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장 22-26절: 벳새다에서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이어서 마가는 예수님과 그 일행이 벳새다에 있을 때의 일을 전한다(22절).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예수께서 자주 방문하셨던 곳이다. 그 동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데려와 고쳐 주시기를 청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마을 바깥으로 나가신다(23절).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실 때에도 그렇게 하셨다(7:33). 예수님은 치유 이적을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거나 인기를 끌려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의 두 눈에 침을 뱉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24절)고 물으신다. “손을 얹다”라는 말은 기도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자 그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한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실 때는 결과가 즉각적으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부분 치유가 일어났다. 예수님은 그의 눈에 다시 손을 얹고 기도하신다(25절). 그러자 그 사람이 온전히 보기 위해 노력한다(“뚫어지듯 바라보더니”). 그러자 시력을 온전히 회복한다. 예수님은 그에게, 동네 사람들에게 치유 사실을 퍼뜨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르신다(26절).

묵상:

예수님은 멀리서 말씀 한 마디로도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벳새다의 시각장애인에게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분의 이적의 능력이 약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그의 시력 상실증이 그만큼 심했기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의도하셨을 것입니다. 온전한 시력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본인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깨우쳐 주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통해 “나무들이 걸어다니는 것 같은” 정도의 영적 시력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온전한 시력을 얻기 위해 “뚤어지듯이 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말씀과 이적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닫혀진 마음의 자물쇠를 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눈먼 사람이 희미하게나마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처럼 눈과 귀가 열려, 불완전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면 금새 눈이 닫히고 귀가 막힙니다. 눈먼 사람이 뚫어지게 응시하여 시력을 되찾은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하나님 나라를 더 분명히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하나님 나라의 문을 들어가 그 나라를 더 깊이 알아보고 체험하는 과정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눈 질끈 감고 믿지 않으려는 불신앙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문을 따 놓으셨음에도 그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어미 닭이 품고 있던 계란 껍질을 깨뜨려 놓았으면, 안에 있는 병아리는 몸을 움직여 기지개를 펴고 나와야 합니다. 어미 닭이 계란을 깨뜨려 놓았는데, 속에 있는 병아리가 그 안에 웅크리고 앉아 머물러 있으려 하면 새 세상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믿음은 예수께서 깨뜨려 놓으신 무지와 어둠의 껍질을 벗어나 기지개를 펴고 새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귀를 열어 주시어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더 선명히 듣기 원합니다. 더 깊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저희의 영적 청력이 더 예민하게 해주십시오. 저희의 눈을 뜨게 해주시어 주님의 손길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더 분명히 보기 원합니다. 더 많이, 더 깊이 기도하여 저희의 영적 시력이 더 밝아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9 responses to “마가복음 8장 22-26절: 벳새다에서”

  1. billkim9707 Avatar

    시력이 좋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보이는것들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보이지않는 영의 세계를 무시하고 살아왔습니다, 십자가와 천국을 깨닫게하시는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영의 눈과귀가 민감하기를 원합니다. 태초 전부터 계셔서 모든것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의 창조주 임마누엘 삼위일체 하나님을 바로보고 듣고 주님 닮아가고 말씀 순종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사귐의 소리 식구 모두의 기도 제목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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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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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주님! 아직도 영적 눈의 시력과 영적 민감성이 약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통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습니다. 날마다 주시는 말씀을 먹음을 통하여 영적으로 보고 들을수 있는 건강한 영적능력을 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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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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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소경에게 정말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시면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회복의 과정을 함께 겪어내시네요.

    개안수술을 한 집도의가 안대를 풀고 결과를 확인하듯, ‘무엇이 보이느냐‘라는 그 분의 질문은 전지자의 확신을 담고 있기 보다는 한 의사의 신중한 물음으로 들립니다.

    놀랍게도 치유 이적의 첫 결과는 불완전했지요. 그러자 주님은 한번 더 안수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에덴이 완전히 회복될 것을 믿습니다. 애통이 웃음으로 변하고 죽음이 생명으로 애곡이 노래로,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이는 사실은 죽지않고 그저 자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나 이 세상 살동안 우리의 슬픔과 고통, 결핍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겠지요. 그 때 주는 함께 내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걸어가 주시며 그의 보혈로 거듭 인수하여 주시고 나와 함께 마물러 주시지 않을지요?

    그리고 내 마음의 눈을 온전히 뜨게 하셔서 주를 보게 하시겠지요?

    주님, 오늘 하루도 저와 동행해 주시고 저의 연약함을 고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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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influencerdelicatelya014b87282 Avatar
    influencerdelicatelya014b87282

    육십 평생을 선천적으로 약한 시신경 때문에 잘 보지 못한 불쌍한 내 남편의 눈에도 주님 손을 대어서 고쳐 주셨으면 하고 늘 기도했는데…

    그리하시지 않으셔도 영의 눈으로 예수님 뒤를 잘 따를수 있게 해 주심을 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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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키리에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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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작년 9월에 녹내장 수술을 받고도 좋아진걸 모르겠어서 실망이지만, 한가지 ‘건진 게’ 있다면 본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좀 더 구체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본다-못 본다, 시력이 좋아서 잘 본다-시력이 약해서 잘 못본다 정도 수준의 사고를 했는데 이제는 ‘본다-안다-봐도 모른다-보는 것만 본다-잘 본다-똑바로 본다-다시 본다-못 본다-안 보인다-잘 못 본다-본다고 본 게 아니다-못 본다고 못 보는게 아니다-눈으로만 보는게 아니다’ 까지 생각이 퍼져 나갑니다. 유전적인 요인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한 남편 친구가 병 치료와 관련된 임상실험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몇 주 전에 엘에이에 왔었습니다. 미국내 몇 군데 연구소와 접촉하고 있는데 지금은 필라델피아에 가 있습니다. 현재 상태, 병의 진행 속도, 연령, 병력 등등은 물론, 세부적인 조건이 다 맞아야 실험에 참여할 수 있다는데 실험의 초기 단계는 성공적이었지만 기술을 대중화하여 치료법으로 제시할 수 있으려면 정밀한 실험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어느 날 완전 암흑을 맞이할 수는 없다고,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다’는 표현을 보면 그는 원래 볼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무를 본 적이 있으니 나무 같은 것들이 보인다고 한거겠지요. 날 때부터 못 보던 사람이 보게 되는 것과 보다가 못 보게 된 사람이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좀 다르지 않겠나 싶습니다. 예수님은 또 손을 눈에 얹으십니다. 그는 쳐다보려고 애를 씁니다, the man looked hard 메세지 성경의 표현입니다. 공부 열심히 해! study hard! 애들 자랄 때 입에 달고 살던 그 hard 가 여기서 나오네요. 이번에 마가복음서를 읽고 묵상하면서는 믿음의 ‘균형’, 놀이터의 시소 같은 이미지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활동을 보고 평가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니라 율법학자나 종교지도자입니다. 제자는 예수님 하시는 일을 보고 자기도 따라 합니다. 잘 ‘보고’ 그대로 해 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듯이 예수님도 나를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보라고 하면 내가 볼 거라고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본다는 것은 듣는다는 것도 포함된 일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 것, 보라고 하실 때 보는 것, 뭐가 보이는지 정직하게 말하는 것…주님, 열심히 보겠습니다. 나의 눈을 맑게 해 주십시요. 잘 보게 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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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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