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9장 1-10절: 보혈을 지나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첫 번째 언약”(1절)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장막”(혹은 “성막” 혹은 “회막”, 2절)을 짓도록 지시 하셨는데(출 25-30장), 그것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 있었다(3절). 성소는 제사장들이 들어가 제사를 드리는 곳이고,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성소와 지성소는 “휘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성소에는 촛대와 빵(진설병)을 차려 놓는 상이 있었고, 지성소에는 “분향제단”과 “언약궤”가 있었다. 언약궤(혹은 “법궤” 혹은 “증거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물건으로서,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 그리고 “언약(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들어 있었다(4절). 언약궤 위에는 “그룹들”이 날개로 “속죄판”(혹은 “시은소”)을 내리덮고 있었다(5절). “그룹”은 날개 달린 생물로서 거룩한 것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성소와 지성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저자는 성소와 지성소의 차이에 초점을 맞춘다.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언제든 드나들 수 있었다(6절). 반면,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다. 대제사장은 반드시 자기 자신의 죄와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 바칠 피를 그곳에 가지고 들어가야 했다(7절). 대제사장의 속죄 의식에는 그 자신도 포함되었다. 

성소(“첫째 칸 장막”)와 지성소가 나뉘어 있다는 사실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8절). 지성소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모조품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이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9절)라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다. 지금으로서는 율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지만, 그 제사가 사람을 완전히 깨끗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개혁의 때”(10절)는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이 열리는 때를 말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 하셨을 때 그 장막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영원한 지성소 즉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묵상:

윱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증거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죄성에 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율법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은 인간이 하나님의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전제하고 주어진 임시 규정입니다. 그것을 바울 사도는 “개인교사”(몽학선생)라고 불렀습니다(갈 3:24). “개인교사”로 번역된 ‘파이다고고스’는 정식 교사에게 보내기 전에 집안에서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보통은 나이 든 종이 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파이다고고스’의 가르침 아래에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이 아직 어리다는 뜻인 것처럼, 율법 아래에 있다는 말은 아직 죄성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도록 마련된 장막–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서 모였기 때문에 “회막”으로 불리기도 했고, 하나님에 의해 성별된 곳이므로 “성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죄성을 보여줍니다.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그 죄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장막과 제사장 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제도는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조차도 그 자신의 죄에 대해 늘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고 있던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을 가르고 있던 죄의 장벽을 의미합니다. 죄로 인해 지성소 즉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이 가로막혔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습니다(마 27:51). 마치 하나님께서 그 휘장의 위쪽 끝을 잡고 찢으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이르는 지성소가 모두에게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지성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지성소로 나아갑니다. 여전히 죄성에 물 들어 있고 때로 죄를 짓는 부족한 존재이지만 주님께서 드리신 영원한 제사를 힘 입어 오늘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섭니다. 주님의 의로 저희를 덮어 주시어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8 responses to “히브리서 9장 1-10절: 보혈을 지나”

  1. billkim9707 Avatar

    누명과 배반을 당하시고 수모와 고초를 격으시고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에서 중보하시는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려올립니다, 그토록 귀한 은혜로 지엄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보좌앞으로 들어갈수있는 특권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자아와 세속적인 탐욕이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고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주님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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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achi049 Avatar
      gachi049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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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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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생명이신 예수님의 보혈이 없었다면 인간은 어찌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짐승의 피가 온 세상을 덮어 살 수 없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번째 언약, 새언약을 주시므로 온전한 구원의 문 열쇠, 보혈로 죄에 찌들은 영혼들을 깨끗게 씻어 주시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셔서  주안에서 살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놀랍고 끝없으신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남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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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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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Way to the most holy place. Present time and new order.

    어제는 날씨가 80도를 넘기더니 반가운 봄비가 내렸습니다.청명하지만 쌀쌀한 아침.

    지상의 성막과 제사. 오늘은 그것이 왜 현시대(present time)의 상징이며 또 불완전한 것인지가 촛점.

    성막 안 지성소는 휘장으로 차단된 있어 대제사장 만이, 일년에 단 한번만, 그것도 속죄 제사를 드린 후에만 들어갈 수 있었지요(Way to the Most Holy Place has not been disclosed). 그리고 주께서 하나님과의 분리를 그의 보혈의 값으로 없애시고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되어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이 무섭고 험한 세상 살아갈 때에 새질서(new order)의 자녀로 살수 있게 도와주세요.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는 하루 되기를. 낙심과 실망, 혼돈과 슬픔의 바다 위에서 주의 말씀 따라 물위를 걷는 삶이 되었으면. 그런 은혜와 축복이 모든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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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새벽에 어디를 갔다 오느라 묵상이 늦어졌습니다. 일어나서 말씀을 읽고, 운전해서 가고 오는 동안 내내 읽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묵상의 제목이 복음찬송으로 크게 사랑 받는 ‘보혈을 지나’와 같습니다. 찬송가의 가사는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품으로 한걸음씩 나가 나의 영이 새롭게 된다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성소와 지성소를 분리하던 휘장이 찢어져서 대제사장을 거치지 않고도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이 열렸다는 히브리서 본문이 복음송의 배경일 것으로 짐작합니다. 성소와 지성소의 두 공간을 둔 장막은 인간과 하나님을 ‘구별’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성소의 일반 제사가 있고, 지성소에서 올리는 연중 1회의 특별한 대제사장의 제사가 있습니다. 새벽에 장막/성막을 묵상하면서 얻은 생각은, ‘not enough’ 였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해도 하나님께 충분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막에서 드리는 제사가 여러가지였습니다. 연중내내 백성은 여러번 제사를 올렸습니다. 대제사장은 한 번 지성소에 혼자 들어가 피를 뿌리며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제사를 올려도,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not enough 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부모와 자녀 사이로 좁혀 놓고 생각해 봅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도 ‘휘장’이 있습니다. 기대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효도, 자립, 성공…무엇이 되었든 자녀에게서 보고 싶은 무엇이 있습니다. 자녀에게 부모의 기대는 압박입니다. 압력과 압박으로 느껴집니다. 기대라는 휘장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가 없다는 것은 희망의 상실이고 존재의 부정입니다. 누군가의 기대는 동기를 부여하고 인내를 가르치는 순기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대가 지나치면 ‘I am NOT enough’ 라는 성급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기대라는 휘장은 양방향이어서 부모가 자녀를 보며 나는 부족하다, 나는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장막을 내 마음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내 마음 안에 성소가 있고 또 지성소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마음을 좋게 쓰고,’ 선한 생각으로 타인을 대하고, 마음의 평강을 유지하고…이런 것은 성소에서 올리는 제사처럼 양심과 율법이 저울질합니다. 더 깊은 곳, 의식보다 훨씬 깊은 곳, 기억할 수 없지만 일어났고 만났고, 느꼈던 사건과 사람, 감정들이 있는 곳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나를 나되게 하는 모든 것이 있는 곳… 지성소일까요. 뜨거운 감사, 애끓는 회한, 아픈 회개는 나의 지성소에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 제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지성소를 열어 젖히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나의 지성소에서 제사를 드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부족함을 아십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불행이나 고난으로 부터 면제되는 것이 아니듯, 예수를 믿어도 나는 여전히 not enough 입니다. 다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있던 예전에는 I’m not enough 생각만 들었는데, 지금은, 예수께서 휘장을 젖히신 뒤에는, It’s okay my child becaus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음성이 들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께 의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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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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