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17-22절: 바치심과 일어나심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저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사건은 “외아들”(17절) 이삭을 바치는 일이었다. 그 이야기는 창세기 22장에 나온다. 저자는 그것이 “시험”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요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그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불어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1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19절)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삭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장래 일”(20절)에 대해 하나님을 믿고 구하는 행동에서도 입증된다. 하나님께서 미래의 일을 계획하시고 섭리하신다고 믿는다면, 당연히 미래의 일에 대해 믿고 구할 수 있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위해 축복해 준 것은 그런 믿음 때문이다(창 27장). 저자는 형 에서보다 야곱의 이름을 먼저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택의 질서를 따른다. 야곱도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해 준다(21절). 창세기 48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리킨다. 요셉이 죽을 때 자신의 뼈를 조상들의 묘지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한 것(창 50:25)도 믿음 때문에 한 일이었다(22절).

묵상:

히브리서 저자는 이삭의 희생에 관한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희생의 이야기를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을 바치는 것이 “시험”(17절)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큰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으로 기도하시면서 그 시험을 싸워 이기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최종적으로 이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삭을 “기꺼이 바치려”(17절) 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당신 자신의 몸을 기꺼이 바치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묘사하면서 “바치다”(프로스페로)라는 동사를 자주 사용했는데(5:1, 3; 8:3-4; 9:7, 14), 17절에서 그 동사를 두번 반복하여 사용합니다. 아브라함의 행동과 예수님의 행동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자는 아브라함의 순종의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살리실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19절)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초대 교회에서 부활을 가리킬 때 사용했던 ‘에게이로’ 동사를 사용합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부활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창 18:14).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불가능한 일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입니다. 이삭은 죽을 뻔 한 상황에서 살게 되었지만, 예수님은 죽어서 매장된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옛날 몸으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셨습니다. 무에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이렇게 본다면, “믿음으로” 행한 일들 가운데 최고의 사건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의 몸으로 제사를 드린 일입니다. 그 사건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아브라함의 행동에서 예고편처럼 일어났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행한 일은 갈보리 산에서 예수께서 행한 일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희생과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매일을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9 responses to “히브리서 11장 17-22절: 바치심과 일어나심”

  1. billkim9707 Avatar

    온전한 믿음은 말씀 순종인것을 깨닫게 하시내요,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독생자를 주신것 같이 저희들도 저에게 가장 중요하고 귀한것을 주님 발 아래 내려 놓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가 말씀으로 죽었던것을 기억 하는 아침 입니다. 열매가 없는 비천한 존재입니다. 주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자비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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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키레에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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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밤에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많이 낀 아침입니다.

    오늘도 아브라함의 믿음 이야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장막 속에 거하며 불임의 시간을 견뎌온 사람. 그리고 기적 같이 열매로 주신 아들.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뜬금없는 명령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을 거에요.

    이해하지 못할 명령에 순종하기로 한 사람. 오늘 본문은 그의 결단이 맹목적인 광신이 아닌 이성적 판단 (he reasoned that…)의 산물이었다고 얘기하네요.

    그가 믿은 하나님은 약속을 꼭 지키시는, 그리고 또 전능하신 주. 주가 이삭의 삶 위에 거신 약속은 죽음의 장벽을 뚫고 넘어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은 그의 믿음…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오늘 아침도 해결되지 않는 여러 문제들, 염려와 불안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어요. 한계가 없으신 주의 능력. 그리고 그 분의 완전하신 사랑과 선하신 약속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주시길. 아빠,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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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서 네 자손이라 불릴 자손들이 태어날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기 전날밤에 많은 고심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기에 이삭을 바쳤습니다. 믿음 없는 순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닮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 믿음을 자자손손들이 본 받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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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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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믿음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서 살펴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 불확실한 앞날을 불신과 불안의 핑계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았습니다. 현실이 어떠했든, 마주한 싸움이 무엇이었든, 아브라함 가문의 아버지들은 현실을 해석하는 눈이 남달랐습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찾았고 약속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 기도도 약속의 성취를 담고 있습니다.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서 괴롭고 쓴 잔이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다면 그 잔은 쓰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세계에서 땅과 자손은 소유이자 존재 증명입니다. 땅과 자손과 나는 다 하나입니다. 땅과 자손은 내 것이고, 나는 땅과 자손의 일부로 남습니다. 자식(아들)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이유, 땅을 잃고 되찾고 하는 싸움의 연속이 그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눈으로 보는 것이 땅과 자손입니다. 아브라함 가문의 아버지들이 아들을 축복하고, 땅을 기업으로 남기고, 죽은 뒤에 고향으로 데려가 달라는 유언을 남기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땅과 자손으로 영원히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떠신가요.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은 땅을 가져야 한다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제사장은 땅이 없습니다. 대제사장은 아론의 가문에서만 나와야 하는 것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왕들이 개입하고 뇌물과 거래가 오고가는 등 변질과 타락이 뒤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런 면에서도 ‘파격’의 사건입니다. 대제사장직의 폐지를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땅과 자손의 중요성은 믿음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언약이며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결단입니다. 십자가 에 예수님이 달리신 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이며, 지우고 없애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고백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고 묵상하면 예수님은 옛 사람과 옛 세계를 다 안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오늘 묵상의 제목처럼 옛 세계를 ‘바치신’ 일입니다. 단 한 번의 제사가 그것입니다. 십자가로 끝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사라진 옛 세계에서 나온 사람들이지만, 무덤에서 나오신 새 세계를 믿는 -땅과 자손의 개념이 달라졌다고 믿는, 이스라엘의 신이 아니라 만인의 어머니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는-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믿음으로 주님께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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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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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lissful2a0acacad4 Avatar
    blissful2a0acacad4

    믿음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외함으로믿음으로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우리는 하나님께로 태어나 하나님께로 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나의 원래의 집으로 가고 있다.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얼굴을 모른채 안겨진 것 처럼 평생 그 사랑을 다 알지 못하고 부모님을 떠나 보내는 것처럼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한다. 믿음을 따라 죽어갔지만 약속을 받지 못한 선진들을 생각하면 철없는 믿음의 여정이 부끄럽다. 과거의 예수님을 그 십자가의 때보다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니라” 주님 오실 그 날을 기다리며 일상의 감사를 잊지 않고 인생의 끝날이던지, 세상의 끝날이던지 그 날을 두렵고 떨림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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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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