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장 1-12절: “인자”라고 부르신 이유

3–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얼마 후,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어느 집에 머물고 계셨다(1절). 그분이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그 집에 몰려 들어 발 디딜 자리가 없게 되었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다(2절).  

그 때 네 사람이 중풍병에 걸린 친구 하나를 들것에 실어 데리고 온다(3절).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한 그들은 지붕을 뜯고 그 사람을 달아 내린다(4절). 당시 가옥의 구조와 재질이 그렇게 하기에 용이했다. 병든 친구를 살려 보겠다는 네 친구의 간절함이 그런 행동을 하게 했다. 갑자기 위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일어나고 흙 부스러기가 떨어지자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분노하여 아우성을 쳤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5절) 그 병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신다. 그의 병이 그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알아 보셨던 것이다.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질병의 증상이 아니라 질병의 뿌리인 죄책감을 치료해야 한다.  

그곳에 율법학자 몇이 있었는데, 죄를 용서해 주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란다(6절). 하나님 외에는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유대교의 믿음이었기 때문이다(7절). 그들의 생각을 간파하신(8절) 예수님은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고 물으신다(9절).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말대로 되지 않으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반면,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안전하다. 그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면서(10절) 그 환자에게 더 어려운 말 즉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라”(11절)고 명령하신다. 그러자 그 환자가 일어나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 나간다. 이로써 예수님은 당신에게 죄 용서의 권한이 주어져 있음을 증명하시고 사람들은 “우리는 이런 일을 전혀 본 적이 없다”(12절)고 감탄한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인자”(호 휘오스 투 안트로푸)라고 부르신다. 예수님 당시에 이 말은 자신을 에둘러 가리키는 관용어로 사용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일인칭(“내가 배고프다”)이 아니라 삼인칭(“한 사람이 배고프다”)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동시에 “인자”는 다니엘서 7장 13절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에 관한 예언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에게서 모든 권세를 부여받고 오셔서 다스릴 영원한 왕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님이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신 것은 메시아로서의 당신의 정체를 숨기면서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알아듣게 하시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묵상:

마가는 앞에서 여러가지 이적들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여러 마을을 다니시면서 온갖 질병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행동을 지켜 보는 사람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혹은 “이분은 누구신가?” 라는 의문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어떤 범주에도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교사도, 제사장도, 예언자도 그분에게 정확히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 이상이라면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신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신이 된다고 믿었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전 5:2)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넘어설 수 없는 거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람은 누구란 말입니까?

예수님은 중풍병 환자를 고치시면서 이 궁금증을 한계선까지 밀어부치십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죄에 대해 용서할 권한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죄 자체를 인간이 지울 수는 없습니다. 제사장들은 죄 지은 사람을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의 용서를 대신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이 주는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용서를 전달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중풍병자의 죄를 직접 용서해 주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과 행동으로써 예수님은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를 은밀하게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서 “인자 같은 이”가 하나님에게서 모든 권세를 받아 영원히 다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7:13-14). 예수님은 이 칭호를 사용하심으로써 당신에게 이미 그 권세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예언자도, 제사장도, 율법교사도 아닙니다. 그분은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그분을 과대망상증 환자로 여기고 등을 돌리든지 아니면 그분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 꿇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율법교사들은 전자를 택했습니다. 그들은 참다 못해 결국 그분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제거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이 결국 그분의 구원 사역을 완성시켰습니다.

기도: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저희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고 귀를 열어 주십시오. 주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게 하시고, 주님의 위엄에 맞게 섬기게 해주십시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주님, 저희의 존재를 주님 손에 맡깁니다. 받으셔서 주님 뜻대로 사용해 주십시오. 오,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5 responses to “마가복음 2장 1-12절: “인자”라고 부르신 이유”

  1. billkim9707 Avatar

    (저의 신앙 고백입니다) 인자는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베드로의 고백)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몸과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자이십니다, 누명과 배반과 수모와 온갖 고난을 격으시면서 온세상의 죄를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고 영으로 같이하시며 천군천사를 거느리시고 권세와 영광에 싸여서 다시오시는 영원한 만왕의 왕 만유의 주님이신것을 다시 고백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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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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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감사하면서도 불안하고, 미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깼다 반복하면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어제 밤에 집으로 올 때 프리웨이를 타지 않고 로컬로 오면서 보니 정전으로 교통 신호등이 불통인 데가 여러 곳이었습니다. 다세대 주택 빌딩 (아파트 건물)들이 정전으로 컴컴하고 인근 상가들도 전기가 나가 장사를 못하니까 문을 닫은 것 같았습니다. 어둡고, 을씨년스럽고 추웠습니다. 어제와 오늘 바람이 조금 수그러들다 내일부터 다시 심해진다고 예보하는데 대형 화재 지역은 여전히 진화 중이고 엘에이의 이곳 저곳 화재 발생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밤 사이에 가게 옆 동네에도 불이 났다고 들었는데 진화가 되었는지 아침 뉴스에선 별 소식이 없습니다. 식탁에 앉아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기쁨과 감사가 내일 아침에도 가능할 지…실로 하루씩 만, 지금 여기서 만 살 뿐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의지한다고 하는 나의 고백을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 비춰 봅니다. 어제 문둥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만지지며 너가 낫기를 원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뜨거운 연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걸까 생각해 봅니다. 마가는 오늘도 예수님의 연민과 권능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중풍병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기까지 일어났을법한 일들을 상상해 봅니다. 일단 환자를 (친구를) 매우 안쓰럽게 여겼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어떡해서든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친구들 사이에 있었고,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친구를 데리고 가 보자고 결정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지도 않게 사람들이 가득 들어 찬 것을 보고 방법을 생각해 봤을테고, 환자 친구는 어쩌면 울었을지 모릅니다. 실망이 되어서, 예수님을 보는 것 조차 못할까봐 슬퍼서 눈물부터 흘렸을지 모릅니다. 반대로, 친구들을 더욱 졸랐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다 그냥 갈 순 없다고, 어서 무슨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닥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친구를 줄로 묶어 내리기로 합니다. 이걸 보시면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마가는 말합니다. 예수님이 보시면 고쳐주실거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고침이라는 생각이 맞았다는 뜻입니다. 중풍환자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사이에 이 광경을 보는 율법학자 몇 명 속에선 의심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평가와 판단이 일어났습니다. ‘니가 뭔데’ 라는 생각입니다. 그들의 의심을 풀어 주기 위해 예수님은 다시 한 번 환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처음에 하신 말씀 -네 죄가 용서되었다-이 환자에게 특별하게 의미 있는 축복이라면, 두번째 말씀은 거기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연민으로 충분했는데 권능까지 드러났습니다.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나에게 ‘너도 연민과 용서를 행하라’ 말씀하시는 것 같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너에게 임하는 권능을 믿어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바로 지금 내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 속에 놓인 우리에게 서로를 불쌍하게 보고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라고 하시며, 또 기적과 능력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도우실 것도 잊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회복, 예수님은 구원이시라고 믿습니다. 곳곳에서 화재 발생의 무서운 소식이 들려오는가 하면 굿뉴스의 메시지도 들어옵니다. 좋은 뉴스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를 닮았습니다. 불에 타기 전에 구했다 saved, 대피명령이 해제되었다 lifted, 구제 물품들이 도착했다 arrived,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restored…중풍병 환자에게 든든한 친구 커뮤니티가 있었듯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서로에게 든든한 커뮤니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의 권능에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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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주의 위로와 도움이 어두운 혼돈의 시간 가운데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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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한국에서 보내는 두 번째 밤입니다. 첫밤은 너무 피곤해서 새벽 5시까지 내리 잤고 오늘은 뒤척이다가 새벽 3시에 항복하듯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버니움의
    중풍병자 얘기는 지붕을 뚫고 그사람을 예수님 전에 내려놓은 네 사람이 그 이야기의 주역인 것 같습니다. 남의 집 지붕을 뚫고 이런 일을 하다니, 그런 똘기가 어디에서 나올까요? 예수께서 그들의 똘기를 믿음으로 인정하시네요.

    우리 사귐의 교회가 그리고 우리 각자가 그 네 사람의 확신과 긍휼, 진격의 행동력을 본받아 영적 중풍병에 고통받는 이들들을 주 전에 내려놓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주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교회, 그런 인생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의 아들, 우리의 구원자, 만왕의 왕께서 이 병들고 부서진 세상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일어나 가도록’ 고쳐주시기를 갈망하는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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