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4-13절: 하나님의 사랑의 매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에 대해 언급한 후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들이 당한 고난은 예수님이 당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죄와 맞서서 싸우다”(4절)라는 말은 유혹과 시험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영적 싸움을 가리킨다.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라는 말은 그들이 고난 중에 있기는 하지만 순교할 정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잠언 3장 11-12절을 인용 하여, 지금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은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라고 말한다(5-7절). 따라서 유혹과 시험과 박해를 당할 때, 그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징계로 받아들여야 한다(7절). 아버지가 자녀에게 가하는 징계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징계를 허락하시는 것도 사랑 때문이다(8-9절).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는 징계는 자신의 혈기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10절) 그렇게 하신다. 징계는 받을 당시에는 고통스럽지만 나중에는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11절)를 맺는다. 유혹과 시험과 박해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고, 그 고난을 통해 유익한 열매가 맺힌다면, 그런 일을 당하여 “낙심하여 지칠”(3절) 것이 아니라 힘을 내야 한다. 

여기서 저자는 육신적인 피로감을 이기는 방법을 영적인 차원에 적용한다.  “나른한 손과 힘빠진 무릎”(12절)은 독자들 중에 실제로 낙심하여 지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힘이 빠질 때 그대로 두면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진다. 역설적이지만, 힘을 낼 때 힘이 난다. 비틀비틀 걷다 보면 무릎이나 발목 뼈가 탈골될 수 있다. 힘이 들어도 똑바로 걷다 보면, 이골된 뼈까지도 바로 잡힌다(13절). 마찬가지로, 유혹과 시험과 고난을 당하여 용기를 내어 더욱 똑바로 살려 힘쓰면, 영성은 더 강해지고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11절)는 더욱 풍성하게 열린다.

묵상:

한 때, 자녀를 매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믿는 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잠언 23장에는 부모에게, “아이 꾸짖는 것을 삼가지 말아라. 매질을 한다고 하여서 죽지는 않는다.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스올에서 구하는 일이다”(13-14절)라고 가르칩니다. 분별 없는 부모들은 이 가르침을 빌미로 하여 자녀에 대한 분노를 심한 매질로 표출하곤 했습니다. 그로 인해 몸에 난 상처는 얼마 후에 사라지지만, 마음과 정신에 남겨진 상처는 쌓이고 쌓여 그 자신의 영혼을 질식시키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흉하게 표출 되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잠언 3장 11-12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징계가 부모의 징계와 다른 점을 밝힙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하는 징계는 동기가 잘못될 경우도 있고, 도에 지나칠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 바른 동기로, 꼭 필요한 정도만, 바른 방법으로 징계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반면, 전지전능하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은 바른 동기로, 꼭 필요한 정도만, 바른 방법으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우리 쪽에서 보기에 부당해 보일 때도 있고 지나쳐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자비로우심을 믿기에 그 징계를 달게 받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징계를 통해 정금같이 연단되어 나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유익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인간은 언제나 고난과 역경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역시 인간의 타락성의 반증일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길에서 유혹과 시험과 박해가 다가올 때면 두려워 떨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보기 좋게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고, 유익한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고난의 왕이신 주님, 유혹이든 시험이든 박해이든, 고난을 대면할 때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십시오. 주님처럼 그것을 품어 안게 하시고, 고난의 불구덩이를 지나면서 정금같이 연단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 responses to “히브리서 12장 4-13절: 하나님의 사랑의 매”

  1.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금요일이 지나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오늘을 지나면 부활절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여선교회원들이 부활절 친교 음식을 준비한다고 교회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새벽기도 끝나고 모입니다. 일찍 일어나 사귐의 소리 묵상을 하고 새벽기도에 갈 생각을 해서 그런지 밤에 여러 번 깼습니다. 다시 잠들지 못해 페북을 열었더니 성토요일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성금요일과 부활의 일요일 사이에 있는 오늘이 성토요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금요일로 예수님의 고난은 ‘끝’이 났고 토요일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날로 보냅니다. 토요일은 죽음에서 부활로 가는 징검다리 날 정도가 됩니다. ‘성토요일의 미학’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성토요일은 예수께서 지옥으로 내려가신 날로서 고통에 관해 좀 더 깊은 묵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인상적인 부분을 옮깁니다. “지옥의 정복과는 무관하게 지옥에는 적극적인 승리가 없다. 예수는 부활한 자로 지옥에 내려간 것이 아니라. 죽은 자로 지옥에 내려갔다. 십자가에서 경험한 죽음은 지옥까지 이어지며, 이는 성자의 사명과 하느님의 구원 모두에 대해 다른 해석을 말하게 한다. 십자가의 죽음이 능동적 죽음과 수난의 경험이라면, 죽은 자로서 지옥에 내려간 성자의 경험은 수동적 수난으로서, 죽음의 풍경과 죄의 실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이것은 극도의 암흑이자 버려짐이며 소외이다. 성자는 그곳에서 겉으로만 버려진 모습으로 세상 죄를 감당한 것이 아니라. 몸소 지옥에 내려가 버려짐을 경험한다.” 카톨릭 수사이며 신학자인 한스 우어스 본 발타사는 기독교 미학을 연구한 사람으로 성토요일의 의미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그가 묵상한 성토요일은 인간이 경험하는 죽음이 강력한 실재임을 증언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합니다. ‘고통을 간과하는 공허한 부활절 선포보다, 아직 부활절 선포가 없는 고통과의 연대가 부활의 작은 싹을 보듬고 있는 것’이랍니다. 이 글을 읽고 오늘 말씀을 읽으니 하나님의 훈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확장되는 느낌입니다. 무의식적으로라도 십자가의 죽음과 빈 무덤이 일직선으로 매끈하게 이어진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의 토요일까지도 견디셨기에 -완전한 암흑, 완전한 부재까지도 받아 들이셨기에- 인간의 현실을 완전하게 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맞이 하는 부활은 죽음의 끝에서 열리는 세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창조의 세계일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죽음의 정복자일 뿐 아니라 새 삶의 주인이십니다. ‘훈계를 받는 바로 그 때에는 즐거움이 없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 훈계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우리에겐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11절).’ 훈계를 받고 단단해진 나는 새롭고 좋아진 버전 new and improved version 이 된 것이지만 거기서 또 더 나갈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은 고정되고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성숙하는 -성화의 길을 걷는- 존재라는 뜻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고통의 의미를 생각하고 죽음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지옥’ 마저도 품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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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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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아빠 아버지께서 사생아가 아니라 참 자녀 삼아시고 날마다 만나를 먹여주시니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에 감사드리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어떤 징계라도 참고 견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서 믿음이 변치 않는 남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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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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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illkim9707 Avatar

    십자가 앞에서 백부장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 모든 환란과 시련을 감수하는 믿음을 원 합니다, 죄와 실수로 받는 재앙을 회개하는 기회로 삼고 아버지의 채직을 하나님의 사랑의 매로 생각하고 감수하는 믿음을 원 합니다. 닥치는 모든 어려움을 기회로 삼고 조금 더 주님 닮아가고 순종하는 삶을 마지막 숨쉴때까지 살아 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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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키리에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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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따뜻하고 청명한 초여름 같은 아침입니다. Black Saturday. 주님이 직접 죽음의 심연, 스올 속에 삼켜지셨던 하루를 기억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말씀. Discipline을 징계라는 번역한다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그에 상응하는 벌 또는 응징을 말하겠지요. 또 훈육이라고 번역한다면 어떤 행동을 통해 드러난 아이의 습성, 심리 등 내면의 문제를 교정하는 측면에 방점이 두어질 듯 해요.

    얼마전에 앞 뜰의 꽃 나무를 pruning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나무를 거의 잡은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대부분의 가지를 과감히 쳐냅니다. 그래야 한 해를 지나며 질서있고 아름다운 꽃나무로 자리잡을 수 있어요.

    슬픔의 풍랑과 실망의 땅을 지날 때마다 영혼의 제멋대로 뻗은 가지들이 이처럼 전지(prune)되고 인생의 나무가 새형상으로 잡혀가길 구해요. 고통의 풀무불 안에서 내 욕망과 자아가 불순물처럼 다 걸러지고 보혈의 능력으로 정금 같이 풀무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그런 인생이 되기를. 주님, 원해요.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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