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8장: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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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지혜를 알면 평안을 얻는다(1절). 지혜의 용도는 거기까지다. 지혜를 얻었다고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 왕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설명한다.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서 대관식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였다. 그 예배에서 왕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다스릴 것을 서약하고, 백성은 왕에게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2절). 전도자는 백성에게 왕에 대한 복종의 서약을 지키라고 권한다. 왕이 불의한 명령을 내릴 때, 그에게 절대 권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3-5절).  

왕의 폭정을 참고 견디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언제까지고 그 폭압적 상황이 지속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고 알맞은 방법이 있다”(6절).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7절). 그러므로 당장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모든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8절). 

이어서 전도자는 악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악한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사람들이 승승장구 하고, 죽고 나서도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다(9-11절). 악하게 살면 하나님에게 벌을 받고 경건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배웠지만(12-13절), 현실 세상에서는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는 것 같고,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다(14절). 

이토록 부조리한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은 주어진 시간 동안 생을 즐기는 것이다(15절). 방탕에 빠지라는 뜻이 아니라 자족하며 현재를 누리라는 뜻이다. 전도자는 부조리한 현실을 관찰하면서 그 현실을 바꿀 방법을 찾아 보았으나, 실패하고 말았다(16절). 세상사와 인생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인간으로서 헤아릴 수 없다(17절). 자신이 뭘 좀 안다고 떠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묵상:

믿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나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깨달아 알고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고 했습니다.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은 이성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차원 너머에 초월적인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창조 세계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보기 때문이요(일반계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특수계시).

마음에서 시작한 믿음은 머리를 끌어 들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이해하고 설명하고 납득하려 합니다. 그런 노력이 없으면 믿음은 맹신으로 전락합니다. 캔터베리의 안셀름은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aith Seeking Understanding)이라는 말로써 믿음의 본질을 담아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세계관으로 이 세상을 보고 이해하려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작은 머리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적습니다. 

믿음은 신비입니다. 신비는 뭔가 보이기는 하는데 다 보이지는 않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알 것 같은데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알기를 힘씁니다. 하지만 알아갈수록 모르겠다는 느낌만 커집니다. 신기하게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커지는만큼 우리는 그 대상에 더 강하게 사로잡힙니다.  

기도:

저희도 전도자처럼 현실의 부조리를 보면서 주님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정직하고 의롭게 살려는 마음은 있지만, 그로 인해 세상에서 뒤쳐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희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바로잡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흔들림을 바로잡게 해주십시오. 내일 염려는 내일에 맡기고, 주님께서 주시는 하루만큼의 은혜를 누리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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