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23-31절: 나와 복음을 위하여

3–5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그 사람이 떠나가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산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23절)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적잖이 놀란다(24절).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25절)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과장법을 섞은 비유로서,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 말씀에 제자들은 더욱 놀라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26절) 하고 묻는다. 당시 유대교 가르침에 의하면, 부는 의로운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따라서 부자가 구원 받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것 없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27절)고 대답하신다.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인간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당시 유대교는, 인간이 의를 쌓아서 하나님의 커트라인을 통과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다. 부자는 그렇게 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 생각을 뒤집어 엎으신다. 구원은 인간이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인간의 의는 그 선물에 대한 응답이다. 부의 정도는 그 사람의 의의 정도와 상관 없다. 

그러자 베드로는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28절) 하고 답한다. 이 말은 부자 청년이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20절)라고 답한 것과 다르지 않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을 자신의 의로 여겼다. 이 말을 하면서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그래, 너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칭찬해 주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못 들은 척 하신다. 

그 대신에 예수님은, 당신과 복음을 위해 희생한 것들은 이 땅에서 그리고 오는 세상에서 넉넉히 보상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다(29-30절).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29절)를 버리라는 말씀은 다소 충격적이다. 예수님은 가르치실 때 자주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하셨다. 전하려는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시키려는 뜻이었다. 예수님의 의도는 자녀 혹은 부모의 책임과 도리를 져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제자들처럼 사명을 위해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내려 놓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언제나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선순위다. 제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앞에 있어야 할 것은 예수님이요 하나님 나라요 복음이다. 매일의 일상 생활 중에 행하는 수 많은 결정과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맨 앞에 두기를 힘쓰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나야 할 때—특별한 부름에 응답해야 할 때 혹은 죽음의 문턱에서—미련 없이 내려 놓고 나아갈 수 있다. 그럴 때 하나님은 포기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보답해 주신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31절)이라는 말은 땅의 질서와 하늘의 질서가 대조적이라는 의미다. 이 땅에서 높임 받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낮은 사람이고, 세상에서 큰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사람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작고 하찮케 여김 받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복음을 전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묵상:

어른이 되는 것, 부자가 되는 것, 권력의 자리에 앉는 것, 유능해 지는 것, 똑똑해 지는 것—이 모든 것은 누구나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일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된 이유는 모두가 강자가 되고 최고가 되고 부자가 되려고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것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럴 때 우리의 죄성이 만족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고 왕이 되고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른이 되어야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하며 권력을 가져야 하고 강해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정반대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아이처럼 되는 것, 가난해지는 것, 무력해지는 것, 무능해지는 것, 어리석어 지는 것을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아이처럼 되라는 말은 성숙해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가난해지라는 말은 놀고 먹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질을 목적으로 삼아 물질의 노예로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무력해지라는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부리려 하지 말하는 뜻입니다. 무능해지라는 말은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리석어지라는 말은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성숙과 부와 권력과 능력과 지혜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길에서 걸림돌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언제나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의지하는 것이 영적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의롭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 앞에 서서 어린아이처럼 그분이 내려주시는 은혜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 은혜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린 후에도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눅 17:10) 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기도:

저희의 내면을 저희 자신보다 더 잘 보시고 아시는 주님, 저희 안에 혹시 의로 여기는 어떤 것을 보셨다면 주님의 수술칼로 그 생각을 도려내어 주십시오. 저희의 생명을 다 살라바쳐도 주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오직 주님의 사랑 때문에 저희에게 내려주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 주님, 저희를 주님의 은혜로 감싸 주셔서 이 땅에 속한 어떤 것도 주님보다 커보이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목적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6 responses to “마가복음 10장 23-31절: 나와 복음을 위하여”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햇살이 영롱한 토요일 아침입니다. 봄이 정말 온 것 같아요.

    오늘은 부자와 낙타이야기. 해설을 보니 부는 의의 상급이라는 당시 믿음 때문에 제자들이 ‘그럼 과연 누가‘라고 의문을 던진 것을 이해할 수 있었네요.

    상급에 대한 얘기. 복음을 위해 재산은 물론 부모와 자식까지 버리라는 것은 무슨 얘기일지요? 마가복음이 네로의 박해에 처한 초대 교인들을 위해 쓰어졌다고 하는데요, 배교를 택하지 않으면 집안 전체가 죽거나 망하는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알 듯도 해요.

    슬픈 많은 세상 속에서 지금의
    고통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고대하며 삽니다. 실족하지 말게 하시고, 세상 유혹에 속아 길을 잃지 않게 하시며, 혹 넘어질 때도 서로 다시 일으켜도록 도와주세요.

    요단 건너 주의 장막에 들어갈 때 우리 눈물을 씻기시고 수고했다 칭찬해 주실 때를 기립니다. 이 뒤틀어지고 악한 시대를 제자 답게 끝까지 살아낼 수 있는 능력과 믿음의 옷을 입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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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는 부자 청년이 구원과 영생의 지름길을 알려고 예수님께 나왔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 다음에, 그러고 와서 예수님을 따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매우 슬퍼하며 떠나간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떠난 뒤에 제자들과 이야기를 이어가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라면 더더욱 어렵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시각 자료를 덧붙이십니다. 낙타와 바늘 귀…중동 사막지대에서는 낙타가 흔해서 낙타가 나오나 봅니다. 인도였으면 코끼리, 한국이었으면 곰이 등장했을지 모릅니다. 어떤 동물이 나오든 바늘 귀는 고정입니다. 바늘 귀나 겨자씨나 연상되는 이미지는 한 가지입니다. 최근 신문 기사에서도 읽었지만 성서 번역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나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합니다. 번역에 실수가 있었다는걸 증명할 수 있어도 오랫동안 오역한대로 ‘믿어온’ 독자들의 마음을 돌리는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낙타와 바늘 귀 비유도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었다고, 아람어로 밧줄은 gamta, 낙타는 gamla 여서 t와 l을 혼동한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마르다 marta와 maria 의 이름도 t와 i가 바뀌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바뀌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사로와 마리아 남매가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3 남매가 되었다는 주장이 오리지널 파피루스와 함께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진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 교수가 2022년에 “All the Marys”라는 설교에서 이같은 오역을 바로잡는 노력과 관련된 신학적 통찰을 설명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라고 우리가 이해하는 마리아는 탑, 망대 tower 라는 뜻을 가진 magdala 에서 온 것이지 지명이 아니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1:27)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메시야 그리스도라고 (베드로가 마가복음에서 고백한 것과 같이) 고백하는 사람은 마르다 (사실은 마리아)이며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보고 부활의 소식을 전한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 인물이라고 합니다. 즉,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 가운데서 망대처럼, 탑처럼 우뚝 선 증인이라는 주장입니다. 페미니스트 신학의 관점 아니냐고 반문하게 됩니다. 너무 달라서 선뜻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우리의 사고도 닫아 놓은 커텐을 제끼고 창문을 열듯 환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낙타와 바늘 귀의 스토리는 번역의 실수는 차치하고라도 이미지의 선명함 덕분에 우리 안에 확실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여전합니다. 부자는 부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추구하기가 정말 정말 힘들 것이라는 겁니다. 베드로가 갑자기 한마디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내가 그걸 알지, 잘했다, 그래야 한다…식의 답변을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렇게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버렸던 모든 것 (집 형제 자매 부모 자식 밭)을 백 배로 받을텐데 핍박도 함께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예전 번역에서는 금세에, 즉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렇게 받고, 내세에서는 영생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힘들고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길이라는 말씀이겠지요. 저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과 같은 말씀이라고 이해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저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의지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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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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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실때 극단적인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언듯 듣기에는 구원 받는 것이 불가능하게 들리고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면 구원 받는다는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즉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인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찰하시는 창조주 이신 하나님 마음에 달려 있음을 고백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문제는 인간의 삶이 부모보다,재물보다, 혈육관계 보다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로 하는 신앙을 지킬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만 해결됨을 믿습니다. 주님, 아직도 때때로 하나님을 뒷전으로 하고 세상에 눈을 돌릴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음란과 재물이 권모술수로 축복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오는 세상에서 성령님께서 동행하여주시어 영적 분별력을 주심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숨이 멎을 때까지 지킬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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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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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illkim9707 Avatar

    하나님과 부를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는 경고를 기억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둠보다 빛을 넓은길보다 좁은길 보이는것보다 보이지않는것 죽음보다 생명을 택하는 하늘의 지혜로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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