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1장: 정의와 사랑이 만난 자리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마지막 재앙을 준비해 두고 계시다고 말씀하신다(1절). 그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것”이 죽는 재앙이다. 이 재앙이 내리면 바로는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그들을 서둘러 내보낼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러 이집트인들에게 은붙이와 금붙이를 요구하라고 하신다(2절). 하나님은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감을 가지게 하시고, 모세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게 해 주신다(3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넉넉한 재물을 가지고 이집트를 떠나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모세는 바로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의 집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집트의 모든 집안의 첫 아들과 모든 짐승의 맡배가 다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4-5절). 그 일로 인해 이집트에는 전무후무한 곡성이 들릴 것이라고(6절).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에서 면제될 것이며(7절), 모든 신하들이 바로에게 제발 떠나 달라고 사정할 것이라고(8절). 이렇게 말하고서 모세는 바로의 궁을 떠난다.

9-10절은 그동안 있었던 과정에 대한 간단한 요약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 이유는 바로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로의 고집을 꺾기 위해 마지막 조치를 준비하고 계시다.

묵상: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죄악에 대한 선택권이 무한정 허락되기를 바라는 반면, 하나님께서는 무한정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악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얼마든지 허락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한 없이 용서하시고 인내하시고 기다리기를 기대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혹은 “징벌하시는 하나님”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에는 한계가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은 존재할 수 없고, 지옥이 있다면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좁은 시각에는 사랑과 정의가 모순되어 보입니다. 사랑을 위한다면 정의를 외면해야 하고,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을 외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 ‘정의 없는 사랑’만을 기대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열 가지 재앙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도,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정의의 원리에도, 사랑의 원리에도 위배되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정의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정의가 있고,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정의 없는 사랑은 무력하고, 사랑 없는 정의는 잔인합니다. 참된 정의는 사랑을 포함하고, 진실한 사랑은 정의를 수반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에 대한 징벌을 요구하는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 죄인에 대한 용서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으로 정의를 이루고 정의로써 사랑을 완성하신 자리입니다. 이런 뜻에서 열 가지 재앙 이야기에 대한 묵상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향하게 만듭니다.    

기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정의와 사랑이 만난 자리입니다. 심판과 용서가 품어 안은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저희의 존재를 내어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게 하시고 의에 대해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6 responses to “출애굽기 11장: 정의와 사랑이 만난 자리”

  1.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그분의 공의와 사랑을 바로와 모세, 이집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임을 알려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지독하게도 말씀을 듣지 않아 결국 사랑과 공의로 뭉쳐진 십자가로 인류를 구원시킬 최후의 수단으로 삼으셨다고 믿습니다. 주님. 오만하고 자신만을 제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와 그에 따른 모든이들이 더이상 성령을 근심케하는 행위를 멈추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백성들은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그날이 속히오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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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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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llkim9707 Avatar

    아멘 아멘 아멘입니다, 오직 살길은 십자가입니다, 바로와같은 경직된 자신을 살리신 하늘의 지혜는 주님의 사랑과 정의가 십자가의 은혜로 온전하게 이루워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 한없는 영광을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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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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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공기가 제법 쌀쌀하지만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오늘은 애굽에 내려진 마지막 재앙, 장자의 죽음에 대한 예고.

    창조자의 심판은 그곳에 사는 이 모두에게 내려지네요. 애굽에도 선한 사람은 분명 있지 않았을지요? 그런데 선악의 구별은 따로 없네요. 오로지 이스라엘의 자손인가 아닌가, 곧 언약의 자녀인가 아닌가 구별만 있는 것 같아요.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오늘도 일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해요. 세상이 정말 어둡고 악하니 종말의 때를 가끔 생각하게 되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자. 그런 저를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약속의 자녀로 삼아주심을 기억합니다. 주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줄과 날줄처럼 만난 그 곳, 십자가.

    그 은혜가 내 영을 살리고, 내 입술의 찬양을 회복시켜주는 하루가 되었으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내 아뢸 것을 감사함으로 주께 아뢰는 그런 확신의 능력을 누리기를. 그 능력으로 슬픔과 고통의 풍랑을 헤치고 물위를 걷는 인생이 되기를.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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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지난주 금요일부터 앨러지가 심해서 약을 먹지 않으면 콧물과 재채기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로 손님을 받을 수는 없어서 약을 먹었더니 약에 취해 정신이 맑지 않았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갈 수 있겠나 싶었는데 새벽에 좀 좋아진 것 같아 추스리고 예배에 갔습니다. 어제는 낮에 교단 내 한인목회협의회의 인종정의 태스크포스에서 준비한 두번째 강의 ‘아시아계 미국인 역사’를 줌으로 참가했습니다. 밤에는 여선교회 쥬리스딕션 자문단 회의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앨러지는 약간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머리는 아픕니다. 약을 먹으면 먹는대로, 안 먹으면 안 먹는대로 따라오는 고통이 있습니다. 불편과 고통 사이 어디쯤입니다. 열 가지 재앙의 끝에 왔습니다. 맏이의 죽음입니다. 이집트의 사람 뿐 아니라 가축의 맏배도 쓰러지는 재앙입니다. 맏이의 위상이 이집트에선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장자, 맏이에겐 첫 소생이라는 뚜렷한 대우가 따릅니다. 부모의 또다른 자아라고 할까요. 부모의 기쁨과 기대가 장자에게 있습니다. 그런 장자가 쓰러졌다는 것은 부모 자신이 쓰러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아프고 더 슬픕니다. 앞의 재앙도 그랬지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제물의 의미일까요. 온 이집트를 대신해서 맏이들이 벌을 받습니다. 파라오도 이 충격을 흡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벌써부터 신하들과 백성의 원성이 대단합니다. 파국 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장자를 잃은 이집트의 울음이 온 세상을 뒤덮습니다. 히브리 산모가 사내 아기를 낳으면 입을 틀어막아 (그런 방법이었리라 상상합니다) 죽였던 이집트의 산파들은 자기 맏이를 잃으면서 그 때의 죄를 기억했을까요. 아 마음이 복잡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 치고는 재앙이 너무 큽니다. 너무 씁니다.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깨닫기까지 열 가지 재앙을 거쳐야 했다는 것이 너무 아픕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각자 나름대로 재앙의 문을 지나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재앙’까지는 아니어도 존재의 뿌리를 흔드는 아팠던 고통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날이었습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죽었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빵공장에서 작업 중에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막을 수 있는 사고사라고 해서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비극이 전부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이라는 공식에서 나온 답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의 모질고 고집된 죄의 값도 상당 부분일 것입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고통의 울음소리가 이집트 온 땅에 들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말씀에서 위로를 찾아야 할까요. 지금 가자 지구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읽는 재앙이 우리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파라오의 고집이 불러온 재앙, 우리의 고집이 일으키는 재앙. 하나님 앞에 회개할 일 투성입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가슴을 칠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주소서. 주를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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