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8장: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지혜를 알면 평안을 얻는다(1절). 지혜의 용도는 거기까지다. 지혜를 얻었다고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 왕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설명한다.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서 대관식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였다. 그 예배에서 왕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다스릴 것을 서약하고, 백성은 왕에게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2절). 전도자는 백성에게 왕에 대한 복종의 서약을 지키라고 권한다. 왕이 불의한 명령을 내릴 때, 그에게 절대 권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3-5절).  

왕의 폭정을 참고 견디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언제까지고 그 폭압적 상황이 지속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고 알맞은 방법이 있다”(6절).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7절). 그러므로 당장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모든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8절). 

이어서 전도자는 악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악한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사람들이 승승장구 하고, 죽고 나서도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다(9-11절). 악하게 살면 하나님에게 벌을 받고 경건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배웠지만(12-13절), 현실 세상에서는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는 것 같고,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다(14절). 

이토록 부조리한 상황에서 유일한 대안은 주어진 시간 동안 생을 즐기는 것이다(15절). 방탕에 빠지라는 뜻이 아니라 자족하며 현재를 누리라는 뜻이다. 전도자는 부조리한 현실을 관찰하면서 그 현실을 바꿀 방법을 찾아 보았으나, 실패하고 말았다(16절). 세상사와 인생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인간으로서 헤아릴 수 없다(17절). 자신이 뭘 좀 안다고 떠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묵상:

믿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나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깨달아 알고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고 했습니다.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은 이성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차원 너머에 초월적인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창조 세계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보기 때문이요(일반계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특수계시).

마음에서 시작한 믿음은 머리를 끌어 들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이해하고 설명하고 납득하려 합니다. 그런 노력이 없으면 믿음은 맹신으로 전락합니다. 캔터베리의 안셀름은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aith Seeking Understanding)이라는 말로써 믿음의 본질을 담아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세계관으로 이 세상을 보고 이해하려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작은 머리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적습니다. 

믿음은 신비입니다. 신비는 뭔가 보이기는 하는데 다 보이지는 않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알 것 같은데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알기를 힘씁니다. 하지만 알아갈수록 모르겠다는 느낌만 커집니다. 신기하게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커지는만큼 우리는 그 대상에 더 강하게 사로잡힙니다.  

기도:

저희도 전도자처럼 현실의 부조리를 보면서 주님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정직하고 의롭게 살려는 마음은 있지만, 그로 인해 세상에서 뒤쳐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희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바로잡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흔들림을 바로잡게 해주십시오. 내일 염려는 내일에 맡기고, 주님께서 주시는 하루만큼의 은혜를 누리게 해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to “전도서 8장: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1. billkim9707 Avatar

    끝 없는 하늘의 지혜를 다 알수 없지만 사랑과 은혜의 주님을 확신합니다, 저희들의 허물 때문에 찔림을 받으시려고 오신 아기 예수님께 황송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를위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 주님을 항상 기억하며 자족하며 주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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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크리스마스 새벽입니다. 엘에이는 겨울이 우기인데 어제 큰 비가 내렸습니다. 오늘도 비소식이 있습니다. 12월 말일까지 흐리고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는 예보입니다. 한밤중에 깨어 다시 잠들지 못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더욱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속이 붙은 듯 너무도 빨리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갑니다. 그러다가 오늘 새벽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고요한데도, 다 살아 있는 것 같고, 나처럼 다 깨어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시간에 반응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정한 때가 있고 시기가 있는 법이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장이 확인하는 진실입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천하의 모든 것, 지음을 받은 하늘 아래 피조물 모든 것은 시간에 반응하며 시간과 함께 흘러갑니다.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도자는 말합니다. 그 누구도 해 아래서 되어지는 것을 다 깨달을 수는 없다고. 제아무리 깨우치려고 노력해도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다고. 성탄절기는 신비를 수용하는 시간입니다. 신비는 노력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해되고 알아진다면 신비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교회 전통에서 크리스마스 스토리는 동정녀 탄생이라든가, 사람의 몸으로 온 하나님이라든가, 별을 따라 동방박사가 찾아왔다든가 하는 부분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부분들을 수용하기를, accept 할 것을 바랍니다. 그러는게 믿음이 있고 순종하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그럴까요. 믿음으로 볼 수 있겠지만 지속성 있는 믿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스토리는 크리스마스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서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와서 아이를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 소식을 순종하며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천사의 방문을 기다렸다거나, 망설임 없이 순종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인 자기한테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질문합니다. 무조건 수용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답합니다. 성령이 내려오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감싸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사벳도 나이가 많지만 임신을 했다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고 답합니다.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대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질문을 왜 하느냐고 야단치지 않습니다. 당신 할 말 다했다고 횅하니 돌아서지 않습니다. 천사의 방문이 잠깐이었는지, 반나절이었는지, 한밤 중에 일어난 일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마리아가 수용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신비를 수용하는 태도가 어때야 할 지를 배웁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지식과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어렸을겁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당장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의 뜻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뜻은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마리아의 순종으로 시작한 크리스마스 스토리는 예수의 순종으로 채워지고 교회의 순종으로 이어져 오늘까지 왔습니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 시간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다 아셨을까, 하나님이신 예수는 다 알겠지만 사람이신 예수는 우리와 같이 모를 때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탄절은 사람이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때입니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순간을 건져내는 때입니다. 우리의 소망과 평화, 기쁨과 사랑이신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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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신다는 믿음이 흔들릴때가 있습니다. 악하고 부조리하게, 약자들을 짓 밟고, 사기치고, 남의나라를 침법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 – – 이루 말할 수 없는 악행을 저자르는 자들이 떵떵 거리고 살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인가? 

    주님. 오늘 예수님의 탄생일을 맞아 예수님의 생애를 다시한번 기억하게 하심을 통해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끼고 심판주로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주시는 영의 양식을 먹고 나그네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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