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17-22절: 복이 화가 되지 않도록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려 하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다(17절). “달려왔다”는 표현에서 그의 절박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무릎을 꿇었다”는 말은 예수님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다.   

그는 예수님께, “선하신 선생님”(17절)이라고 부른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18절)고 답하신다. 그 사람이 생각한 선함과 예수님이 생각한 선함이 달랐다. 인간적인 수준에서 “선하다” 할 만한 사람은 많다. 그 사람은 그 정도의 수준에서 예수님을  선하다고 불렀다. 예수님은 온전한 의미에서 선함을 생각하셨다. 절대적 의미에서 선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한껏 높인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직 그분이 누구이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여쭌다. ‘클레로노메오’는 “얻으려면” 보다는 “받으려면”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낫다. 영원한 생명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이다. 이 사람은 당시 많은 유대인들처럼 무엇인가를 행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내심을 아시고, 십계명 중에서 이웃과 관계되는 계명들을 열거하신다(19절). 그러자 그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20절)라고 답한다. 예수님은 그가 진심인 것을 아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21절).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을 가상히 보셨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치열한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예수님은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21절)고 말씀하신다. “부족하다”로 번역된 ‘휘스테리오’는 “심각한 결여”를 의미한다.  그것이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이 무용해지는 결핍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그렇게 하면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러자 그 사람은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22절) 떠나갔다. 그는 부자였기 때문이다. 

묵상:

예수님에게 찾아온 사람은 부자로서 이 땅에서 부족할 것 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계명과 율법을 연구하고 어김없이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20절) 라는 답에 대해 예수께서 긍정하신 것을 보면, 그 말에 거짓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십계명의 후반 여섯 계명(5계명부터 10계명까지)은 웬만한 노력이면 범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계명과 율법은 최소한의 도덕을 규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준 첫번째 질문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적 의에 대한 자만심을 드러내기 위한 수사적 전략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영생(하나님 나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점에서 꽤 잘 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율법적 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자, 예수님은 그에게, 정작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가 행한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는 나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전적인 신뢰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플러스 알파’였습니다. 그가 영생을 원하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는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마가가 이 이야기 바로 앞(13-16절)에 어린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극단적으로 보이는 명령을 그 사람에게 주십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진 것들을 모두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이 부자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저희의 마음이 너무나 작습니다. 살아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고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저희의 최우선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저희는 가진 것이 너무 많고 누릴 것이 너무 큽니다. 오, 주님, 이 땅에 소망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저희의 믿음을 고쳐주십시오. 이 땅에서 가진 것과 누릴 것 때문에 하나님 나라 문턱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마가복음 10장 17-22절: 복이 화가 되지 않도록”

  1. gachi049 Avatar
    gachi049

    주님, 지금까지 도우시고 지켜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것마저 너의 믿음 생활에 장애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죄인을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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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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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날씨가 완연히 풀리고 앙상한 나무 가지 끝에 새순들이 한껏 맺혔네요.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도록 하신 하나님.

    오늘은 부자 청년 이야기네요. 영생을 얻고 싶었고 그래서 율법을 준행했던 사람.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초청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미국 생활 이십년. 일 때문에 아프리카에 출장 갈 때마다 미국에서 산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누려지는지 새삼 놀라게 되죠.

    복의 땅 미국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이 자유, 이 평화, 그리고 풍요와 질서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그물과 배를 버리고 즉시 주를 따랐던 제자들의 마음을 늘 본받게 해주세요.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한 자로, 또 이방인과 나그네로 이 세상을 순례하게 해주세요.

    풍부함 가운데 살지만 궁핍에도 처할 줄 알게 하시고,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인생, 능력있는 인생이 되기를.

    아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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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앞의 어린이들과 오늘 청년을 나란히 놓고 묵상합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를 따라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어루만져 주셨으면 해서 예수님께 가까이 데리고 갔는데 제자들이 이를 보고 화를 내며 못하게 막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화를 내십니다. 어린이들이 과연 예수님 말씀을 알아 듣는지 아닌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철저히 수동적인 인물입니다. 부자 청년은 대조적으로 엄청 적극적입니다. 달려와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는 질문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what must I do to inherit the eternal life? 영생도 상속 받는건지 몰랐습니다. 청년은 상속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앞의 어린이들 중에도 상속을 받을 아이들이 있을겁니다. 다만, 예수님께 모여드는 군중은 대개 가난하거나 아픈 이들이어서 어쩌면 아이들에게 남겨줄 것이 변변치 않은 부모들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손을 얹어 주시면, 어루만져주시면 좋겠다, 그거라도 애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청년은 어떻습니까. 청년 역시 상속 받은 재산을 지키고 불리기 위해 성실하게 사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일에 성실하다는 것만 봐도 자세가 되어 있는 청년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어여삐 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문은 청년을 슬퍼하게 만듭니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십니다. 예수님은 사회주의적 경제 체계를 좋아하시는걸까요. ‘좌경화’ ‘좌파’ 성향이신가요. 청년이 재산을 다 팔아 나눠주고 본인은 빈털털이가 되어 길에 나앉으면, 가난하게 살면, 이건 또 무슨 그림인가요. 영생을 얻으려면 현생에선 고생을 하고 괴로와야 한다는게 메시지라면 인도의 요기들을 따라 다니는게 낫지 않을까요. 한 편에는 영생에 관심 없는,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천진한’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또 한 편에는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려고 뛰어온 모범적이고 훌륭한 청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편을 다 사랑하십니다. 두 편에 다 영생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은 자격으로 얻거나 노력해서 받는 상이 아니라는 뜻일겁니다. 영생은 미래의 어느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 늘 넉넉한 은혜가 영생인지 모릅니다. 임마누엘이 영생인가 봅니다. 미스테리이며 모순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나는 이미 가장 좋은 것, 가장 큰 것을 상속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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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임마누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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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illkim9707 Avatar

    눈에보이는 세상과 보이지않는 하늘나라를 한손에 하나씩 꼭붙잡고 살아가는 미련한 존재입니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두 나라에서 하나를 포기해야하는데 포기못하고 잡고있으니 삶이 너무나 고달품니다, 눈에보이는 세상을 포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과 은혜안에서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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