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4-7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저자는 믿음의 조상에 대한 첫번째 모델로 아벨을 언급한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창세기 4장에 나온다. 창세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만 언급한다(4-5절).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 전통에 따라, 아벨이 “더 나은 제물”(4절)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로 인해 아벨은 하나님에게서 “의인이라는 증언”을 받았다. “증언받았다”는 2절에서도 사용된 표현으로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그는 죽었지만”이라는 말로써 저자는, 의롭다고 인정 받았다고 해도 이 땅에서 불행한 운명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도 믿는다는 이유로 순교 당한 사람이 있었다. 저자는, 아벨이 육신적으로는 때 이른 죽음을 당했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육신적으로는 죽었으나 하나님 안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두번째 모델은 에녹이다(5절). 아벨과 달리 에녹은 죽음을 겪지 않았다. 창세기에는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5:14)라고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여기서, 믿음이 좋다고 해서 이 땅에서 모두 같은 운명을 겪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한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다는 인정을 받았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에녹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믿음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제시한다. 믿는다는 말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포함된다. 하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 주시는 분”은 “보상하시는 분”(rewarder)을 의미한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면서 추구한 것을 얻는 것을 하나님께서 안겨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 그분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세번째 예는 노아다(7절). “아직 보이지 않는 일들”은 앞으로 있을 홍수에 대한 예언을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 해석한다. 그는 우직한 순종을 통해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노아의 순종을 통해 세상을 단죄하셨고, 노아는 그 순종의 행위로써 의롭다는 인정을 얻었다.

묵상: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투명인간으로 취급 받을 때 마음이 상합니다. 엄연히 존재하는데 없는 사람처럼 취급 당하면 자신이 강제로 삭제 당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 의해 무력한 존재로 무시 당할 때도 마음 상합니다. 자신이 아무런 능력이 없는 존재로 취급 받고 있다는 느낌, 혹은 자신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매우 마음 상하고 분노의 감정도 일어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세상이 꺼지는 것 같은 일입니다. 부모가 그런 대접을 받도록 처신한 것이라 해도 그렇고, 부모는 제 역할을 다했는데 자녀가 못되어서 그렇게 대우한다면 더 마음 아픈 일입니다. 부모로서 가장 기쁜 일은 자녀가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가 늙고 병들어 자신들을 도와 줄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여전히 부모를 사랑하고 의지한다면, 그것은 부모에게 더 없이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도 이 다이나믹이 적용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가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환히 드러나 있음에도 마음이 어두워지고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그분에게 가장 큰 아픔이 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분의 인도와 섭리를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자녀가 바르게 살아 잘 될 때 부모가 행복한 것처럼, 우리가 바르게 살아 복된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자신을 복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의 삶의 모습이 각각이었던 것처럼,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죽어도 산다!”는 사실입니다. 

기도:

주님,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합니다. 저희에게도 이 믿음을 주시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responses to “히브리서 11장 4-7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1. bull9707 Avatar
    bull9707

    오늘의 말씀을 묵상 하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아벨)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에녹) 는 에수님의 말씀이 생각 납니다.

    노아의 방주를 읽으며 구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의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는(자녀들 손주들 증손주 들의 영혼구원) 말씀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와싱톤 사귐의 교회) 이요 보이지않는 증거라는 말씀에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마지막 숨 쉴때까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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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롬 1:17),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갈 2:16~20). 말씀 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게 됨을 깨닫게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그러나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시고 도와주심을 통하여 어떤 고난과 핍박속에서도 주님께서 항상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 보시고 계심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온 세상 믿음의 공동체를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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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비구름이 낮게 깔리고 어둑어둑한 아침입니다. 고난주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오늘도 그 유명한 믿음장. 저 심오한 계곡을 지나갑니다. 아벨, 에녹, 노아. 성경이 기록하여 전하는 믿음의 선진들. 우리 한국 교회에도 그런 timeless한 이름들이 전해지고 있겠지요?

    문장이 시작할 때마다 거듭되는 By faith라는 말. 오늘 묵상말씀처럼,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라는
    바울 사도의 선포가 마음에 떠오르네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말씀. 그리고 하나님께 나가려는 자는 그분의 존재와 그 상급을 믿어야 해요.

    마음의 눈이 열렸으면. 그래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고 그저 바라기만 하던 것들이 확신으로 실체로 변모하길 원해요. 거친 파도와 찬 바람이 나를 덥칠 때 그래도 하나님이 계심을, 그리고 세상의 어떤 고난과 시험도 상급, 곧 장차 다가올 영광의 무게와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믿고 또 선포할 승리의 능력이 있었으면.

    제가 믿습니다. 믿음 없음을 도와주세요.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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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경 구절 외우는 일에 별 재능이 없는데 히브리서 11장 6절은 외울 수 있는 몇 몇 구절 중 하나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구체적인 뜻이 담긴 구절이라서 마음에 깊이 간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구절에는 인간의 취약성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다, 믿어야 한다는건 계시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때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믿음의 첫번째 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상 주시는 분이라고 기대합니다. 상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상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상인지 모릅니다.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각자 이해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성품이 자비와 넉넉함 -포도원 농부들에게 같은 액수의 품삯을 주는 주인이 떠오릅니다-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믿는 것이 믿음의 두번째 문입니다. 6절은 하나님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해 알려줍니다. 처음엔 하나님 만 보이다 점점 나도 보이는 그런 구절입니다. 아벨과 에녹, 노아는 히브리성서 (구약성서)의 인물입니다. 성서가 정경으로 자리잡기 전부터 스토리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 속 인물들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들 세 사람을 언급하는 것은 인간은 태초부터 믿음의 문제를 안고 씨름했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믿음’이라고 부르지 않았어도, 믿는다는 고백이 없었어도 인간은 태초부터 믿음의 불씨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왜 아벨인지, 왜 아벨의 제사를 더 기뻐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곡물과 짐승의 차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아벨이 가인보다 더 정성을 기울였다고 할 근거도 없습니다. 땅에 묶여 사는 농경업과 돌아 다니며 사는 유목업 중에 하나님이 선호하시는 라이프 스타일을 알 수 있다는 주장도 하지만 글쎄요. 에녹이나 노아의 스토리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노아의 스토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큰 스토리의 일부입니다. 노아가 동네 사람들의 경멸을 이겨내고 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지만, 그의 내면세계가 어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세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성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시면 그것이 다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성이 양방향으로 바뀌는 것은 아브라함 때입니다. 아브람에게도 하나님께선 일방적으로 명령하십니다. 복을 주시겠노라고 약속도 하십니다. 그러다 아브람과 대화하십니다. 믿음이 응답인 것을 -인간이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를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은 응답입니다. 우리의 시작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니 우리는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렸습니다. 양쪽 방향으로 열렸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부릅니다. 주님을 찾습니다. 부족한 믿음으로 완전하신 주님께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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