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장 7-12절: 제가 무엇이라고?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당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하신 다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신 이유를 알리신다. 그분은 히브리 사람들을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7절)이라고 표현하신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인류가 “나의 백성”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선택 받았다는 점에서 하나님에게 특별하다. 바로의 지독한 폭정 아래에서 시달리면서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에 함께 하고 계셨다. “똑똑히 보았다”,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고난을 분명히 안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계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장 23-25절에서 3인칭으로 묘사된 사실이 여기서 1인칭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통을 겪으며 임계점에 이르기까지 기다리셨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려면 그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 그 임계점에 이르렀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8절, 다산과 풍요의 땅)으로 인도하실 계획이다. 그 땅에는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다. 그 민족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곳에 살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그 땅이 “그 거주자들을 토해내게 되었기”(레 18:25)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9절)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겠다고 하신다(10절).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살면서 한 개인으로서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살아가던 모세에게 이것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명령이었다. 모세는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11절)라고 반문한다. 그에게는 민족에 대한 애정이 있었지만, 40년 전에 그 일로 인해 큰 낭패를 보고 도피자가 되어 버렸기에 자신이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12절)라고 답하신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분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다음에 그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백성과 함께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그것이 그에게는 하나님이 그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묵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계획을 밝히시면서 바로에게 가라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단박에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세 이끌어 내겠습니까?”(11절)라고 반문합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기까지 여덟 번이나 회피하고 거부하고 저항합니다. 

모세가 그렇게 반응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절대 제국의 절대 권력자인 바로에 비하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늙었고, 홀홀단신의 양치기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살인을 행하고 도피한 신세입니다. 공소시효 같은 개념이 없던 그 시대에 그것은 스스로 감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해방자로 나설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자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계획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그분이 이루실 일입니다. 따라서 그분에게는 철저히 자신을 의지하고 순종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십 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모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분에게 인간적인 열정과 힘이 필요했다면, 사십 년 전, 모세가 미디안으로 피신 왔을 때, 그를 찾으셨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가득 차 있던 적개심에 불을 지르면, 그는 물불 안 가리고 바로에게 맞서려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반역자로 비참하게 처형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일에 성공했다면, 그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제가 무엇이라고?”라고 반응했을 때 속으로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너를 사용하기에 충분히 준비되었구나!’ 하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10).

기도:

주님, 때로 저희는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가소롭고 또 얼마나 위태로워 보일까요? 자고 일어나면 어느 새 다시 고개를 쳐드는 옛 자아를 다시 내어 드립니다. 저희 자신을 부정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저희의 계획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6 responses to “출애굽기 3장 7-12절: 제가 무엇이라고?”

  1. billkim9707 Avatar

    육신이 쇠약해저가고 용기와 결단력이 점점 약해저가는 형편입니다, 우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합니다, 세속적인 유혹인지 주님의 명령인지 구별하여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남은 여생을 주님의 뜻을 깨닫고 어렵드라도 순종하며 인생을 마치는 제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d by 1 person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Like

    2. gachi049 Avatar
      gachi049

      아멘!!! 주여!!!!

      Like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Now go. But who am I?

    햇살이 찬란한 금요일 아침입니다. 완전히 초여름 날씨에요. 벌써 5월이네요.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그 분은 백성들의 고난을 보셨고 (have seen) 울음소리를 들으셨고 (have heard) 그로 인해 염려하시는 (am concerned) 분. 죄와 예속의 땅을 벗어나 들어갈,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곧 자유와 복의 지경을 예비하신 분. 그가 명하세요. 가라 (now go), 지금!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청장년기 40년을 도망자로 보내고 생의 마감을 기다리고 있는 80의 촌로. 양들 외에 그 누구도 이끈 업적이 없는 그에게 말씀하세요. I am sending you. 마치 바로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특명대사라도 보내는 듯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지에 대해서는 딱 한마다만 하세요. I will be with you.

    대책 없는 듯한 대책. 그러나 믿음의 눈을 통해 보면 가장 위대한 약속. 모세는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왜? 하나님을 만났고 보았고 그 분과 직접 얘기했기 때문 아닐지요?

    이제 하루를 시작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고통과 혼란, 증오와 갈등으로 가득해요. 그리고 오늘도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들이 마음을 누르고 있어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네요. 가라, 사명의 자리로. 평화의 사명, 치유의 사명, 사랑의 사명.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러니 두려워 말라.

    제가 누구이길래? 아빠, 아버지.

    Liked by 1 person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불붙는 나무 떨기에 다가간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신발을 벗고, 얼굴을 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려 하니 가거라! (10절)’ 하십니다. 이집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히브리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이 히브리 백성을 괴롭히는 것(9절)을 해결하기 위해 모세를 보낸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들었지만, 알았지만, 자기여야 하는 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들었으나 듣지 못한 것과 같고, 알았지만 모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제가 누구인데 그런 일을 합니까? Why me? 세대 간의 문화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을 말할 때 밀레니얼 세대 (MZ 세대)의 말투가 화제로 뜹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상사가 업무 지시를 하면 ‘제가요?’ ‘지금요?’ ‘왜요?’ 이 세 질문이 돌아온답니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무조건 하는 세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 자기여야 하는지, 왜 지금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어야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젊은 세대가 이렇게 ‘말을 안 듣는, 철 없는’ 세대라는걸 알리려는 뜻으로 시작했지만 요즘에는 이들 입장에서 보고 직장내 문화를 점검하는 일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모세가 밀레니얼 세대의 원조일까요. 여호와께서 길고 상세하게 말씀하신 뒤에 ‘그래서 너를 보내니 가거라!’ 하십니다. 왜 가야 하고, 왜 지금 가야 하는지 다 말씀하셨어도 모세는 제가요? 하고 묻습니다. 모세 이전의 인물들을 생각해 보니 아무도 제가요? 물은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요? 하고 물었을 법한 노아는 그렇게 묻지 않고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명했을 때 그도 제가요? 지금요? 왜요? 묻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 이삭은 왜 납니까? why me 하고 외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why me? 가 아니라 why NOT me? 질문과 씨름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 요셉은 어떤가요. 왜 내가?를 물어도 여러번 물었어야 할 사람입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은 일과 이집트에서 당한 여러 어려움을 생각하면 왜 나인가? 질문을 수백번 했을 법 합니다. 모세가 이들 선조보다 신세대인게 맞나 봅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사양합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봅니다. 나는 모세 같은가, 모세의 선조들 같은가. 모세의 선조들처럼 순종하는가, 모세처럼 ‘나’를 앞세우는가… 모세가 자기를 내세운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자기를 숨기고자, 자기에겐 능력이 없다고 하는 말입니다. 모세의 이야기는 내가 보는 나 vs. 남이 보는 나의 갈등을 담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보는 나까지 확장된 갈등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모세의 자화상입니다.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반해 버리는 나르씨스와 완전 반대입니다. 얼굴을 가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두려워서, 하나님이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자기의 얼굴이 보기 싫어서 가린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 내 얼굴을 보지 마세요 가린 것은 아닐까요. 주님, 나는 누구입니까.

    Liked by 1 person

  4.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팔십년동안 지켜보시고 특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억압과  고통 속에서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당신의 백성을 해방하시고자 그를 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의 동족에 대한 애정과 겸손함을 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 이제는 육신이 쇠약해지고 정신도 오락가락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살아 있는 교만과 아집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말씀에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남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Liked by 2 people

Leave a reply to tenderlya0860fa447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