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13-16절: 고향이 따로 있는 사람들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저자는 앞에서 언급한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를 두고,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13절)라고 말한다. 5절에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습니다”라고 했지만,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났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 “약속하신 것”(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을 뿐이다. “반겼다”는 단어를 덧붙인 이유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살았다는 말은 이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스스로 “나는 길손이요 나그네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의 고향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셈이기 때문이다(14절).

“나의 고향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라는 말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그들은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15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장소가 아니라 앞으로 가게 될 장소를 뜻한다. 그곳은 “더 좋은 곳”이며 “하늘의 고향”(16절)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거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동경하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들의 간절한 소망과 동경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다. 앞에서 언급한 다섯 사람은 인격적으로 완전하지도 않았고 윤리적으로 흠도 많았다. 인간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그들에게 특별히 뛰어난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그분이 존재하신다는 사실과 그분이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다.

묵상:

“고향”이라는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안식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고향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생각도 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 합니다. 저와 같은 이민자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잠시라도 고향에 가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가 보면, 기대했던 만큼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고향이 그리운 것은, 고향집과 들판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받던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소꼽친구들 때문인데, 이제는 아무도 없기 떄문입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곳 없다“던 길재 선생의 글귀가 현실로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돌아갈 고향”에 대한 생각은 “나아갈 고향”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땅의 고향”을 찾아갈 때마다 느끼는 허전함은 “하늘의 고향”을 더욱 갈망하게 합니다. 세상 떠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더 나은 고향”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진실로, 나는 이 땅에서 길손이요 나그네로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간 동안 잠시 장막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에 대한 준비입니다. 이 땅에서의 수 십년 삶이 전채 요리를 먹는 시간이라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은 메인 요리를 즐기는 것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깨달음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이 땅에서의 나그네 삶을 의미롭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 때문에 전채 요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큰 어리석음입니다.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전채 요리를 더 깊이 음미하며 먹는 법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복을 믿고 기대하고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주어진 일상에 더욱 충실히 임하게 됩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신분을 의식하여 차별성 있는 삶(“구별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고향이 다른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는 바른 방법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에게 약속되어 있는 영원한 고향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영원한 본향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시니 또한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영원한 고향을 갈망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차별성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8 responses to “히브리서 11장 13-16절: 고향이 따로 있는 사람들”

  1. billkim9707 Avatar

    멀리에서 보였던 본향이 지금은 별로 멀지가 않습니다, 생각보다 더 좋은 본향을 향한 길이 갈수록 더 험하고 좁아져 갑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순례의 길을 걷는것이 어려워도 기쁘게 걷는것은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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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이 세상 나그네길을 지나는 순례자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고
      천국의 순례자 본향을 향하여 본향을 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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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는 종려주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자 군중들이 환호하며 반겼던 것을 기리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시자 주민들은 반가워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이름을 부르며 환영하고, 길에는 레드카펫을 깔듯 종려나무를 깔아 땅을 밟지 말고 나뭇잎과 가지 위로 걸으시라고 예전을 갖춰 맞이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과, 사람들의 마음에 담긴 여러 생각을 다 알고 계셨던 예수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면 참 많이 씁쓸하셨을 것 같습니다. 세계의 크리스찬들이 종려주일로 예배할 때 이스라엘은 가자 지역을 공습했습니다.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마지막 병원이라는 시설을 공격해 중환자실과 수술 병동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포로 석방이 웬만큼 진행된 상태에서 휴전협상도 진척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가자 지역은 여전히 죽음의 손아귀에 잡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이나 결정을 보면 성서 속의 이스라엘과 거리가 멉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명분이 성서적이라고 하지만 종교를 앞세운 정치적 계산으로 들립니다. 이스라엘은 강자, 가해자, 공격자가 되었습니다. 몇 주 전에 인질들이 여러 명 풀려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참 어렵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님의 심정을 상상하기 어렵듯, 인질로 잡혀 있는 이들의 심정 또한 상상이 안됩니다. 집으로 간다, 가족과 친구를 다시 본다, 이런 희망 속에서 지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나를 풀어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폭탄을 터뜨리고 죽이고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 들이기란 또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예수님과 인질들은 정반대로 고민하는 셈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집에서 떠날 준비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살리기 위해 전쟁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악에게 (죽음에게) 지는 전쟁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이 우리의 집이나 고향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서는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가 예수께서 하신 첫번째 공적인 말씀이라고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서에선 어머니 마리아가 어린 예수를 찾아 다니다 회당에서 만났을 때 ‘제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모르셨습니까?’라는 의외의 (?) 답을 합니다. ‘집’이나 ‘고향’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달랐다고 할까요. 어른이 되어 어렸을적 학교를 가 보면 학교가 너무 작은 것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기억 속의 학교는 참 컸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온 학교는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집에 가면 구석구석 옛날 물건들이 잔뜩이라 이제 그만 갖다 버리시라고 했는데, 부모님 돌아가신 한국은 분명 고국이고 고향인데 왜 그리 낯 설고 바뀐 데 뿐이던지요. 떠나온 고향을 생각한다면 다시 되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히브리서 11:15 구절은 물리적 장소의 고향을 가리키는 것일 겁니다. ‘더 나은 고향,’ ‘하늘에 있는 고향’이라고 16절에서 말하는 곳은 우리의 존재를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 더 이상 가고 싶은 데도 없고, 더 이상 떠나고 싶지도 않은 완전한 어떤 곳일 것입니다. 그곳에 갈 때까지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걷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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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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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Aliens and strangers on earth. Longing for a better country.

    종려주일을 지내고 고난주간을 맞는 월요일입니다. 햇살이 유달리 포근한 아침.

    나그네와 이방인.

    저희 가족이 이민자로 살아온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Sense of non-belonging. Sense of alienation. 그것이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우리들 모두에게 얼마나 마음의 급소와 가시가 되어왔던지요.

    믿음의 선진들. 그들처럼 나아갈 본향, 하늘의 나라(better country-a heavenly one)를 그리워하며, 또 기대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길. 고통과 슬픔, 실망과 시험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주께서 맡기신 일들. 생명의 편에 서는 일, 공의의 편에 서는 일,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삶이 되기를. 공의를 찾고 인자를 사랑하며 주와 함께 겸손히 걷는 인생이 되었으면.

    그래서 저 요단 강을 지나 가나안 성에 들어갈 때에 착하고 신실한 종아 수고하였다. 그런 주님의 칭찬을 상급으로 받을 수 있었으면. 이런 축복이 아이들에게도 주어졌으면.

    기도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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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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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나그네 길은 험하고 위험이 따르고 강도가 출현하는 불안한 길입니다. 이런 길에서 구원해주셔서 안전하고, 평화롭고, 불평등이 없고, 사랑이 넘치는 영원한 모태보다 더좋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끝없으신 사랑에 감사드리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그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남은 여정이 되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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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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