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1-6절: 알고 있다는 착각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을 찾으신다(1절). 가족과 고향 사람들은 그분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소문을 불식시키는 것도 방문의 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안식일이 되어 그분은 회당 예배에 초청 받아 설교를 하신다. 동네 사람들은 그분의 설교를 듣고 그 지혜와 권위에 놀란다. 또한 그분이 행하신 여러가지 기적들에 대해 전해 듣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아해 한다(2절). 그들은 그가 마리아의 아들로서 목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3절). 헬라어 ‘테크톤’은 목재와 석재를 다루는 기술자를 가리킨다. 또한 그분의 남동생들과 여동생들도 알고 있다. 

그분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보통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드러내 보이니, 동네 사람들은 그분을 어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달갑지 않게 여겼다”(3절)는 말은 그분을 의심하고 꺼렸다는 뜻이다. 개역개정에서는 “거역했다”고 번역해 놓았다. 그들은 소문처럼 예수가 미쳤거나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에서는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 밖에는”(5절) 별다른 기적을 행할 수 없었다(5절). 이적을 행할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적을 행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가장 믿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믿지 못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에 대해 탄식하면서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4절)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당시의 속담이었다. 

묵상:

믿음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생명체는 부단히 굳은 껍질을 깨고 새로운 순을 돋아 냅니다. 믿음도 굳어버린 전통과 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십니다.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된 지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우편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다 알 수 없는 신비의 존재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그리고 체험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것 만으로도 구원 받기에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욱 그분을 알아 가고 싶어 합니다. 그분을 더 깊이 알려면 과거에 그분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나는 그분의 모습을 받아들여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분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그분에 대해 몰랐더라면 그분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잘못을 우리도 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이미 다 알았다는 생각 혹은 더 알 필요 없다는 생각이 우리의 믿음을 죽게 만듭니다. 

껍질 안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처럼, 신앙인들도 굳어버린 껍질에 갇혀 죽었으면서도 죽은 줄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마른 가지에 새 순을 밀어내는 뒷뜰 나무처럼 우리의 믿음도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기도:

주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주님을 더 가까이 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더욱 온전히 사로잡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뜻에 더 일치되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저의 굳은 껍질을 깨뜨려 주시고 주님을 아는 지식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8 responses to “마가복음 6장 1-6절: 알고 있다는 착각”

  1. billkim9707 Avatar

    주님의 고향 사람들은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형제들과 자매들이 있는것만 알고 심지어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이라고,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되신 창조주 삼위일체 임마누엘 메시아 하나님이신것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모든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만왕의 왕 만유의 주님이신것을 믿습니다, 주님을 바로 제대로 아주깊이 더알기를 원합니다.죽음을 죽이시고 사랑과 은혜와 부활의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사귐의 소리 가족 모두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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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우리를 불쌍히 여기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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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향에서 배척당하십니다.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6000의 악령을 축사하시고 죽은 소녀를 소생시킨 드라마틱한 방랑 전도의 여정 직후 잠시 돌아온 고향마을에서 그 분은 놀랍도록 작아졌습니다.

    주님은 구원을 대중에게 강매하는 종교 권력자나 propagandist가 아니셨기 때문이죠. 주의 구원과 치유를 바라고, 내 이해를 뛰어넘는 그의 계획, 또 권능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내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내 머리속 신의 틀 속이 갇혀버리기는 걸지요?

    내 지각을 뛰어넘는 주의 평강, 우리가 알 수 없는 그의 한계없는 섭리,

    죽음을 생명으로 한숨을 웃음으로, 애곡을 노래로 바꾸시는 만유의 왕, 그의 주권을 제한 없이 믿기를 간절히 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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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ull9707 Avatar
      bull9707

      아멘, 사랑과 은혜의 주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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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인간들의 속성 속에서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다(이사야 53:2~3)고 표현 한것처럼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을 본 유대인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실행이 없이 입으로만 부르짓는 자들로서 자신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유대인들을 닮지 않는 신실한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매일 주시는 말씀을 먹으므로 예수님의 미음을 닮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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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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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앞의 5장은 믿음으로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다 같은 모양은 아닙니다. 귀신들린 청년은 귀신들을 내쫓아달라고 애원하지 않았고, 혈루증 여인도 예수님께 먼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병이 깊어져 숨이 멎었으나 예수님은 살리셨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신거지 그들이 믿음을 ‘증명’한 뒤에 고침을 받은건 아닙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낫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고 (본인의 열망이 아니어도) 예수님과의 만남 encounter 이나 감응 response 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군대 귀신에 씌인 청년은 예수님이 먼저 딱하게 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를 괴롭히던 귀신들은 되려 예수님께 자기들을 괴롭히지 말아달라 청합니다. 만남과 감응, 교류 interaction 가 일어납니다. 혈루증 여인도 얼핏 보기엔 셀프힐링 같지만 예수님은 그와 눈을 맞추고 말씀하십니다. 안심하고 가거라. 건강하게 지내라. 야이로의 딸도 물론 예수님을 마주합니다. 일어나라 하시면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6장으로 오면서 흐름이 끊깁니다. 고향으로 가신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 영 아닙니다. 보통 말씀이 아니란걸 알게된 그들은 놀라워하며 여러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들의 질문은 다 좋은 질문입니다. 마땅히 물어봐야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내린 답이었습니다. 목수잖아, 마리아의 아들이잖아, 형제 자매 다 우리 동네에 살잖아. 그들의 질문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의 원천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찾은 답은 예수님의 출신과 환경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문현답이 아니라 현문우답인 셈입니다. 믿음으로 삶의 방향을 바꾼 5장의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알고 그것 만을 원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것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은 그런 간절함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은 나의 간절함을 추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어떤 날은 고통을 이기는 것이고, 어떤 날은 실망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이 정말인지, 진짜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인지 묻는 아침도 있습니다. 믿음은 자격조건이 아니라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이 있어야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고침을 받으니 믿음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과 만날 뿐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나서고, 그분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매일 궁금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늘 아쉽고, 고팠으면 좋겠습니다. I want to stay hungry, stay curious, stay thirsty for you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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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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