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12-13절: 땅에 임한 하늘

2–4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로 나가셨다. 세례 받을 때 그분에게 임하신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것이다. “내보내셨다”는 번역은 원어의 강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개역개정처럼 “몰아내셨다”고 번역하는 것이 낫다.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마가는, 예수께서 성령에 사로잡혀 행동하셨음을 강조한다. “광야”는 유혹과 시련과 연단의 장소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사십 일 동안 머무셨다. “사십”은 이스라엘의 전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수다. 모세가 시내 산에 사십 일 동안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 년 동안 광야를 유랑했다. “시험을 받으셨다”(13절)는 현재분사로서 “계속 시험 받고 계셨다”고 표현해야 옳다. 사십 일 동안 금식과 기도로써 유혹과 싸우셨다는 뜻이다. 

“사탄”이라는 말은 “반대하는 자” 혹은 “방해하는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에서 나왔다. “바알세불” 혹은 “마귀”로 불리기도 한다.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부르셨다. 사탄은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을 반대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악한 영”(귀신)을 통해 방해한다. 인간이 죄를 선택함으로 인해 사탄의 통치권 아래에 팔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 세상은 사탄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을 이길 수 없고, 악한 영은 성령을 대적하지 못한다. 사탄과 악한 영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를 속여 제 발로 그의 수하로 들어가게 하는 일뿐이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의 내용을 일부 공개한다(마 4:1-11; 눅 4:1-13).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에게 주어진 능력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유혹하지만,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는 말은 에덴 동산의 이미지를 연상시킬 뿐 아니라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사 65:25)을 생각나게 한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계 21:1-4). 따라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며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셨다”는 말은 금식과 기도로써 영적 충만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들이 예수님께 잠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찢어지는 환상을 보신 것처럼, 광야에서의 사십 일 금식 기도를 마쳤을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경험하신 것이다.

묵상:

우리는 “에덴”과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복”(original blessing)을 의미합니다. 모든 생명이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좋다, 참 좋다”고 감탄하신 그 아름다운 존재 상태입니다. 

그 완전한 일치와 평화가 깨어진 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지고 온 우주에 들어차 있던 아름다운 조화가 무너졌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악한 영의 교란에 노출되어 있고, 인류 역사는 사탄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불행과 사고와 불의와 싸움의 근본 원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사회마다, 국가마다 가장 절실한 문제가 다릅니다. 때로는 정치 문제가, 때로는 경제 문제가, 때로는 전쟁의 문제가, 때로는 자연 재해의 문제가 가장 절실 해집니다. 하지만 그 모든 문제의 뿌리는 인간의 죄성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인간고의 근원을 해결하려 하셨습니다. 

그분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소명을 완수할 때 닫힌 하늘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사십 일의 금식 기도를 끝냈을 때, 예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에덴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찢어 놓으신 하늘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그분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그분의 사랑을 누리며 삽니다. 그 삶의 마지막은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계 21:4)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마지막에 온전히 이루어지겠지만, 이 땅에서 간혹 혹은 자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기도:

사탄의 유혹을 이기신 주님, 악한 영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찾으려는 것처럼 우리를 속여 노예로 삼으려는 악한 영의 유혹을 만만히 여기지 않게 해주십시오. 사탄의 유혹과 싸울 때, 저희를 도우셔서 이기게 해주십시오. 때로 새 하늘과 새 땅의 한 조각이라도 경험하게 해주십시오. 발은 이 땅에 딛고 서 있지만, 마음에는 하늘을 품고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장 12-13절: 땅에 임한 하늘”

  1. billkim9707 Avatar

    힘들고 어둡고 혼탁한 세상입니다. 교활한 마귀가 계속해서 탐욕과 쾌락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유혹에 자주 너머지는 가련한 신세입니다. 주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말씀으로 무장해서 승리의 삶을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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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에덴’과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서 수고하는 우리의 모습을 주님은 보고 계시겠지요. 우리 삶의 현장은 낙원도 천국도 닮지 않았습니다. 에덴도 새 나라도 우리의 경험 바깥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은 지금 여기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임재가 내가 경험하는 지금 여기 뿐 아니라 온 우주, 온 시간에 가득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나보다 크신 분 – 요한은 ‘나보다 더 강하신 분’이라고 한 분 -의 선한 뜻을 믿고 에덴과 새 나라 사이를 산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시험과 유혹을 받는 일입니다. 40일은 숫자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전시간을 말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광야의 시간처럼 좀 더 혹독한 시간이 있습니다. 더 고독하고 더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그런 광야의 시간에도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돌보아 드렸다는 13절 말씀이 믿어집니다. 우리도 그것을 경험합니다. 일상의 시간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매일 같은 일의 반복 같고,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도 대단한 영향력 없이 지나가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크고 강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절입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실망스럽고 시끄러워서 마음의 평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마음에 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상상하며 내 들끓는 속을 가라앉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주소서. 광야의 시간을 넉넉히 이기신 주님, 우리의 광야에 오소서. 감사합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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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새해이니까 새로운 결심을 해보려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시험이 있겠지만 저에게는 걱정 근심, 돈, 그리고 나쁜 습관 들이 항상 저를 넘어지게 하는 사탄의 시험인 듯 합니다.

    에덴과 새하늘 그 두 시간 사이를 여행하는 우리 인생은 죄가 유독가스처럼 대기 중에 퍼져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을 수 없지요.

    시험을 이길 믿음을 주세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성령의 위로와 능력을 부어주세요. 시험을 이기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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