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10-12절: 비밀, 신비 그리고 수수께끼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까닭에 그분에게는 쉴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분은 무리를 피하여 조용한 시간을 가지곤 하셨다. 그럴 때면 제자들이 그분이 하신 말씀이나 행동에 대해 여쭙곤 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듣고 난 후에도 제자들이 그 비유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청한다(10절).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시면서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11절)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의미한다.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다. 그분의 다스림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비밀”이라고 부르신다. 헬라어 ‘뮈스테리온’은 “신비”라고 번역할 수 있다. 뭔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확실히 잡을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그렇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고 덧붙이신다. “수수께끼”는 헬라어 ‘파라볼레’의 번역이다. ‘파라볼레’는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바깥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말처럼 생각하고 무시한다. 

그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이사야를 통해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 하셨다. 그분은 이사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면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회개하여 구원 받은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해 주셨다. 그런 일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 예수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묵상: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 4:24)고 하셨습니다. “영”이라고 번역된 ‘프뉴마’는 “숨”, “공기”, “바람” 등으로 번역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지만 존재하시고 활동하십니다.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그분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엡 4:6)라고 했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행 17:28)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울 앞에 서지 않는 한 우리 몸 전체를 대상으로서 볼 수 없는 이유는 눈이 우리 몸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의 대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일하심을 ‘뮈스테리온’(비밀 혹은 신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육신의 한계 안에 갇힌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와 일하심을 직접 알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드러내 보여 주실 때에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해 드러내 보여 주신다 해도 우리로서는 다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신비는 우리를 매료시킵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집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 신비를 품고 신비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신비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비에 눈 뜨고 그 신비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제 아무리 대단한 증거를 보여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볼 눈이 없고 들을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살던 대로 살고 싶어서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할 때에도 그랬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수수께끼처럼 들릴 뿐입니다.   

기도:

오 주님, 육신의 눈을 감습니다.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십시오. 육신의 귀를 막습니다. 마음의 귀를 열어 주십시오. 우리 위에 계시고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보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주님 안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 곁에서, 우리 위에서 매일 만들어 가시는 신비로운 일들을 보게 하시고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4 responses to “마가복음 4장 10-12절: 비밀, 신비 그리고 수수께끼”

  1. billkim9707 Avatar

    매일아침 말씀으로 묵상하는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영의 눈과 영의 귀와 영의 마음을 활작열기를 원합니다, 항상 열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되신 예수님의 살과 피의 뜻을 깨달으며 감사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신령한 구원의 비밀을 조금더 깨닫고 그신비를 이방인에게 전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오직 십자가만이 살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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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주님! 영의 눈과 귀가 어두어 말씀을 듣고 보아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날마다 공급하는 말씀을 묵상함을 통해 깨달아 이웃에게 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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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은 새벽부터 밖에 일을 보러 나갔습니다. 어제는 종업원이 쉬는 날이어서 남편과 둘이 가게를 보고 늦게 들어와 쓰러져 자는 피곤한 날이었습니다. 잠이 모자라서 새벽에 나가기 전에 묵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이런 날에는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기회인지 더 잘 느껴집니다. 일어날 수 없이 아픈 것, 책상에 앉아 책을 펼 정신적이 여유가 없는 것, 주님을 바라보기가 무섭거나 화나는 것…이래서 묵상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묵상과 기도가 세상의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는 아니지만 소란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는, 내 마음을 잘 간수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고, 사람과 말하듯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멀리 있는 존재라고 여기는게 아닙니다. 볼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고 나는 여전히 인간일겁니다. 한 때 ‘Conversations with God-하나님과의 대화’라는 책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책을 사서 보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읽기를 중단했습니다. 작가 본인에겐 인생이 바뀌는 사건 life-changing event 이었다지만 그 책을 읽는다고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나 신뢰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표현 중에 드러내시는 하나님, 혹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deus revelatus) 이 있고, 반대의 개념으로 숨으시는 하나님, 혹은 멀리 계시는 하나님 (deus absconditus) 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을 알리셨고 보이셨다는 뜻으로 듀스 레벨라투스를 이해하고,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듀스 압스콘디투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당신을 보여 주시고, 누군가에겐 영영 숨으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삶 가운데서 내가 하나님을 찾고 부를 때 내가 기대하고 아는 방법으로 응답하시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보았다, 만났다, 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아주 적극적으로 그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내가 ‘만난’ 하나님이라는 표현 속에는 그런 적극성과 자신감이 들어 있습니다. 숨어 계시고 감추시는 하나님은 진정 멀리 계신 하나님일까요. 인간이 찾지 못하도록 -인간과 만나지 않으려고- 숨어 계신걸까요. 아닐겁니다. 비록 사람과 얘기하듯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내 이야기를 들으신다는건 우리가 자주 경험하고 나누는 일입니다. 오늘 분량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비밀일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는 비밀이 아니어도 밖에 있는 이들에겐 일부러 깨닫지 못하도록 비유로 말씀하는거라는 다소 충격적인 말씀도 하십니다. 이로써 비유나 예화를 들어 말씀하신게 어려워서 쩔쩔맸던 것이 전부 나의 문제 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깥 사람들에겐 깨닫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신다는 말씀은 일단 서운하기는 하지만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면 아주 조금 그 뜻을 헤아릴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은 그 자체가 사건이고 역사입니다. 비유를 듣고 퍼뜩 다 알아들으면 비유를 써서 말 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감동이 없습니다.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이건 뭐지. 어째서지. 산은 뭐고 물은 뭐지. 하늘나라는 깨닫거나 아는 것을 너머 사는 것까지 가야 하는 목표지점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설명을 듣고 깨닫는 것은 시작일 뿐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서를 인용해서 하시는 부분 – 돌이켜 용서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도 회개와 용서의 고귀함, 중요성, 진실로 인생이 바뀌는 전환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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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눈을 뜨게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손해와 이익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현실을 살다보면 세상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 않을 때가 저에게는 너무도 많습니다.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 마음의 눈과 귀가 열려 하나님의 비밀을 보고 알길 원합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을 시작하는 아침입니다. 여러가지 일들이 마음의 숙제로 남아 복잡하고 무거운 아침이네요.

    주님, 아버지의 비밀을 깨달아 알므로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회복하는 하루 되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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