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장 1-8절: 멈추면 죽는다

3–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5장 11절부터 저자는 믿음의 성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독자들이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젖을 먹는 단계에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6장 1절에서 저자는 “단단한 음식”을 “성숙한 경지”로, “젖”을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로 바꾸어 표현한다. 그는 독자들이 믿음에 있어서 진보하지 못하고 언제나 초보적인 경지에서 머물러 있다가 낙오할 것(6절, “타락”)을 염려하고 있다. 

저자는 믿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할 중요한 교리 여섯 가지를 나열한다. 여섯 가지의 가르침은 두 쌍씩 묶을 수 있는데, 첫째는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1절)이고, 둘째는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이며, 셋째는 “죽은 사람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2절)이다. 첫째 쌍은 믿음의 첫 단계에 관한 것이고, 둘째 쌍은 믿은 후에 행하는 중요한 일에 관한 것이다. “세례”로 번역된 ‘밥티스모스’를 “정결례”로 번역할 수도 있다. “안수”는 안수 기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직분자에 대한 안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셋째 쌍은 믿는 이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이로써 저자는, 기독교 신앙의 시작과 과정과 마지막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들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가능하다(3절).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분께서 빛을 비추어 주셔야만 우리가 깨달아 알 수 있다. 하지만 빛 가운데 눈을 감고 있으면 빛의 혜택을 입을 수 없다. 빛이 비치면 일어나 활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영적 성장이 일어난다. 지금 히브리서 독자들은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맛본 사람들”(4-5절)이다. 그렇다면 그 은혜 안에서 계속 자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6절)하게 되고, 그들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  

이어서 저자는 믿는 사람들을 땅에 비유한다.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7절)라는 말은 성령을 통해 매일 내려 주시는 은혜를 말한다. 그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유익한 농작물” 즉 좋은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복되게 하신다. “가시덤불과 엉겅퀴”(8절)는 불신앙의 행위와 죄를 가리킨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삶을 살면 “쓸모 없는 땅”이 되어 버리고, 그 땅은 “저주를 받아서 마침내는 불에 타고 말 것”이다.

묵상: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파에서는 “한 번 받은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Once saved, always saved)고 주장합니다. 반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아르미니안 파에서는 “이미 받은 구원은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 백년 지속되어 온 이 논쟁은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골치 아픈 책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히브리서 전체 중에서도 가장 명시적으로 “한 번 받은 구원도 취소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논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은 신비이시고 우리 인간의 이해력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칼빈주의적 구원론과 알미니안적 구원론은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거대한 신비의 서로 다른 차원을 설명한 것입니다. 둘 중 어느 하나가 틀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하나님의 신비의 일부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요즈음에는 이 문제를 두고 그리 심하게 논쟁하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진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의 본문에서 구원론에 대한 어떤 주장을 펼 뜻이 없습니다. 그는 분명히 믿음의 길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주의를 게을리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2:1, “떠내려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는”(3:12)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빛을 받아서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을 나누어 받고, 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맛본 사람”(4-5절)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미 받은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계속하여 성장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제쳐놓고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1절)라고 권면합니다. 

살아 있는 것은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에게 있어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은 죽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참되다면 살아 있어야 하고, 살아 있다면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그런 믿음은 “떠내려 가지도”, “떠나가지도” 않습니다.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값진 것을 알기에 계속하여 자라가기를 힘씁니다.

기도:

주님, 저희에게 빛을 비추셔서 하늘의 은사를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며,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경험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저희를 붙드시어 이 귀한 구원의 은혜로 인해 유익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매일 성장해 나가게 해주십시오.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히브리서 6장 1-8절: 멈추면 죽는다”

  1. billkim9707 Avatar

    십자가의 구원을 깨닫게하시고 지금까지 살아온것도 전적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앞에 설때까지의 삶도 주님의 은혜로 항상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모든생각과 언행이 주님께 향하고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주님 경외하며 하로 하로 새로워지고 말씀 순종하며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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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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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페이스북에서 가끔씩 보는 교수가 있습니다. UCLA에서 한국 기독교 역사학을 가르치는 분인데 최근에 120년 전 가난과 후진성으로 인해 망해가는 한국을 살리는 길은 기독교 부국강병론이라는 신문 기사를 포스팅했습니다. 기독교로 지덕체 교육을 하고, 무형의 힘 즉 내적인 힘을 길러 어진 사업으로 나라와 이웃을 구제하고 부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게 당시 한 신문의 기사였습니다. 교수는 지금의 한국은 지도자들이 교회를 이용해 정치권력과 돈을 추구하고, 교회는 교회대로 사유화되고 파당화되어 뜻 있는 청장년들은 교회를 떠나는 위기를 맞았다고 안타까와 합니다. 100년이 넘은 한국 기독교역사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배타성’에 대한 글도 올렸습니다. 2000년 된 성서에 없으면 (안 써 있으면) 할 수 없는 것이요, 성서에 있는 거룩한 말씀대로 해야 한다는 문자적인 완고함, 성서 만 읽고 상황, 맥락, 비평은 다 무시하는 반지성적인 태도, 정치적 우파 반공 이념의 수용과 반대파를 없애는 군사적 전투성이 현 기독교 근본주의를 지키는 배타성이라는 글도 올렸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반공주의, 근본주의, 부흥주의, 성장주의, 은사주의가 강화되어 이성이나 합리성은 필요 없고, 감정적이고 공격적이어야 믿음이 좋은 신앙인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은 목사들이 그런 인식을 부추기며 쉬운 방법으로 목회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6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박고 욕되게 한 사람들이 이런 목사와 신도 아닌가 싶습니다. 기독교 덕분에 부국강병이 된 것은 맞는 말 같고,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교육과 사회 참여를 격려하고 장을 열어 준 기독교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가난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동안 일어난 배타와 경멸, 무시의 죄를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훌륭하게 자란 어른’이 되자 (1절)고 권하면서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기초를 다시 닦지는 말라고도 합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돌아서서 온 길을 다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오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온 걸까요. 우회도로나 새 길이 나올 때 까지 그냥 계속 가야 할까요. 광야에서 죽은 세대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싶습니다. 성령의 지혜를 구하고 주의 은혜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애쓸 뿐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어도 어떤 이는 연구해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듣고 배우는 사람으로 삽니다. 말씀으로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일은 모든 이가 가야할 길일 것입니다. 주님, 이 시대에 성령의 지혜를 보내 주소서.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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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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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구름이 끼고 찬 바람이 일렁이는 토요일 아침입니다.

    어제에 이어지는 신앙 성장의 중요성에 대한 권면. 한번 구원을 얻은 자가 타락하면 구원을 다시 얻을 수 없다는 두려운 경고.

    죽은 가지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겠지요. 또 자라지 못하는 가지는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은 것. 튜브를 타고 해수욕을 할 때 가만히 떠있으면 아득히 바다로 밀려나곤 했던 것이 기억나요. 그렇듯 목적지를 향해 가던 배의 연료가 떨어진다면 표류하게 되겠지요?

    오늘도 길을 잃지 않고 가나인을 향해 한걸음 나가길 원해요. 저를 불쌍히 여기사 죄의 질긴 유혹에서 지켜주세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날 수 있도록 저와 가족들의 인생을 생명의 빵으로 먹이시고 축사하여 주세요.

    어둔 골짝 지나가고 험한 바다 건너서 천국문에 이르도록.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영원하신 기업. 우리 주님. 사랑해요. 의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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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님께서 심판 주로 오시는 그날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름을 타시고 오신다(계 1:7)”고 요한에게 말씀하셨고 내가 곧 가겠다(계 22:20)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오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벗어나 성숙되고 성실한 어른과 같은 믿음의 반열에서 날마다 공급하시는 말씀을 먹고, 늘깨어 기도하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새하늘과 새땅)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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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마라나타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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