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전도자는 의롭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늘 끝이 좋고, 악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끝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현실의 모순을 인정한다(15절). 따라서 너무 의롭게 살려고 애쓰지도 말고, 너무 악하게 살려고 애쓰지도 말라고 한다(16-17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18절)는 말은 자신의 한계성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뜻이다. 악의 도가 지나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의롭게 살려는 노력이 지나치는 것도 문제다. 지혜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19절),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한 의에 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20절).
어떤 일에 무리하여 극단에 치우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쁜 소리 듣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나쁘게 사는 것은 피할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때로 나쁜 소리 듣는 것을 괘념치 말아야 한다(21-22절).
전도자는, 지혜를 구하고 찾았지만, 그럴수록 지혜는 멀어지는 것 같았다고 술회한다(23-2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고 지혜를 얻는 일에 매진했다(25절). 26절의 “올가미와 같은 여자”는 어리석음에 대한 비유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남자”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천 명 가운데서 남자 하나는 찾을 수 있어도, 천 명 가운데서 여자 하나는 찾지 못한다”(28절)는 말은 지혜를 찾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어지러워진 까닭이다(29절). 29절은 개역개정의 번역이 더 좋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냈느니라.”
묵상:
우리는 자신의 한계성과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자주 극단으로 흐르고,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도 불행한 결과에 이릅니다. 따라서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완전한 의에 이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 역사에서, 이 세상을 이상향으로 만들어 보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참담한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 꿈을 실현해 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죄 된 본성을 얕잡아 본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29절)는 말은 인간의 죄로 인해 인생사가 헝클어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로 인해 어리석음은 인간의 기본값이 되었고, 어리석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심을 다해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완전한 지혜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흠 없이 살려고 발버둥 쳐도, 비난 받는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주어진 기간 동안 매일, 자신과 이웃의 연약함을 품어 안으면서, 하루치의 수고를 감당하고 하루치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한계성과 연약함을 벗어나는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온전한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임한다는 소식입니다. 그 의는 우리가 노력해서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옷처럼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성령을 통해 의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복음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한계 안에 갇힌 존재”였지만, 복음 안에서 우리는 “한계를 벗어나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완전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니지만,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기도:
죄로 인해 부과된 한계 안에서 체념하고 살던 저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시고, 온전한 의를 향해 나아가게 하신 은혜를 기억합니다. 저희에게 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 안에 늘 머물러 살아 이 땅에서 주님의 의를 누리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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