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3장 1-9절: 정의를 굽게 하지 말라

2–3 minutes

음성듣기 (해설)

음성듣기 (묵상 및 기도)

해설:

1절부터 3절까지는 제 9 계명에 대한 부칙이다. 거짓 증언은 한 사람의 명예를 더럽히는 죄인 동시에, 사회 정의를 굽게 하는 악이다(1절). 다수가 악을 행한다 해도 부뇌동 하지 말아야 하고,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라면 소수자의 편에 서야 한다(2절). 거짓 증언을 하는 이유는 주로 권력자나 부자에게 매수되거나 아부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의 편을 들어 거짓 증언을 해서도 안 된다(3절). 재판은 오로지 진실에 근거해야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가축에게까지 요구된다. 자기 소유의 가축이나 이웃 소유의 가축은 말할 것도 없고, 원수 지간인 이웃의 가축에게까지도 자비롭게 대해야 한다. 미워하는 사람의 가축이 길을 잃은 것을 보면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짐에 눌려 쓰러져 있으면 일으켜주어야 한다(4-5절). 

6절부터 9절은 재판장들에게 주는 지침이다. 가난한 사람이라 해서 소홀히 하거나 불리하게 판결하지 말 것이며(6절), 거짓 고발을 물리치고(7절),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8절). “뇌물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사람의 말을 왜곡시킨다”는 말씀은 기억해 둘 만하다. 재판 과정에서 외국인이라고 해서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9절). 그들도 역시 이집트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묵상: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전제로 하여 제시한 최소한의 도덕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도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지침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지침들은 하나님의 진심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의 진심은 더 높고 더 깊은 차원에 있지만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기준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 규정들 가운데 하나님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율법 규정들이 그 예입니다. 이 지침들은 오늘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높은 차원의 도덕적 수준을 요청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권력으로 혹은 돈의 힘으로 정의를 굽게 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불편한 진실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증언대에 서서 오직 진실만을 증언하고, 재판하는 사람은 공명정대하게 신문하고 판결해야 합니다. 다수가 정의라고 부르짖는다고 해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두 강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강자에게 약해지고 약자에게 강해지는 비열함이 습관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죄성이 이끄는 방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방향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위를 쳐다 보고 강자에게 줄을 대는 삶에서 돌이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약자들을 돌아 보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정의의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정의를 가르치시고 행하게 해주십시오. 진리의 주님, 저희에게 진리를 알게 하시고 행하게 해주십시오. 위로는 오직 하나님만 보게 하시고, 아래로는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보게 해주십시오. 진리와 정의를 따라 소수자의 자리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responses to “출애굽기 23장 1-9절: 정의를 굽게 하지 말라”

  1. billkim9707 Avatar

    거짖 뉴스가 만연하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공평해야할 재판을 믿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불상한 외국인들이 숨어서 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온세상이 불안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새하늘과 새땅을—- 마라나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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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achi049 Avatar
      gachi0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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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성경에서 …을 하지 마라, 예를 들어,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지 마라, 나쁜 사람과 손잡고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별로 일어나지 않는 일,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가리키며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나…하지 않고,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하는 한탄부터 나옵니다. 성격적으로나 삶의 기복으로나 낙관론자로 사는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종종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르니까 낙관적인거고 안 보니까 괜찮은 줄 아는거지 실제로 들여다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일만 잔뜩인 것 같습니다. 인기 있는 시귀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너’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세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일 때까지 보고 있으면 내 눈이 짓물려서 아예 시력을 잃을 것 같습니다. 또그렇게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쁜 너라면 실은 정말 정말 안 예쁘고 안 사랑스럽다는걸 말하는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선 ‘이럴수록,’ ‘그러니까,’ 그냥 지나치고 갈 수 없다는 묘한 저항감이 생깁니다. 말씀으로 도전을 받고 새로운 결의를 다집니다. 어려울수록, 꼬일수록, 안될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거짓을 꾸미고, 덮어 씌우고, 숨기고, 속이니까, 자꾸 그렇게 하니까, 중심을 잃지 않고 잘 살펴야겠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편이신지는 분명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거나 불리하게 몰지 말아야 하지만, 편을 들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쉽지 않은 주문입니다. 가난하면 일단 접고 들어가거나 편의를 봐 주는 쪽으로 행동하게 되는데 오늘 말씀을 읽으니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처지 -가난하거나 부유한 상태-를 기준 삼지 말고 선과 진실의 잣대로 재판 (판단)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니 우리도 서로의 중심을 헤아리는 데 까지 가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 중심이 부드러운 사람 -약한 듯 깨질 듯한 사람-이 하나님이 편들어 주시는 사람일 것입니다. 마음에 선을 긋고 살지 않는 사람, 선을 그엇어도 언제고 지울 수 있는 사람, 매사에 너무 분명하고 똑똑하지 않은 사람, 척척 다 잘하지 못하는 사람…하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랑과 정의가 충분하게 채워진 마음이 목표입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오늘 이곳 저곳에 정의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예수 만이 나의 왕’이라는 고백이 구호로 그치지 않도록, 언어와 행동이 따로 따로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중심을 지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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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gachi049

    사랑과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 뇌물을 받지 말고(8) 우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억압하지 마라(9)는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난날 직장에서 근무할때 고객으로부터 선물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어 단번에 거절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은혜로 지금까지 살게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발을 딛고 있는 이땅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문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가두어 아직도 그들이 믿는 토착신을 믿고 있는 현실입니다. 주님. 이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임하심으로 몸붙여 사는 나그네들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믿음의 공동체가 정의의 눈이 멀지 않게 도와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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