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5장 22절-6장 13절: 역풍을 만났을 때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히브리 작업반장들로부터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한 모세는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호소한다(22-23절). 모세는 자신이 행동을 개시하면 즉시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자신이 나선 다음부터 상황은 더욱 꼬여갔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위반하고 “주님의 백성을 구하실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계신 것처럼 느꼈다.

그러자 주님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이제부터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6장 1절). 주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확인해 주신다(2-8절). 그곳은 족장들이 “한동안 나그네로 몸붙여 살던”(4절) 곳인데, 앞으로는 그들의 땅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7절)이라고 약속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나는 주다”(2절, 6절, 8절)라는 말을 반복하신다.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혹은 “나는 나다”)라는 말로 자신을 계시하신, 오직 한 분이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그런 분이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이니 틀림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은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사기가 떨어지고 두려움에 짓눌려 그의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9절). 이스라엘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 모세는 또 다시 낙심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를 찾아가 백성을 내보내라고 요구하라고 하신다(10-11절). 모세는 자기 백성도 설득 못하는데 어떻게 바로를 설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람을 설득하는 구변에 있어서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한다(12절).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론을 대변자로 내세우신다(13절). 

묵상:

모세는 바로의 부정적인 반응에 당황했겠지만, 크게 낙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예상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히브리 작업반장들로부터의 부정적인 반응은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어렵게 용기 내어 먼 길을 걸어와 위험한 일을 시작한 이유는 자신이 아니라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기는 커녕 비난하고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낙심천만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원망 섞인 말로 호소합니다. 

선교사로 혹은 목회자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자주 만납니다. 교회 안에서 교우들을 섬기는 직분을 맡아 행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사적인 안위와 행복을 희생하고 교인들을 위해 섬길 때, 헌신의 대상인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오해나 비난 혹은 험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당신의 일을 위해 부르셨으면 끝까지 책임 지셔야지 이게 뭡니까?”라고 저항하고 싶어집니다. “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까?” 혹은 “왜 저에게 이 일을 맡기셨습니까?”라고 호소하고 싶어집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제사장이며 선교사입니다. 각자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혹은 직장에서 부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헌신하는 대상으로부터 오해나 비난이나 험담을 듣게 됩니다. 그런 역풍을 만날 때면, 누구 말 마따나, “하나님, 믿는 거, 그만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쓸 데 없는 오지랖 떨지 말고 나나 잘 하자”고 움츠러 들기 쉽습니다. 

모세도 그랬다는 것이 큰 위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투정까지 들으시고 돌보신다는 것이 또한 큰 위로입니다. 

기도:

주님,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 6:9)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더 많이, 더 낮게 섬기게 하시고, 오해나 비난이나 험담이 마음을 흔들 때, 주님께서 끝까지 인도하실 것을 믿고 섬김과 헌신의 길에서 멈추지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8 responses to “출애굽기 5장 22절-6장 13절: 역풍을 만났을 때”

  1. billkim9707 Avatar

    오랫동안 저의 기도에 침묵하시는 주님께 불평대신에 찬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제 개인의 욕심이나 명예가 아니고 자녀들의 영혼구원입니다, 낙심 하지않고 주님이 저희들의 하나님 이시고 저희들 모두가 주님의 백성이 되는 귀한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고 남은 여생을 주님께 찬양하며 사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d by 1 person

    1. gachi049 Avatar
      gachi049

      아멘!!!

      주님!!!!!!

      Like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Like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모세가 상처를 받았습니다. 잘 해 주려고 한 일인데 그 마음을 몰라줍니다. 덤으로 비난까지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주께서 시키신대로 했는데 이게 뭐냐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셨을 때와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가 다르다고 하십니다. 모세의 조상들이 알았던 하나님과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나 다른 분이십니다. 조상에게 하신 언약은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그 때의 약속을 기억하시어 이제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모세와 백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약속을 기억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강제로 노예로 살아가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고된 삶이 하나님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고된 노예 생활 없이 약속의 선물을 받는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괴로운 시간을 지나지 않고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삶의 패턴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고통과 아픔은 삶에 따라오는 패키지입니다. 지금 모세가 처한 상황도 그렇습니다. 백성으로 부터 원성을 듣거나, 파라오로 부터 커다란 저항을 받지 않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만 머리 속에 그린 그림과 현실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실망감과 숱한 상처, 회의와 분노에 시달립니다. 그런 아픔을 겪고 다스리고 싸우다가 인생이 다 갑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다시금 힘을 내어 백성에게 전합니다. 백성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또 명하십니다. 파라오에게 가서 백성을 이집트에서 내보내라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중간에서 난처하기 그지 없습니다. 백성도 자기 말을 안 듣는데 파라오는 듣겠냐고 한탄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이 혹여 말솜씨가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요 라는 말까지도 합니다. 메세지 성경은 모세가 말을 더듬었다고 stutter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그런 말도 무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파라오를 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백성의 원성에 흔들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픔과 고통의 과정을 건너 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독에서 약이 나온다는게 참 신비하지요. 우리의 약함에서 주님의 강함이 드러난다는 것이 참 신비하지요. 이집트로 오늘 길에 모세가 죽을 듯이 아팠던 일이 있습니다. 십보라는 아들에게 할례를 합니다. 성서는 아브라함 때에 처음으로 할례를 언급합니다. 이집트에서 사는 동안 할례의식은 지키지 않은 전통이었는지 모릅니다. 십보라가 할례를 하고 그 살을 모세의 발에 댑니다. ‘피의 남편’이라는 아리송한 말도 합니다. 할례에 은유적 상징이 있을까요. 아픔과 고통을 인정한다는, 고통 뒤에 오는 약속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물)을 기다리겠다는 결단이 할례의식의 의미일까요. 모세가 하필 이집트로 돌아오는 길에 앓아 누웠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사건의 해결이 할례였다는 것도 도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 앞에 나가자마자 초반부터 일이 엉키고 복잡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삶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하나님의 약속은 거저 이루어진다고,(=하나님이 하시니까 나는 할 게 없다)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량이 늘어나고 일은 더 어려워지는 것에 움찔합니다. 말솜씨가 없어서, 또렷하게 말할 줄 모르니까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걱정합니다. 모세도 나도 겉만 보고 속은 아직 못보는 것 같습니다.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Like

  3.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 아버지! 영적 갈급함을 아시고 영혼의 만나를 주시므로 잠자지 않고 영혼이 매일 깨어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하여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에 너무 힘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주신 사명 감당을 방해하는 사탄의 무리들이 방해 하려고 항상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동행하셔서 매일 주시는 말씀을 기억나게 하여 주심을 통해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말씀으로 잠재우신 것처럼 그들을 말씀으로 물리 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Like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비구름과 스산한 추위가 물러가고 햇살이 포근한 아침입니다. 모세의 요구로 인해 오히려 더 독해진 압제. 또 백성들의 원망.

    모세는 하나님께 항의하지요. 그러자 더 구체화되는 약속.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마침내 주시어 이스라엘을 주의 나라로 만드실 것.

    아침에 일어나니 지인의 빙부상 소식이 와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요 새로운 시작이라’는 찬송 가사처럼 죽음이 늘 문 앞에 서있음을 기억하고 그러므로 더 깊게 오늘 주신 생명을 누리고 축하하는 마음이 되기를.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애굽에서 풀려난 우리. 요단 강을 건너 저 가나안성에 마침내 들어가기까지는 광야 같은 인생길을 계속 걸여야 하겠지요?

    거칠고 외로운 길, 광야. 끝없이 원수들과 싸우며 나아갈 때 자존하시는 주, 알파와 오메가, I AM이신 그 분이 나의 왕이 되시고 나는 그의 백성, 그의 거룩한 나라가 되어 매일 작은 걸음이라도 가나안을 향해 앞으로 걸어가는 인생이 되기를.

    한걸음 한걸음 주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기도해요, 아빠 아버지.

    Liked by 1 person

Leave a reply to tenderlya0860fa447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