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장 14-23절: 사랑이 거룩이다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고발 거리를 찾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떠나간 후, 예수님은 무리에게 정결(거룩함)에 대해 가르침을 주신다. 당시 믿음이 좋다는 유대교인들은 부정한 것을 접촉하지 않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결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레위기 11장은 먹어도 될 것과 먹으면 부정해 지는 것을 구분해 놓았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15절)고 말하심으로 정결례에 관한 율법과 장로들의 전통을 모두 부정하신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16절)은 일종의 비유로서, 일차적으로는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과 배설물을, 의미적으로는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생각과 말과 행동(20-23절)을 의미한다. 

무리와 헤어져 예수님과 따로 있을 때, 제자들이 그 비유의 의미에 대해 여쭌다(17절). 예수님은 그들의 이해 부족을 책망하시면서, 중요한 것은 마음인데, 음식이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라고 답하신다(18절).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19절)는 말씀은 레위기 11장의 율법 규정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혁명적인 선언이다. 예수님은, 정결례에 대한 율법 규정이 그 시대의 필요성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보셨다. 이 말씀에서도 자신이 모세의 권위 위에 있다는 예수님의 자의식이 드러난다. 

정말 경계할 것은 외부의 어떤 것으로 인해 몸에 부정 타는 것이 아니라, 내면(마음)이 부정해지고 그 부정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22절에 열거된 목록은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여러가지 악덕들이다.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은 십계명이 금지한 “악행”에 속하고, 악의, 사기, 방탕, 악한 시선, 모독, 교만, 어리석음은 “악한 성품”에 속한다.

묵상: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레 11:44). 예수님 당시 유대교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말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로마 제국의 식민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조상들이 이 명령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조상들이 이루지 못한 “하나님 수준의 거룩함”을 이루겠다는 뜻으로 결성된 종교 운동이었습니다. “바리새”라는 이름은 “구분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들은 율법과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자신들을 부정하게 하는 음식과 물건과 사람과 장소를 철저하게 피함으로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렇게 할 때 자신들이 “남은 자들”이 되어 하나님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때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거룩함에 대한 그들의 과도한 집착은 그들로 하여금 “형식주의”와 “권위주의”와 “자기의”와 “위선”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형식주의”란 율법의 정신에는 관심 없이 문자적인 실천에만 관심을 두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권위주의”는 자신들이 율법에 대해 바로 알고 있고 실천하고 있다는 허위 의식에서 나왔습니다. 실제로는 의롭지 않게 살면서 율법의 자구를 지키고 있으니 의롭다고 착각하는 것이 자기의입니다. 외면적으로는 거룩한 모습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악이 가득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마 23:27)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자로 자처했고, 율법 실천에 있어서 그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배척하고 저주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은 거룩이 아니라 사랑에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 5:48)는 말씀과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눅 6:36)라는 말씀은 모두 사랑의 존재로 변화되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부정타지 않게 하라는 율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심으로써, 진정한 거룩은 성품이 변화되고 삶의 방식이 변화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자구를 지켜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변화되어야 진정한 거룩을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랑에 있어서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영성의 성숙은 부정타게 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변화 받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또한 차별과 정죄와 저주와 배척이 아니라 포용과 용서와 축복과 화해로 열매 맺어집니다.

기도:

주님, 저의 마음을 활짝 열고 성령께서 온전히 다스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저의 부정한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십시오. 저의 마음의 모든 생각과 저의 입술의 모든 말과 손과 발의 모든 움직임이 주님 뜻에 조율되게 해주십시오. 저의 존재가 주님 손에 들린 인형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의 마음에 사랑만 가득하게 하시고, 저의 눈빛과 말과 행동에서 사랑만 나오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10 responses to “마가복음 7장 14-23절: 사랑이 거룩이다”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늘 말씀은 정결과 거룩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음식이나 장소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행위가 우리를 부정하게 만든다는.

    코비드가 유행할 때 사회적 격리없이는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던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죄와 탐욕, 살의와 음란은 우리 밖으로 나와 세상에 창궐한 문화와 풍조가 되었습니다.

    그 세상에서 하루를 살다보면 이 부정한 마음들이 바이러스처럼 내게 들어오곤 합니다. 이렇게 보균자가 되면 저는 한 사람의 전염원이 되고 말겠지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이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그 말씀이 떠오르네요. 악한 문화로 부터 스스로를 격리하는 노력이 우선 있어야할지요?

    그 다음은 정결례인 것 같아요. 정결케 하는 샘물로 매일 나아가 내 죄를 자복하고 씻어내는 것이 그 것 아닐지요?

    아빠 아버지,

    주의 보혈로 주홍 같은 죄를 씻어 주세요. 이 아침 내 마음의 묵상과 입술의 말들이 주께 열립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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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achi049 Avatar
      gachi0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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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influencerdelicatelya014b87282 Avatar
    influencerdelicatelya014b87282

    주여, 저의 마음을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삶의 모든 순간,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기를 원하오니,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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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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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lissful2a0acacad4 Avatar
    blissful2a0acacad4

    시작되는 생각은 비밀의 악의 모음으로 소리없이 발광합니다.

    씻지 않는 탐욕의 입은 깨끗함을 먹어도 냄새를 풍기고, 더러움에 흔들리는 손은 가려봐도 손톱 아래의 지워지지 않는 깊숙한 때처럼 늘 그대로 입니다.

    아름답고 추한 존재는 늘 헤매이며 해결할 수 없는 절망에 치닫고 있습니다.

    완전하신 주님이 절실합니다. 거룩한 주님의 구원하심이 순간순간 임하길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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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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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ull9707 Avatar
    bull9707

    저의 생각과 마음에 아직도 위선과 겉치장과 남들의 정죄하는 나쁜 습성이 교활하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모든 죄성을 배설물로 나가도록 도와주십시오. 오늘 동기들에게 대타로 부부가 presentation 합니다 . 성령께서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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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버지,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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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가졌던 의문에 대해 오늘 본문이 답을 합니다. 세상이 악하니 나도 악해지는가, 내가 악하니 세상도 악해지는가. 이것이 어제의 질문한 것인데 오늘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악하게 하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It’s the economy, stupid!’ 클린튼은 이 문구로 유권자들의 마음과 표를 얻어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허버트 부시를 꺾고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한 줄로 표현하라면 ‘문제는 너다 It’s you!’ 가 될 것 같습니다. 감리교단의 목적문을 봐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세상을 변화 시킨다 to make disciples of Jesus Christ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라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잡아 끌고, 내동댕이 치는 것 같아도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겐 세상을 이길 힘이 있고, 악이 아니라 선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깨달음과 변화를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율법의 테두리를 벗어 나는지 아닌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의 지식이 가득했으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비난과 정죄였습니다. 그들의 전문지식은 듣는 이로 하여금 깨우치는 대신 부끄럽고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점점 더 무서워지고 자기는 점점 더 형편 없이 느껴집니다. 정결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으로 사람이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는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정결법이 소용 없다는 뜻으로 들리지만 우리에겐 정결법이 아니어도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별해 내는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 깨끗함을 선택하고 선함과 거룩함을 사모하면 더러움과 악함, 비루함은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이 모든 악한 것들은 사람의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23절)’는 것은 이 세상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사람 속에서 나온 악한 것은 그 사람 뿐 아니라 옆의 사람도 더럽힙니다. 우리는 서로 주고 받고 연결된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각자 자기 믿고 싶은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소외되고 격리되면 그럴 수 있을 지 몰라도 그런 환경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가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느냐, 아직도 모르느냐,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아직도 못하겠고 여전히 우린 못할거라는 생각부터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제자는 믿음이 없고, 예수님은 믿음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믿는건지요. 감사할 것이 많은데도 깨닫지 못하면 침울합니다. 받은 것이 많은데도 보지 못하면 여전히 가난합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의 내면을 채워주시는 주님,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선한 것을 내어 선한 세상을 만드는 데 오늘 하루를 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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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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