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장 1-6절: 새로운 정체성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야기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한 지 사십 년 후로 건너 뛴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갔을 때”(1절)라는 말은 미디안 사람들이 호렙 산을 신령한 장소로 여겼다는 뜻일 수도 있고, 모세가 그곳에서 자주 하나님을 찾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광야에서 지극히 사적인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했다는 뜻이다. “호렙”이라는 이름은 “버려진 땅”이라는 의미다. 모세를 통해 버려진 땅이 하나님의 산으로 변모했다. 호렙 산은 나중에 모세가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시내 산을 가리킨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그곳에서 이상한 광경을 본다. 풀섶에 불이 붙어 있기에 다가가 보니, 불은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았다(2절).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상하게 여겨 더 가까이 다가가니, “모세야! 모세야!”(4절)라는 음성이 들린다. 이름을 두 번 부르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5절)고 하신다. 호렙 산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에 거룩해졌다. 거룩한 곳에 서면 인간은 자신의 죄성에 눈 뜬다. 신발은 한 사람의 존재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따라서 신발을 벗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담고 있던 허물을 벗어 놓는 상징 행동인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벌거벗은 존재로서 당신 앞에 서라고 요청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조상들과 함께 하신 분이라고 소개하신다(6절). 이 말씀으로써 하나님은 모세의 정체성을 상기시키시고 확인해 주신다.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의 한 사람이었다. 말로만 듣던 족장들의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모세는 두려움에 압도되었다.

묵상:

모세는 사십 년 동안 이집트의 궁궐에서 왕자의 신분을 누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이며 앞으로 중요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른 후에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여 양치기로 살아갑니다. 텅 비고 낯선 땅에서 그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삶에 적응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시기까지 사십 년이 걸린 이유는 왕궁에서 살면서 그의 의식 속에 배어든 모든 특권 의식이 사라지고 철저히 낮아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뜻일지 모릅니다. 

사십 년 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신발까지 벗으라고 요구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 놓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익하고 무력한 존재로 서라는 뜻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립니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6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소개이기도 하지만 모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알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십 년 후, 모세는 모든 것을 잊고 철저히 사적 존재로서 연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이 족장들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모세는 외따로 떨어져 있던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곳의 이름이 호렙이었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합니다. “호렙”은 “버려진 땅” 혹은 “쓸모없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의 양치기 생활을 통해 자신을 버려진 존재 혹은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지 못하면 누구든 그런 생각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참된 정체를 발견하고 자신의 쓸모를 찾는 일입니다.

기도:

하나님, 잃어버린 퍼즐 조각 같은 저희를 찾아내시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떠나 미아처럼 유리 방황하던 저희를 찾아내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버려진 땅, 쓸모없는 땅, 부정한 땅에 살던 저희를 거룩한 땅에 서게 하시고 쓸모를 찾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값없이 주신 이 은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출애굽기 3장 1-6절: 새로운 정체성”

  1. bull9707 Avatar
    bull9707

    제 모습 이 대로 십자가를 들고 주님앞에 나아 갑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지성소에 나아가는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항상 지성소로 갈수있는 특권을 허락하신 사랑과 은혜의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 올립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저희들의 살아 계신 하나님 이시고 저희들은 주님의 자녀들 이라고 고백합니다. 남은 여생을 천국 백성 답게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d by 1 person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Like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청명한 목요일 아침입니다. 일교차가 크지만 초여름 향기가 물씬 풍기네요.나이 80에야 하나님을 만난 모세. 호랩산, 떨기나무 안의 불, 거룩한 땅, 네 신을 벗어라. 너무도 유명하고 수없이 많은 묵상과 영감, 설교의 모티브가 되었던 그 본문.

    호랩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쓸모없는’ 또는 ‘버려진’ 땅이었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자동차 하나도 큰 것을 타다 작은 것으로 바꾸면 적응이 어렵다고들 하지요? 당시 문명과 경제의 중심인 에굽에서 심지어 왕족으로 살다가 양과 목초지외에 아무 것도 없는 미디언 광야에서 보낸 무려 40년의 시간은 모세를 비우며 그를 호랩으로 바꾸는 시간이었겠지요? 창조의 주는 버림받은 땅 호랩을 홀연히 뒤집으시어 거룩한 산으로 뒤바꾸세요.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창 밖의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오늘도 주신 생명으로 인해 감사드려요. 지금 제가 있는 작은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산, 거룩한 땅 호랩임을 깨닫고 또 기억하는 하루 되길. 주의 부름 앞에 신을 벗고, 그 거룩함 앞에 맨발로 서는 믿음과 순종의 마음 주시길.

    아브라함의, 이삭의, 야곱의 하나님이 저와 제 아내의 하나님 되시고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하나님 되어주시길. 소망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Liked by 1 person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 본문을 읽고 두 가지가 걸렸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자 (2절)인가, 하나님/여호와 (4절)인가의 질문이고, 두번째는 장인 이드로 밑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던 40년 동안 모세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첫번째 질문은 모세오경을 연구하는 성서비평학자들의 ‘문서설’을 따라 성서의 소스 source 가 되는 문헌들을 분류하는 일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특히 소스 문헌들 중에서 여호와문서 (J 문서 – 독일어 Jahwist) 와 엘로히스트 문서 (E 문서- 주님을 엘로힘으로 부른다해서 Elohist 문서)가 합쳐진 예라고 알려졌는데, 모세를 저자로 보는 모세오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과 이해를 기반으로 발전한 문서설 연구도 20세기를 지나면서는 보정과 재탐색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사자인지, 하나님인지는 또렷한 구분이 필요하지 않다는게 내 나름의 결론입니다. 두번째로 모세는 미디안 광야 생활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40살 때와 지금 80살이 된 모세는 (모세가 80살이라는 것은 오늘 본문에는 없습니다. 7장에서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 앞에 설 때 그들의 나이가 나옵니다) 같을까, 다를까 하는 궁금증은 랍비의 해설 사이트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정의감 sense of justice, morality 은 히브리인을 때리는 이집트사람을 그대로 두지 않고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죽인 일에서 나타납니다. 바로 다음 날에는 히브리 사람들끼리 다투는 것을 보고 ‘그 중에서 잘못한 사람에게’ 한 핏줄인 사람을 왜 때리느냐고 책망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정의감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그는 자기의 죄 또한 알려진 것을 알게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모세의 정의감을 또 목격하게 됩니다. 양 떼를 몰고 나온 여자들에게 험하게 구는 목자들을 보고 모세는 자진해서 여자들을 보호하고 도와줍니다. 이 일로 루우엘/이드로와 알게 됩니다. 이쯤되면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약한 사람이 당하는 것을 지나치지 못합니다.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보고도 못 본 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가보다, 그럴 수도 있지…하고 지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현대 랍비들은 모세의 리더쉽이 실패하고 (그래서 도망가고) 쓰라린 기억으로 남았다고 해석합니다. 이집트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는 실패가 맞습니다. 출애굽을 해서 광야로 나온 뒤에도 백성은 종종 반항합니다. 불평하고 불만족해 합니다. 모세가 힘 빠질 일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랍비들은 모세와 백성의 불화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해석합니다. 악은 왜 있는가, 사람은 왜 고통을 당하는가 하는 질문들은 사람의 편에서는 결코 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불붙고 있지만 타서 없어지지는 않는’ 나무를 보고 모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까이 가서 이 이상한 일을 살펴 보아야 하겠다 What’s going on here? I can’t believe this! (3절- 메세지 성경)” 나는 버닝 부쉬 burning bush 앞에서 모세가 보이는 반응이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버닝 부쉬에 모세가 다가갑니다. 다가가니 여호와의 음성이 들립니다. 여호와가 모세를 부르시며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0을 완전수로 이해한다면 모세는 두 번 리셋이 됩니다. 광야로 갈 때 그 전의 모세를 지웠습니다. 버닝 부쉬 앞에서 모세는 또 한 번 리붓 reboot 됩니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만지시며 다듬으시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의 이름은 God of Second Chance 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Like

  4. gachi049 Avatar
    gachi049

    보잘것 없고 쓸모 없는 죄인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인처 주시고 거룩한 땅에서 지금까지 살게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남은 여생도 성령님께서 동행하여 주시고 주님과 같은 마음과 미소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Like

Leave a reply to tenderlya0860fa447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