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장 1-4절: 네 개의 동아줄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저자는 앞에서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보다 높은 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러므로”(1절)는 1장에서 입증한 내용의 결론이다. “들은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킨다. “굳게 간직하여”는 의식적으로 마음에 새기는 것을 의미한다. “빠져드는”으로 번역된 ‘파라레오’ 동사는 부두에 묶어 놓은 배가 거센 바람에 밀려 떠내려가는 상황을 묘사한다.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는 믿음에서 떠내려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2절)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킨다. 시내산 이야기에서 천사는 등장하지 않지만, 모세는 죽기 전에 기도하면서 “수많은 천사들이 그[주님]를 옹위하고, 오른손에는 활활 타는 불을 들고 계신다”(신 33:2)고 회상 했다. “모든 범행과 불순종하는 행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율법을 범한 것 각각에 대해 마땅한 처벌(“공정한 갚음”)을 정하셨다. 

천사들을 통해 주신 율법이 이렇게 귀중하다면, 천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으신 아들을 통해 주신 말씀은 얼마나 더 귀한지 생각해 보라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도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얻은 구원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3절)이라고 표현한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 구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소홀히 하다”는 “무시하다” 혹은 “하찮게 여기다”로 번역할 수 있다. 천사를 통해 주신 율법을 범하는 것에도 벌이 있었다면, 아들을 통해 주신 복음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것에는 얼마나 더 큰 벌이 있겠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안겨 주신 구원의 복음은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실한 것이다. 네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그것은 “주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이며, 둘째,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확증하여 준 것”이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사도들을 가리킨다. 셋째, “하나님께서도 표징과 기이한 일과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4절)시어 확증해 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사도들을 통해 나타난 기적을 가리킨다. 넷째,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의 선물을 나누어 주심으로” 증언해 주셨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짜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 주는 네 겹의 동아줄과 같다. 이 줄을 붙들고 있으면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밀려 떠내려가지 않는다. 

묵상:

히브리서 저자는 나중에 믿음에 대한 유명한 정의를 남겼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믿음의 대상은 “바라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의감이나 불신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서도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더라?” 하면서 찾아다니는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보이는 것도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저자는 믿음이 식어지고 회의감이나 불신에 빠지는 것을 “떠내려 가는 것”(1절)이라고 표현합니다. 항구에 단단히 묶어 놓은 배가 풍랑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 것을 상상하고 한 말입니다. “떠내려 가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완전히 멀어지기 전에는 그 사실을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들은 바를 더욱 굳게 간직”해야 합니다. ‘프로세코’는 “단단히 잡다” 혹은 “바짝 잡아당기다”라는 뜻입니다. 

믿음에 우리 자신을 단단히 잡아매기 위해서는 든든한 동아줄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우리의 믿음을 잡아 맬 네 개의 동아줄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 그리고 복음을 통해 얻은 구원은 1)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며, 2) 사도들이 전해 준 것이고, 3) 여러 가지의 이적과 기사로 증명되었으며, 4) 성령을 통해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의문이나 회의감이 들 때, 이 네 가지의 증거를 기억하면 떠밀려 내려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믿음을 네 개의 동아줄로 단단히 동여매 주십시오. 저희의 귀는 너무 얇고 저희의 마음은 너무나 어리석고 저희의 의지는 너무나 약하여, 작은 의심에도, 사소한 시험에도 흔들려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바쳐 선물로 주신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9 responses to “히브리서 2장 1-4절: 네 개의 동아줄”

  1. billkim9707 Avatar

    매일아침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듣고 말씀해설과 묵상을하며 기적을 보았는데도 보이는 세상의유혹에 헛눈질하는 줒대없는 인간입니다. 그토록 귀한 은혜를 받고서도 당연한것인것으로 생각하는 파렴치한 존재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갈보리 언덕에 서있는 십자가만 보며 숨다할때까지 순례의 길을 걷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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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카레에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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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Day light savings time이 시작되는 첫 월요일이면 늘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우리의 신체와 정신이 얼마나 내 무의식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시계에 묶여있는지 상기하는 노곤한 아침입니다.

    복음으로 부터 점점 표류해 나갔던 초대 교회, 그리고 복음의 시원(예수), 전언자(사도), 증표(기적), 확증매체(성령)라는 네 개의 동앗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감과 회의를 느끼는구나,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초창기부터 있었구나.

    아직도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고 주를 따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신기해요. 믿음의 능력이 약해질 때마다 끊이지 않고 새로운 각성이 있었고 그 때마다 이 동앗줄을 잡았기 때문 아닐지요?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을 때, 내 자존감이 무너질 때, ‘왜 나만‘이라는 짜증이 들 때, “믿음이 실상”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궤변 아닐까, 종교란 Wishful thinking의 확증 편향 시스템아닐까 이런 의심이 생겨요. 제 마음이 바다 쪽으로 떠밀려가는 것이겠지요.

    교회의 표류를 먹아준 내게의 동앗줄. 오늘 그 줄을 붙잡기 원해요. 제 마음에도 부흥과 각성이 있기를. 말씀으로 약해져 가는 믿음의 기초를 다시 보강하고 성령의 표징으로 심령이 새롭게 되기를.

    알파와 오메가, I AM. 그 만유의 주께서 나의 친구 되시며, 그의 피로 내 몸값을 치루셨음을 것을 다시 깨닫고 다시 확증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해요.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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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내쉬빌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묵상 분량에 비추어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 적이 없으나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 this magnifient salvation 은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강복 속에 살아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3일 동안 많은 대화를 하고 성경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주제 발표와 테이블 토의를 했습니다. 식사 때는 안면이 있는 사람을 찾아 같이 먹지만 6명 정도가 둘러 앉으니 아침 저녁으로 처음 얘기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헤어질 무렵엔 익숙한 얼굴이 많았습니다. 정식으로 토의를 할 때도 배우지만 식사 테이블에서 가볍게 하는 얘기들도 내겐 양식이 되었습니다. ‘간증’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아도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의 이야기요 구원의 에피소드였습니다. 해결이 되어서, 잘 끝나서, 다행이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 아픈 일, 속이 상할대로 상하는 힘든 문제, 언제까지 참습니까,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아뢰는 기도마저도 누군가에게 블레싱의 통로가 되는 것을 봅니다. 그런 깨달음이 많았던 3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확고한 증언은 확고한대로 은혜가 되었고, 어디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냐며 분노하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는 이야기는 이래서 우린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게 했습니다. 오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 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어냈을까, 날 수 없는 인간이 비행기라는 걸 만들어 공중을 날아 지구 저 반대쪽으로 간다는 이 엄청난 일을 하다니… 하면서 놀라는데, 이번 여행에선 비행기가 한 나라, 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기에 있는 150여 명은 이륙부터 착륙까지 서너 시간 동안 공동체를 이룹니다. 공동체가 따라야 하는 규칙, 에티켓이 있고 모두 감내해야 하는 불편함과 제약이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착륙 때까지 서로 돌보고 의지하고 보호하며 가는 공동체입니다. 비행기 안에 있는 동안 양보하고 인내하듯, 화내지 않고 침착하듯, 권리의 주장이나 부인에 즉각적이지 않듯 비행기 밖에서도 한다면 세상이 좀 더 평화롭고 정의롭지 않겠나 생각해보았습니다. 비행기처럼 엄청나고 대단한 것을 만든 인간이 -천사의 도움을 받아 만들지 않았을까요- 하늘에 있는 동안 행동하듯 땅에서도 행동한다면 어떻겠나 생각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고 타인의 스토리에 믿음으로 감동하고 연대하는 우리가 사랑과 공의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겠나 조심스럽게 희망해 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은혜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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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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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issful2a0acacad4 Avatar
    blissful2a0acacad4

    둥둥 떠내려가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변하지 않는 일상의 문제들에 스스로의 난제에 부딪쳐 지치고 낙심한 경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참 견디기 힘든 어려움 입니다 그것이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고통에 처한다면 더 심할 것입니다

    하루하루 버티며 힘없는 손으로 주님을 붙드는 무능한 마음을 부표처럼 띄웁니다 주님께 다시 향해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눈물을 훔치고, 안간힘를 쓰며 그렇게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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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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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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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gachi049 Avatar
    gachi049

    세상은 여러가지 유혹 속에 잠겨 있습니다. 마치 커다란 뚜껑 없는 가마솥에 들어간 개구리가 점점 올라가는 물의 온도를 감지하지 못하고 헤엄치고 즐겁게 즐기다가 결국 뜨거운 물속에서 죽어가는 것처럼 인간도 이럴때가 많습니다. 세상재미에 빠져서 영혼에 심각한 암이 발생하여 나자신을 포함하여 죽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주신 4가지 사랑의 밧줄, 첫째, “주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 둘째,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확증하여 준 것”. 셋째, “하나님께서도 표징과 기이한 일과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4절)시어 확증해 주셨다. 에 단단히 묶임바 된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어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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