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전도자는 이제 결론에 이른다. 그는 좀처럼 명령형으로 말하지 않는데, 결론부에 이르러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1절)고 명령한다. “기억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자코르’는 기억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전제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셔서(출 2:24) 모세를 불러내신 것처럼, ‘자코르’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창조주를 기억한다”는 말은 창조주의 뜻에 맞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지금 전도자는 인생의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면서 젊음을 헛되게 보냈다는 회한에 잠겨 있다. 그래서 그는 “젊을 때에 …… 기억하여라”고 말한다.
2절은 죽음의 날에 대한 비유이거나 심판의 날에 대한 비유다. 젊은 시절에는 천 년 만 년 살 것 같지만, 시간은 쏜 살같이 지나가고 죽음의 문턱에 이른다.
3-4절은 늙어가는 과정에 대한 비유인데, 새번역은 비유를 풀어 번역을 해 놓았다. 개역개정의 번역이 더 좋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팔)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다리)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치아)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눈)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귀)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소화 기능 쇠퇴)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신경쇠약)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감정 마비)이며.”
여기서 보듯, 비유를 풀어 놓으면 이해하기는 쉬운데 수사적 힘은 약해진다. 6절에서도 육체의 여러 기관이 약해지는 것을 비유로 표현해 놓았다. 인간은 누구나 때가 되면 늙고 죽음에 이른다(5절, 7절). 그 때가 되면, 창조주의 뜻을 따라 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시간도 없고, 기력도 없다. 그래서 “젊은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1:2)는 선언으로 시작한 전도자는 같은 말로 결론 짓는다(8절).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문학 기법 중 하나로서, ‘인클루지오’(inclusio) 혹은 ‘수미쌍관법’이라고 부른다. 처음과 끝을 동일하게 표현하여 서로 상관되게 하는 것이다.
표현은 동일하지만, 정서는 사뭇 다르다. 1장 2절에서는 회의와 절망에 찬 탄식이었는데, 12장 8절에서는 현실을 담담히 인정하는 초연함이 느껴진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그 현실을 부정하고 그것을 바꿔보기 위해 몸부림 쳐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느라 젊음을 허비했다. 그래서 전도자는 주어지는 매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창조주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쓰라고 말한다.
묵상: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양쪽에 두명의 사형수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저주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를 책망하며 예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형수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눅 23: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두고 어떤 이가 물었습니다. “평생 죄악 가운데서 살다가 죽기 몇 시간 전에 회개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어릴 때부터 믿은 사람만 손해보는 것 아닙니까? 저도 즐길만큼 즐기다가 늙고 쇠약해지면 그 때 믿겠습니다.”
이 말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즐기고 싶은 것을 끊을 수 없어서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제대로 믿으면 포기할 것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죄의식 없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죄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믿기를 꺼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보면, 과거에 “즐기던” 것들이 실은 자신을 “괴롭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이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거듭나고 보니 그것은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었던 사형수는 죽기 직전까지 인생을 허비했던 것입니다.
전도자가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1절)고 명령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처럼 인생을 모두 허비하지 말고, 할 수 있으면 빨리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라고 말합니다. 세상적으로는 손해보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가장 복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도:
더 늦지 않고 주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헛되게 허비될 저희의 시간들을 구속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주님 안에서 저희의 시간을 구속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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