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1-9절: 어리석은 농부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리 호수로 가신다. 그곳은 많은 무리에게 설교하기에 이점이 많았다. 배를 강단 삼으면 무리와의 사이에 안전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고, 호수로부터 육지로 부는 바람으로 인해 멀리까지 음성이 전해졌기 때문이다(1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면서 여러가지의 비유를 사용하셨다(2절). 하나님 나라는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일상적인 것에 비유하여 설명해야 했다. “비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볼레’는 “곁에 두다”라는 의미다. 곁에 두어 서로 비교하여 이해하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예화, 직유, 은유 등을 사용하셨다. 

첫번째로 소개하는 비유는 예화에 속한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이상한 농부를 등장시킨다. 그는 밭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발 닿는 곳마다 마구잡이로 씨를 뿌린다(3절). 길에도, 돌짝밭에도, 가시덤불에도 씨를 뿌린다. 길에 뿌린 씨앗은 새에게 쪼아먹히고,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은 싹을 내지만 뿌리가 깊지 못해 말라 죽는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은 어느 정도 자랐으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3-7절). 많은 씨앗을 허비한 것이다. 하지만 좋은 땅에도 떨어진 씨앗이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8절). 

이 말씀 후에 예수님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9절)고 하신다.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고,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진실로 듣는 것이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진실로 보는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마음으로 들어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 나라는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대상이 아니다. 마음으로 깨달아 알 대상이다.

묵상: 

예수님의 예화 비유에는 항상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 이상한 점을 이해하는 것이 예화 비유의 의미를 푸는 열쇠입니다. 이 예화 비유에 등장하는 농부는 아주 이상합니다. 밭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아무 데나 씨를 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복음 전하는 사람을, 씨앗은 복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치 눈 감고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상대를 보아가며 될법한 사람에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될성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 상태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전하는 일은 자주 헛수고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마음이 준비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소수라 해도 그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상상하지 못할 많은 열매를 거둡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은 허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길바닥이나 돌짝밭 혹은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어 버립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떨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말씀의 생명력이 불일듯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예화 비유는 우선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농부처럼 될 성 싶지 않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또한 복음 전하는 사람은 신속히 열매를 거둘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둘 때까지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것처럼, 복음의 열매를 거두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준 권면 즉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딤후 4:2)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당장 열매가 없더라도 기회를 찾아 꾸준히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큰 열매를 보고 기뻐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기도:

어리석은 농부가 되라고 하신 주님, 저희는 너무 똑똑해지고 싶어합니다. 너무나 계산에 밝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잘 준비된 마음만 찾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저희에게 맡겨주신 씨앗 자루를 그대로 들고 있습니다. 주님, 복음 전하는 일에 저희를 어리석게 만들어 주십시오.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의 씨앗을 아낌없이 뿌려 주님 앞에 내놓을 열매가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3 responses to “마가복음 4장 1-9절: 어리석은 농부”

  1. billkim9707 Avatar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제 마음에 가시덤불로 체워있는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뚜렷이 내놓을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열매를 맺는 좋은텃밭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손주들과 증손주에게 또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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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아직도 부족하고 연약하여 돌짝 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날마다 주시는 영의 양식을 감사하며 기쁜마음으로 받아 먹고 옥토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영의 귀를 열어주심을 통하여 말씀을 깨달아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많은 열매를 맺어 이웃과 나눔의 기회를 주시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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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씨 뿌리는 농부의 이야기가 농부에 초점이 있으며 그는 곧 전도와 선교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대신하는 캐릭터라는 설명을 들어도, 싹을 티어 결실을 내는 밭은 어떤 밭인가를 말해주는 비유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얻는 교훈은 한 두가지가 아니어서 선하고 가치 있는 일이란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도 알 수 있고,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이유는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들은 양파처럼 몇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양파는 진짜배기를 속에 숨긴게 아니고 차곡차곡 겹을 쌓아 열매를 맺습니다. 겉껍질만 벗기면 영양이 고르게 담긴 과육이 계속해서 나오는 양파를 받아든 것 같은 아침입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씨앗도 땅도 다 좋아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씨앗은 좋은 씨, 같은 씨인데 땅의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농부는 밭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길거리에서 선전용 명함을 나눠주는 사람은 손에 든 명함 전량을 어서 다 ‘뿌리고’ 가는게 목적이지 명함 받은 사람이 그 업소에 가는지 안 가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농부는 전도자이고 씨앗은 복음이라는 해석도 백퍼센트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래도 전도라는게 예측한대로, 원하는대로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라는, 그러니 전도자의 뜻을 주장하려는 생각을 아예 내려 놓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이는 일은 유익하 다고 봅니다. 작년 11월에 종업원 두 명이 차례로 그만 두었습니다. 가게 근처에 있는 타겟 스토어에서 해마다 연말 특수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에는 시간제 근무자들을 대량 고용했다 다음해 1월 말 쯤에는 뽑았던 인력의 반 정도를 우루루 내보냅니다. 작은 요거트 가게 보다는 타겟처럼 크고 화려한 매장에서 여러 사람이 북적거리는 데서 일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또 새로 사람을 뽑아 훈련시키는 일은 쉽지도 않고 반갑지도 않습니다. 일하고 싶다고 오는 사람은 많지만 뽑아서 훈련을 할만한 사람은 적고, 훈련을 마치고 제대로 잘 근무하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농부가 밭을 안 가리고 씨를 뿌린다는게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할 지 잘 예측해서 뽑는다는 것이 말처럼 되지 않습니다. 머리가 좋아도 일머리와 공부머리가 다르고, 센스가 있어도 속이는 데 그 센스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절하고 공손해서 좋은데 일솜씨는 영 아닌 직원도 여럿 보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법원에서 서류를 받았는데 우리 가게 종업원이 변제 판결을 받고도 갚지 않아 지금도 고용되어 있으면 급여압류를 하겠으니 고용상태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8년 전에 일하다 그만 둔 뒤로 연락이 없다고 확인해 보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법원 판결까지 가기 전에 변제나 보상관련 합의를 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 종업원은 성실해 보여 뽑았는데 의외로 거짓말과 핑계를 쉽게 하는 성격인걸 알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달 안 있다 스스로 그만 두었는데 그 친구 덕분에 ‘인상보고 뽑는다’는 원칙이 크게 무너졌습니다. 종업원 관련 어려운 일이 생기면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나, 훈련에 문제가 있나, 우리가 ‘나쁜’ 주인인가…사람 쓰는 일은 사회 어떤 분야에서든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채용도 어렵고 훈련도 어렵습니다. 관리도 어렵습니다. 저번에는 되던 방법이 이번에는 안되기도 합니다. 농부가 뿌리는 씨앗이 복음이든, 업소소개 명함이든, 업무지식과 스킬이든 농부의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요즘에 남편과 저는 사람을 뽑아 가르치는 일이 비지니스를 하는데 필요한 일인 것은 맞지만, 그 속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합니다. 우리끼리 ‘커뮤니티 서비스’라고 부르는데, 평소에 입으로만 젊은이들을 위해주자, 미래에 투자하자 이러지 말고, 비록 실망으로 끝날지라도 가능성 있어 보이는 청년이면 일단 뽑아서 일하게 하자, 그러면서 나아지면 너무 다행이고, 아니면 아닌대로 어떤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라는게 가게 커뮤니티를 위하는 우리 마음입니다. 어리석은 농부는 사실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몰라서 잘못 뿌리거나, 잘못 뽑는 게 아닐겁니다. 새들은 씨를 쪼아먹고 삽니다. 흙이 없는 땅, 돌무더기, 가시덤불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열매를 내는 식물, 꽃을 내는 나무, 아무 것도 ‘안하고’ 멋있기만 한 나무…세상을 이루는 피조물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없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알고 싶고 알아야 겠다는게 우리들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나를 어떻게 이끄는지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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