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30-32절: 묻기조차 두려워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그곳을 떠나 예수님은 “갈릴리를 가로질러”(30절) 가신다. “가로질러 가신다”는 말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직행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북쪽에 있던 헤르몬 산에서 예루살렘 방향으로 직행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릴리와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분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따라와서 소요를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갈릴리를 통과해 가는 중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제자들을 준비시키신다. 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지상 왕국을 세우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반면,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행하실 일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과 극과 극으로 달랐다. 메시아로서 그분은 먼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죽임을 당할 것이고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다. “넘어가고”는 “넘겨지고”라고 번역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어 죽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그분은 “인자”로서 영원한 왕권을 받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 뜻을 여쭈어 보는 것이 당연한데, 그들은 “예수께 묻기조차 두려워하였다”(32절). 그들이 원치 않는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불길한 사태를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묵상:

예수님 일행은 갈릴리 북쪽 헤르몬 산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까지 이동하셨습니다. 직선 거리로 이백 마일이 넘는 거리입니다.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 도보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수일이 걸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기간을, 제자들에 대한 특별 교육 기간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이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교육시키는 일에 집중하십니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교육은 예루살렘에서 당신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 준비시키는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는 장면이 세번 나옵니다(8:31-33; 9:30-33; 10:32-34).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이, 더 자주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메시아가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럴 수는 없다고 반대했습니다(8:32). 예수께서 그 말씀을 계속하시자, 제자들은 겉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두려워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불길한 것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제자들은 끝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외로이 죽으셨습니다. 그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을 깨닫고 받아들인 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의 일입니다.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경험한 후에는 더 확실한 믿음에 이르렀습니다. 지상 왕국에 대한 제자들의 집착이 그만큼 강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제자들처럼 지상 왕국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엄청난 이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오늘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이적의 능력을 끌어들여 이기는 길, 강해지는 길, 군림하는 길을 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요? 

기도:

주님, 제자들의 태도에서 저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저희는 왕관을 쓰고 싶어 합니다. 혹시나 저희가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하실까, 두려워 합니다. 혹시나 저희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라 하지나 않을까, 눈치를 살핍니다. 십자가의 길은 주님이 가셨으니, 우리는 영광의 길을 가고 싶어합니다. 오, 주님, 이 믿음으로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믿음이라면 저희도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버리고 도망갈 사람들에 속할 것입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을 제대로 알게 하시고 그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7 responses to “마가복음 9장 30-32절: 묻기조차 두려워”

  1. billkim9707 Avatar

    주님이가신 그길을 걷는것이 가장 귀한 축복이고 제가 좋아했던 세상의 모든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이 앵무새의 고백입니다. 부활의 영광만 구하고 십자가를 멀리하는 비굴한 존재입니다. 주님의 자비를 원합니다. 주님의 자비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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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키리에 엘레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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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예수 믿고 참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사랑이 많은 가정, 교회라는 마음의 울타리, 꿈에나 그리던 미국 생활. 지금 다니는 직장도 기도의 열매였지요.

    얻은 이득이 비용보다 컸던 것 같아요.

    메시아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반복된 가르침을 이해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제자들. 제자도의 이득과 비용을 따졌겠지요? 십자가라는 확실한 댓가에 비해 부활이라는 보상의 약속은 추상적이아서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말씀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하루가 되기를.

    나 요단강 건너 저 가나안 땅 들어갈 때에 나 주님 함께 길이 살겠네. 찬송하며 아버지의 뜻을 정직하게 듣고 순종하는 인생이기를.

    키리에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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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illkim9707 Avatar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을 닮겠다는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처럼…’이라는 말도 자주 쓰고, ‘예수님이라면 WWJD…’ 을 먼저 생각해 보려고도 합니다. 해설 말씀을 읽는데 예수님의 어떤 면을 닮겠다는 말인가, 예수님을 따라 뭘 하겠다는건가, 라는 질문이 마음 속에 생깁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정답이 하나 있는데 너희가 그걸 맞추는지 못 맞추는지 봐야겠다 해서 물으신게 아닐겁니다. 예수님이 질문하시는 것은 답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질문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감당하는 태도가 답만큼 중요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아이들 학교 다닐 때 수학 숙제를 보면 답을 내는 과정을 다 보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show your work. 문제풀이를 보여야 답으로 칩니다. 정답만 쓰면 점수를 깎습니다. 정답은 아니어도 문제를 성실히 풀었으면 점수를 반은 줍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겠다고 기도할 때 머리 속에 그리는 그림은 사랑이 많고, 늘 용서하고, 좋은 영향력을 주는 말을 하고, 심금을 울리고, 약자 편에 서고, 기도하면 능력이 나타나고, 존경 받고…등등입니다. 오늘 본문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상황들을 찾아 다시 읽어 봤습니다. 내 머리 속에 그리는 예수님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색을 곱게 입힌 모습입니다. 대중 영화나 드라마 중에 크게 센세이션을 일으키는작품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Jesus Christ Superstar’가 있습니다. 1971 년에 처음 무대에 오른 뮤지컬인데 그 때 나는 교회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춘기 중학생이었습니다. 이 뮤지컬에서 히트한 노래들이 라디오에 자주 나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르는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뜻도 모른채 따라 불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앞서 나간 작품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간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며칠을 다루면서 특히 예수님과 유다 사이의 긴장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뮤지컬은 예수님과 제자들, 유대 공의회의 지도자들의 심리를 추적해 드러내는 데 공을 들입니다. 극작가에 의하면 종교적인 인물로서 예수님을 그리지 않고 인간 예수, 인간들 사이의 사건과 심리를 묘사하고자 했답니다. ‘수퍼스타’를 요구하는 군중의 심리가 선명히 드러납니다. 2003년에는 “다빈치코드 Da Vinci Code” 라는 소설이 출판되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추리소설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된 성배 Holy Grail 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없을 뿐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과 위배되는 내용을 사실처럼 묘사한 까닭에 교회 자체가 거대한 음모론의 시작점이며 중심지인 것처럼 비춤으로써 책은 엄청나게 팔렸고 기독교는 ‘그게 아니다’ 라는 반박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이 책도 예수님을 ‘수퍼스타’로 만든 셈입니다. ‘수퍼스타’는 진화를 거듭해 요즘은 수퍼파워, 수퍼히로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당신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묻던 것이 요즘엔 what is your superpower 로 바뀌었습니다. 자녀 양육을 잘 하는 훌륭한 부모라는 뜻에서 수퍼히로 패런츠라는 말도 쓰고, 자녀에게 특별히 좋아하는 수퍼히로가 있는지를 물어 롤모델로 쓴다는 소리도 종종 듣습니다. 예수님은 수퍼스타인가요? 수퍼히로인가요? 제자들은 무엇이 두려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묻지 못했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수퍼스타 맞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빌라도나 공의회 대제사장들 앞에 나타나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들, 믿지 못하던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일이 없을텐데 성경은 그런 일이 있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에도 수퍼히로, 수퍼스타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두려워서 묻지 못하고, 말을 해도 틀린 말이나 하고, 듣고도 이해 못하는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고, 따라 오라고 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천천히 가지만 주님과 같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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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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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gachi049 Avatar
    gachi049

    주여! 주님께서는 3년동안이나 12제자들과 함께 사역을 하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풍랑을 다스렸고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셨으며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서 죽임 당하고 삼일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과 눈이 세상 사람과 다름 없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권좌에 앉으시면 한 자리 얻기를 원하고 바랬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나의 마음이 12 제자들과 별 차이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셔서 어떤 고난과 핍박을 당할지라도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남은 여정이 되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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