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35-40절: 인정 욕구와 상승 욕구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야고보와 요한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는 필시 다른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이유는 메시아로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바짝 다가가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달라고 청한다(36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 중에서 자신들을 특별 대우해 주셨다고 믿고 이렇게 청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37절)라고 답한다. “영광을 받으실 때”는 메시아 왕국을 세우시고 그 나라의 왕으로 등극할 때를 의미한다. “오른쪽”과 “왼쪽”은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를 의미한다. 제자들은, 메시아 왕국이 세워질 때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인정 받을지를 두고 다투곤 했다(9:33-34). 야고보와 요한은 선수를 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38절)고 답하신다. 메시아로서 예수님이 하시려는 일과 그들이 바라는 일이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마시는 잔을 마시고 당신이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 그들은, 그것이 승리의 축배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할 수 있습니다”(39절)라고 답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라고 답하신다. “잔”과 “세례”는 죽음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예언이었다. 그들은 축배를 기대했지만, 고난과 죽음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야고보는 사도들 중 맨 먼저 순교의 세례를 받았다(행 12:1-5). 

예수님은 “내 오른쪽과 내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40절)라고 덧붙이신다.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몫이 주어질 지는 온전히 하나님의 소관이다.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일을 행하는 일에만 힘쓰면 된다. 

묵상:

야고보와 요한의 언행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높아지고 싶은 욕망”을 봅니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욕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죄에 오염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죄성에 물든 욕망은 우리로 하여금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을 바라고, 넘지 말아야 할 한계를 넘어서도록 흔듭니다. 다른 사람들을 경쟁자로 여기고, 어떻게든 그 경쟁에서 이기려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삼년 동안 동고동락한 동지들에게 선수를 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욕망에 사로잡히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폐기처분 하고 저열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지속적으로 설명해 주셨는데도, 제자들은 끝까지 그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메시아와 메시아 왕국에 대한 그들의 고정 관념이 얼마나 강고했는지를 반증해 줍니다. 그들이 아직도 인정 욕구와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이 그토록 놀랍기 때문에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그들에게 일어난 변화는 더욱 놀랍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메시아 왕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얻고 싶어했던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에 첫번째 순교자가 되는 역설적 영광을 얻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얻은 후에 제자들은, 그들이 마시고자 했던 승리의 축배는 실상 독배였고, 그들이 얻으려 했던 영광은 덧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욕망을 사로잡고 있던 죄성이 치유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인정 욕구와 상승 욕구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들은 높아져서 군림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낮아져서 다른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메시아의 나라는 오직 사랑과 섬김을 통해서만 임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는 아직도 인정 욕구와 상승 욕구에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낮아지는 척하지만 마음 속에는 높임 받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속속들이 퍼져 있는 이 죄성을 제하여 주시어, 오직 주님께만 눈길을 두고 이 땅에서는 낮아져서 섬기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항상 주님 나라 안에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마가복음 10장 35-40절: 인정 욕구와 상승 욕구”

  1. bull9707 Avatar
    bull9707

    입으로는 사랑과 희생으로 낮아져 이웃을 섬기라고 읊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탐욕과 명예욕이 심하게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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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키리에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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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님께 자리를 청탁한 야고보와 요한의 이야기. 해설 말씀처럼 예루살렘에서 있을 고난 예언에 바로 이어지는 논공행상 논쟁은 좀 뜬금없고 놀랍기는 해요.

    높아지려는 욕구가 잘못된 것일지요? 이제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도 저는 매일 매일 더 인정받고 싶어요. 아이들의 인생이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도 번듯하게 풀리기를 마음 속으로는 너무도 강하게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야고보와 요한의 마음처럼…

    사순절이 곧 시작되네요. 주님은 높아지려는 마음을 꾸짖지는 않으셨지요? 그렇지만 내 잔을 함께 마시고 내 세례를 같이 받을 수 있느냐고 제게도 물으시네요.

    그리고 하늘의 높아짐은 그분에 보다 가까이 있는 것, 그래서 그분과 같이 남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라 하시네요.

    햇살이 좋은 아침입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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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동상이몽’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에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과 전혀 다른 꿈을 꿉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멋지고 통쾌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믿었어도 문제고, 예루살렘 다음 장소에서 -하나님의 나라,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예수님의 좌우에 앉혀 주시기를 바랬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을 마시고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시자 형제는 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이 답한 것처럼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예수님 양쪽에 앉게 될 지는 예수님이 정하는게 아니라고 답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정해놓은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대화는 동상이몽인 것 같은데 일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바라는 결말이 날 지 안 날 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겪을 일을 이들도 겪을 것이니 완전히 다른 꿈은 아닌겁니다. 야고보와 요한과 베드로는 예수님이 높은 산 위에서 눈부신 모습으로 변화하시는 것을 목격한 제자들입니다. 엘리야와 모세까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초막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야고보 요한 베드로 세 명이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좀 더 많이 보고 들었다고 할 만 합니다. 그러니 좀 더 높은 자리, 예수님과 더 가까운 자리에 갈만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해도 아주 엉뚱한건 아니겠습니다. 예수님도 그래서인지 이들을 야단치시지 않습니다. 대신 무엇을 요구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더 ‘높고’ 더 가까운 사람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확장해서 볼 수 있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은 예수님이 결정하시는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에겐 이것이 초미의 관심사인데 예수님은 이것을 해결해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별 것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지금 하는 생각이나 걱정, 기대나 소원을 그대로 갖고 공간만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게 아닐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소원은 예수제국이나 예수공화국에서는 이뤄질 지 몰라도 주의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시는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보조를 맞추어 걸으려면, 예수님의 걸음에 맞춰 걸으려면 관심이 달라져야 합니다. 나의 기도 나의 소원이 예수님의 오른쪽 왼쪽에 앉는 것처럼 가깝고 살갑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관심 갖고 보시는 것을 나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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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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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achi049 Avatar
    gachi049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35)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동안이나 동고동락하면서 많은 이적과 기적을 경험하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영안이 어두어 예수님이 어떤분 인지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출세만을 갈망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마도 지울 수 없는 인간의 원죄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길은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기쁜 마음으로 주어진 현실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삶이라 생각하고 원합니다. 주님! 내마음 속에 아직도 존재하는 원죄를 묶어둘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성령께서 동행하셔서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미소로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남은 여정이 되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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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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