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장 1-6절: 주님 은혜 의지하여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4:14)으로 소개한 저자는 인간 대제사장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을 대조하여 설명한다. “각 대제사장”(1절)은 아론 이후로 이어져 온 대제사장들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관계되는 일”(1절)은 제사를 뜻한다. 

“그는 자기도 연약함에 휘말려 있으므로”(2절)라는 말은 대제사장도 역시 죄를 짓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릇된 길을 가는 무지한 사람들”은 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대제사장이 자신도 죄인임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겸손히 섬길 수 있었다는 뜻이다.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죄를 위해서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다(3절). 레위기 16장 6-14절에 대제사장의 속죄 제사 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앞에서 저자는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아 지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4:15)라고 말한 바 있다. 죄인으로서 죄인들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인간 대제사장의 역할인 반면, 예수님의 제사는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인들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신 것이다. 그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대제사장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간 대제사장은 인간적인 자격 기준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 아니라 아론의 혈통에 따라 정해졌다. “자기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4절)는 말은 자신이 쌓은 어떤 공로로 인해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시편 2편 7절을 인용한다(5절). 그분이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시편 110편 4절은 장차 올 메시아를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임명받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선언한다(6절). 멜기세덱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창 14:18)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스라엘의 첫 제사장 아론은 멜기세덱보다 수백 년 이후에 나왔다. 인간적인 혈통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의 후손이기 때문에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멜기세덱이 아론 이전에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다.

묵상: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는 제사를 위해 성별되었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인 아론은 첫번째 제사장으로서 그의 직계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론은 또한 첫번째 대제사장으로서 그 직책은 그의 아들 엘르아살로 승계되었고,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대제사장직은 아론 계열의 장자들이 이어갔습니다. 아론 계열에 속하지 않은 레위인들은 성막(후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하는 일을 돕도록 정해졌습니다.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지휘하고 감독했으며,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지성소에서의 속죄 제사를 드리기 전에 대제사장은 그 자신을 위해 먼저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도 역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속죄 제사는 매 년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짐승의 피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피로, 한 해만 유효한 속죄 제사가 아니라 영원히 유효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제사장의 사명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대제사장으로 임명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속죄 제사는 영원한 사죄의 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기도:

성부 하나님, 십자가 위에서 저희를 위해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서 저희를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을 의지하 아버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은혜에 의지하지 않고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저희의 죄와 허물을 저희가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저희를 받아 주시고 깨끗하게 씻어 주시어 거룩하게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히브리서 5장 1-6절: 주님 은혜 의지하여”

  1. gachi049 Avatar
    gachi049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죄인을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게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드리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세상은 점점 악해저가고 죄의 어둠 속에서 희희락락 거리며 세상을 즐기며 살아가는 죄악속에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주님. 매일 공급해주신 말씀을 먹고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함으로 영혼을 깨어주셔서 분별할 수 있는 은혜 주심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Like

  2. billkim9707 Avatar

    죄없으신 온전히 성결하신 어린양이 온세상의 죄를지시고 대속물이되신 그토록 엄청나고 위대한 은혜를 자주 잊고사는 무지하고 비천한 존재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과 가망이 없는 죄인들 사이에서 예수그리스도만이 중재자로서 멜기세댁 계열의 대제사장이신것을 고백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같이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는 아침입니다. 아멘.

    Liked by 1 person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할렐루야

      Like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햇살이 화창한 아침입니다. 마음에 여러 상념으로 밤에는 좀 뒤척였네요.

    계속되는 영원한 대제사장에 대한 교리 풀이. 땅의 대제사장은 자신도 연약하고 시험받으며 또 죄인. 주님은 온전히 사람이 되셔 시험받고 연약함울 겪으셨지만 죄가 없으셨음. 그러므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여 스스로를 속죄 제물로 바치셨다는 대속의 교리.

    대속…히브리서가 방점을 찍는 이 교리가 제게는 늘 난해해요.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삶의 어느 시점에선가 이것을 믿기로 작정했고 그러고나니 이게 정말 마음으로 믿어지는 신기한 체험을 한 것 같아요.

    주님. 마음의 문을 열어주세요.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특히 십자가의 대속이 마음으로 믿어지고 입술로 고백되는 그런 인생 되기를.

    이 고백이 삶의 능력이 되기를. 그래서 어둡고 혼돈스러운 세상 가운데 작은 소망의 등불을 들고 가는 삶의 순례자 되길. 아이들의 인생도 빛으로 이끌어 주시고 하나님의 때를 좇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주시길.

    기도해요. 아빠, 우리 아버지.

    Liked by 1 person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대속의 뜻은 대신하여 벌을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께서 인간을 위해 대신 벌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예수께서 대신 짊어지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을 회중을 대신해 희생 제물을 바치는 대제사장으로 설명합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 당대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를 위한 제사와 제사장이라는 뜻 임을 알려줍니다. 저자가 대제사장이신 예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천사-모세-대제사장으로 진행되는 서술은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권능을 가진 분이었다고 강조합니다. 대제사장은 종교적인 단어입니다. 종교가 생활의 일부이지 않으면 대제사장이라는 지위나 역할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대제사장은 남성중심적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예수님과 히브리서의 예수님은 다른 분으로 느껴집니다. 신학이라면 다같은 신학인데 무슨 신학, 무슨 신학…제목 다른 신학들이 다 있어야 하냐는 ‘무식한’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만나는 예수님은 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 둘 세는 숫자적인 의미를 말하는게 아니지요. 나의 이해와 깨달음을 넓히는 분입니다. 이해한 듯 하면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되고, 안 듯 하면 다시 모르는 부분과 만나게 되고… 매일 부르시고 초대하십니다. 제사에서 잔치로 넘어오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사의 시대는 가고 잔치를 공부하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주님의 식탁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Liked by 2 people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Like

Leave a reply to billkim9707 Canc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