 속장의 책임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해피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이 완전히 풀릴 때가 올 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넌 뒤에, 특히 파라오의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본 뒤에 부르는 오늘 찬양이 과연 나의 찬양이 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봅니다. 남의 불행과 멸망을 보며 나는 기쁘다고, 잘됐다고 외치는게 옳은건지 걸립니다. 윈윈의 상황에서 출애굽을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위선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알리시기 위해 파라오의 무릎을 꿇게 하셨다는 것은 파라오식의 세계관 -하나님 없는 세계, 오직 나 (권력)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관-을 무력화 하셨다는 뜻입니다. 권력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걸 보여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파라오도 살고 하나님도 전파되는 시나리오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파라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승리를 노래할 수는 없습니다.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하나님은 이 일을 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시험대에 올리십니다. 자유의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일부인 것을 보게 하십니다. 예배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찾는 일입니다. 하나님 세상인 것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진실을 공동체로 고백하고 인정하고 기뻐하는 시간이 예배입니다.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 누구와 예배를 드리든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예배에 빠져도, 예배에 딴 생각을 해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리지만 실은 우리가 살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하지 않은 채,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같이 멸망시키면서 당신의 능력을 보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는 기억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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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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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issful2a0acacad4 Avatar
    blissful2a0acacad4

    그 많은 바다는 동풍으로 어떻게 마른 땅이 되었을까?
    그 많던 잔인한 애굽의 두려움이 어떻게 한 순간 바다로 덮여 버렸을까?
    바다는 나아갈 수 없는 망망한 좌절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를 현실로 보는 소망의 자리였다.
    어찌 노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예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무릎을 꿇는다. 그 앞에 인생의 괴로움을 뚫고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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